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있는 남자
내가 너에게 위로를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너에게 엄청난 위로를 받거든. 가끔 술에 취해 들어와 침대에 고꾸라져 아픈 속을 잡고 뒹굴고 있으면 너는 이내 내 배 위에 올라가 4kg의 체중과 지구의 중력을 최대한 이용해 앞발로 꾹꾹 눌러줄 때마다 나는 너에게 큰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항상 내 머리맡 오른쪽에 너의 자리를 만들어 세상을 품은 자세로 쌔근쌔근 자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치 살아있음을 느낀단다.
그냥 가끔 너를 볼 때마다 슬퍼. 고양이의 생명이 길게 살면 20년 정도 된다고 하던데, 벌써 3년이란 시간이 지났네. 이제 4년 차를 곧 맞이할 너에게 최고의 선물은 과연 무엇일까? 무한대로 제공하는 츄르일까? 아니면 새로운 장난감일까? 나를 닮아 뭐든 금방 질려하고 자주 무기력한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아는 형은 자기 고양이에게 1천만 원을 투자해 줄기세포를 맞혔다던데. 너도 나중에 줄기세포 맞을래? 자연스럽게 힘이 빠지고 움직임이 둔해지는 게 사람이든 동물이든 간에 시간에 의해 나약해지는 것은 똑같은데. 나를 닮은 네가 과연 인위적인 것을 좋아할까? 혹시 그런 식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게 너의 바람이 아닌 나의 욕심일까? 잘 모르겠다. 조그만 소원이 하나 있다면 너랑 꿈속에서라도 대화하고 싶은데. 인격이 아닌 묘격이라 표현해야 할까? 너의 무의식 속엔 무엇이 있을까? 지성이 없다면 야성만 가지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3년 전 장 그르니에의 섬을 우연히 읽었고, 그 와중 어릴 적 고양이에 대한 트라우마가 살짝 사라지고 고양이에 대한 생각이 조금 변할 무렵. 나에게 조심히 그리고 친절히 다가온 너와의 인연이 생겼지. 기억나니? 그 첫 순간. 당시 생후 4개월 무렵 나의 손바닥만 한 지구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였던 너는 어느덧 건강하고 튼튼한 그리고 착한 고양이가 되었다. 나와 달리 사람에 대한 선입견 없이 집에 놀러 온 모든 사람들에게 살며시 다가갔고, 이내 금세 친해지는 아주 사교성 좋은 고양이가 되었지. 내가 개를 안 키워봐서 모르는데, 사람들은 너에게 개냥이라고 부르더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너의 화장실을 치우면서 너의 소변과 대변을 통해 건강 체크를 하고, 네가 속을 게울 때마다 그 색과 부속물을 확인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쓸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너는 나의 염려와 걱정을 뒤로하고 무심하고 시크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지. 그래도 괜찮아.
한 가지 걱정인 것은 헤비 스모커인 나 때문에 너의 폐가 어떻게 될까 봐 그건 걱정이 되더라. 그러니깐 나 담배 피우러 베란다에 나갈 때 제발 좀 쫓아오지 마. 안 도망가. 그것만 빼면 괜찮을 것 같다. 아,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옥상 문은 못 열겠어. 내가 쫄보라 그리고 너를 못 믿어서 옥상 산책 냥이로 키우기는 꽤나 신경이 쓰이거든. 미안해. 그 대신 세상 구경은 가끔 시켜줄 테니, 그것만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네가 생각보다 머리가 나쁜 거는 내가 잘 알거든.
너에 대한 소회는 여기까지만 할게. 건강히 잘 살자.
따스한 가을햇살 아래에 잠들어 있는 너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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