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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Jul 04. 2023

7월의 마지막 날

메밀과 팥 그리고 목련 (가제) 



어쩌다 마주쳤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마주친 것은 아니다. 그녀를 기준으로 대각선 왼쪽 뒤편에서 혼자 바라본 것이다. 1년 반 만에 보았는데,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똑같은 헤어스타일과 그녀가 평소 좋아했던 편안하고 시원한 옷차림.      


언제 어디서나 다시 마주치면 반갑게 웃으며“ 잘 지내?”라고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보처럼 지나쳤다. 아마도 그녀와 사귀던 때나 헤어진 후 지금까지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한 내 모습 때문에 차마 그녀에게 말을 걸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람에게는 오감을 넘어 육감이라는 게 있다는 데 그래서일까? 그녀를 보자마자 그녀의 체취가, 목소리가, 우리가 마주 보고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끌어안고 쓰다듬으며 사랑을 나누었던 그 순간까지 한 번에 모든 감각이 살아났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친구일 수도 있고, 새롭게 사랑하는 누군가일 수도 있겠지. 8년 전 지옥같이 추웠던 철원의 겨울밤. 훈련소에 아버지가 보내준 편지의 문구가 불현듯 떠올랐다.     



시간은 모든 것을 녹여 낸단다


혹여나 실수할까 봐 연락처도 지웠으며, 인스타에 몰래 들어가 훔쳐보는 행위조차도 싫어 차단했는데 가끔씩 꿈에 나타나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예전보다 건강해 보이는 그녀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7월의 마지막 날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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