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준영 Jul 19. 2023

안녕 기형도

누워있는 남자 

https://www.youtube.com/watch?v=E244Db-Cd5I&ab_channel=%EC%98%A8%EC%8A%A4%ED%85%8C%EC%9D%B4%EC%A7%80ONSTAGE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예전엔 우울하고 슬픈 감정을 좋아했던 적이 있다. 돌이켜 보면 스스로를 동굴에 가두어 놓고 절망적인 상황 그 자체를 즐겼던 것 같다. 그렇다. 난 즐겼었다. 하지만 이제 밝은 빛을 바라보며 회색빛이 짙게 나오는 어두운 그림자를 애써 떨쳐내며 밝은 모습으로 세상 밖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웃는 얼굴이 어색하지만 이전보다 인상이 순해지고 있으니 길을 걷다 '도를 아십니까' 무리들이 제법 말을 걷고 있다. 귀찮지만 한편으로 인상을 비롯해 전반적인 아우라가 변해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그 추운 겨울날 지금은 결혼한 옛 애인에게 기형도 시를 읽어준 적이 있다. 그것이 기형도와 나의 첫 만남이었으며 지금의 내 나이쯤에 갑작스럽게 죽었단 정도만 알고 있었다. 작년 차 트렁크 속에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고성으로 정처 없는 독서 여행을 떠났을 때 우연히 기형도를 다시 만났으며 인적 없는 해변가에서 헤드랜턴의 미세한 빛으로 그를 온전히 만났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지금의 애인에게 우연히 기형도의 시를 읽어 주었을 때 이제는 그 우울함을 바라만 봐도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이제서야 허무와 공허함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막 알에서 깨어나고 있는 새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기형도가 아닌 질풍노도의 시기를 벗어나 한껏 초연해진 간지로 지나간 추억을 회상하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유를 지닌 시를 읽어주고 싶다.     


잘 가. 기형도.           

작가의 이전글 시절인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