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있는 남자
정릉에 사는 PD 형의 호출로 을지로 5가에 있는 어느 곱창집에 가게 됐다. 도착해서 보니 중년의 여성과 남성 그리고 40 대 2명, 30 대 1명이 자리에 있었다. 앉아서 10분 정도 지켜보니 중년의 여성이 그 소규모 그룹의 대장이며 나머지는 그녀의 눈치를 보는 구조였다. 한 회사의 대표일까? 나머지 남자들은 그녀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 한 마디,한 마디 귀담아들었으며, 누군가는 노트에 받아 적기도 했다. 이 모임에서 가장 어린 사람은 나였지만, 나는 외부자였고 내 위 30 대 1명, 40 대 2명은 엉덩이가 의자에 닿을 새 없이 분주히 움직였으며, 머리와 허리는 새우마냥 계속 조아렸다. 전형적인 직장인의 모습이었던 것 같았으나 알고 보니 한 회사의 직원들은 아니었고, 투자와 불로소득에 관한 어떤 모임이었다.
중년 여성은 수천억 자산가라는 소문이 있었고, 그룹의 생살여탈권을 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머지는 그녀의 눈치를 보는 것이 당연한 거였다. 사실 난 아무 상관없었지만 그렇다고 잘 안 보일 필요도 없었다. 이런 거에 익숙하지 않아 얼굴에 있는 웃음 근육도 풀리지 않았고 목엔 마치 깁스를 한 듯 잘 숙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척도 잘했고, 이따금 나에게 던진 질문에 대해서는 성의껏 대답했다. 그러나 문뜩 현타가 와서 술자리 중간에 나와 담배를 피웠고, 나의 태도에 대해 곱씹었다. 비단 그 자리뿐만 아니라 지금껏 있었던 자리들까지 한 번에 복기했었는데 제법 현타가 왔다.
예전엔 어리다는 이유로 그런 태도에 대해 어느 정도 용납할 수 있었으나 곧 서른 중반이 되어가는 나이에 아직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분명히 문제가 있는 사람이고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지금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까는 게 아니라, 나의 태도에 대해 까는 것이다. 쥐뿔 잘난 것도 없고, 그렇다고 첫 자리에서 엄청난 매력을 뿜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거에 아주 어색해하고 호응도 잘하지 못한다. 조금 더 유연해졌으면 좋겠는데, 괜히 나를 그 자리에 초대한 형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위의 얘기를 해서 그런지 이런저런 과거가 생각났다. 5~6년 전인가 싶다. 지인의 초대로 현 국회의원의 사무실에 방문한 적이 있었고, 면담한 적이 있었다. 당시 지인이 국회의원과 친분이 있었고, 내 얘기를 던진 적이 있었는데, 궁금해했고 만나고 싶다는 제안을 들었다. 그리고 찾아갔는데, 그 사무실에는 내 또래의 청년 여러 명이 그를 만나러 대기하고 있었다. 각각의 내용은 다 다르지만, 대략적인 큰 줄기는 ‘취업 청탁'이었다. 내가 아는 지인도 그를 통해 어느 국가 기관에 취업했었고 그 후 그 의원의 행사에 무조건 참여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마침내 그를 만났다. 이런저런 여행 얘기, 책 얘기, 당시 했었던 방송활동 등 얘기를 하다 그가 문뜩 나에게 물었다.
"자네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나?”
잠깐의 고민도 없이 "원하는 게 없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였다. 사실 그 당시 나의 상황을 따지고 보면 취업이 절실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똑같은 스펙을 가지고 더 좋은 기관 그것도 국가기관에 들어가면 준공무원 대우를 받으며 적당히 한 철을 보낼 수 있었고 잘 보이면 보좌관도 할 수 있었으나 정말 원하는 게 없었다. 이윽고 이어지는 자칭 ‘xxx 의원을 지지하는 청년회'의 뒤풀이는 더 가관이었다. 술자리 도중 일어나 집에 갔다. 아마 굉장히 유치하게 생각했던 것이고, 그런 인간들의 속성이 훤히 보여서 꼴 보기 싫었던 것 같다. 노인은 젊은이의 육체를 원하고, 젊은이는 노인의 지식과 경험을 원해 동성애가 권장됐던 소크라테스 시대 때에도 아마 그렇겠지만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것이 나에겐 맞지 않았다. 만약 그때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은 잘 부탁할 수 있을까? 처자식이 없어서 절실함이 부족한 것일까? 야망이 없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지나고 보면 알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