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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Jul 04. 2023

무드셀라 증후군

메밀과 팥 그리고 목련 (가제) 


이른 아침 갑작스레 들이닥친 찬 기운이 폐부에 깊숙이 찔러 잠에서 깼다. 간밤에 꾼 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기온이 20도 이하로 떨어지면 자연스레 느껴지는 외로움 때문일까? 흔히 덥다고 느껴지는 주 요소인 열기와 습기는 사라지고 피부에 직접적인 마찰로 인해 선선함을 넘어 쌀쌀하다고 느껴진 아침이었다. 

돌이켜 보면 다 좋은 기억들이다. 안 좋았던 기억마저도 좋게 느껴지는 지금. 길고 컴컴한 터널 속 상황을 아름답게 재 프로그래밍하는 나의 뇌. 이러한 현상을 무드셀라 증후군이라고 한다. 

18년 한 해가 넘어가기 대략 한 달이 조금 넘은 시점. 뜨겁고 아름다웠던 영화 [비치]의 무대인 태국의 푸켓 그리고 피피섬. 사람들은 친절했으며 열대 과일은 달콤했다. 수심 15m까지 보이는 에메랄드빛의 바다는 뛰어들기 따뜻했으며 좋았다. 그곳에 머물렀던 12일의 순간은 머릿속에서 단 한 장면도 지울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좋았다. 

강렬했던 그 순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을까? 코로나가 종식되고 예전처럼 다시 자유롭게 해외를 나갈 수 있다면 인도 라다크를 갈까? 아니면 태국의 푸켓에 갈까?      


때때로 나는 현실 생활에 별반 필요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 한 번에 두 군데를 전부 가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낼 수 있는 경제적 자유가 있다면 좋을 텐데. 여행에서 시간과 돈은 반비례하는 법칙을 깰 수 있는 환경이 언젠가 나에게도 주어졌으면 좋겠다.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사색하고, 기다리고, 끄적일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이 글을 끝으로 핸드폰 속에 저장한 푸켓과 피피섬의 추억이 담긴 사진은 삭제할 것이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기고 가슴에 새긴 후 추억이 남긴 잔향은 무의식 깊숙이 꼭꼭 숨길 것이다.      


쾌락의 끝이었다. 실낙원이 있다면 그곳이었을 테고,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나기 직전 오색 빛이 찬란하니, 달콤하고 알싸한 무화과 향기로 취하게 하는 곳이 바로 그 곳이었을 테다. 문득 그 때 그 냄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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