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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Jul 19. 2023

Energy Flow

누워있는 남자 

어젯밤엔 온 세상이 쓸쓸한 광야 같았는데, 아침이 되니깐 안 그래요. 참담한 비애와 무한 긍정의 극과 극의 대립 속에서 늘 반복되며 나 자신을 학대하고 미워하고 나무라고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칭찬하게 됩니다. 

     

일어나자마자, 지난밤 냉동고에 얼려 놓은 맥주잔에 갓 달인 에스프레소 4샷을 넣고 얼음을 마구 때려 넣어줍니다.     

그 완성된 4샷 아메리카노를 들고 테라스에 나가 벌컥벌컥 마시며 담배를 연이어 두 대를 피웁니다. 그렇게 말초 신경을 각성시킨 다음에 다시 거실로 들어와 향을 피우고, 432Hz 이상의 사이키델릭 혹은 명상 음악을 들으며 찬물로 샤워를 합니다. 그런 다음 집 근처에있는 백사실 계곡으로 나가 그루터기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10분 정도 호흡을 조절한 채 명상을 합니다.      


들숨과 날숨,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지켜봅니다. 잡념이 떠오를 땐 어김없이 ‘모른다’를 외쳐 뇌를 초기화 시킵니다. 들어 마시는 숨 5초, 내쉬는 숨 5초 그러다 천천히 호흡의 양을 늘립니다. 이내 짧은 삼매에 잠깁니다. 집으로 돌아와 간단한 청소를 하고 물루의 화장실도 청소합니다. 지난밤에 물루의 대소변 상태를 확인하며 건강 체크를 합니다. 별일 없으면 머리를 단정히 하고 옷도 깔끔하게 입습니다. 아, 크리드 향수를 뿌리는 걸 잊었네요. 크리드 어벤투스 오드 퍼퓸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향수입니다. 첫 향은 과일을 연상케하는 푸르트함이 있고 시간이 좀 지나면 미들노트의 향이 서서히 올라오는데 마치 비오는 날 장작을 태울 때 나오는 우디함이 과일향을 뚫고 나와 남성다움 향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마치 소년에서 청년 그리고 중년으로 향해가는 저의 아이덴티티와 제법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윽고 책상에 앉아 반야심경 사경(베껴씀)을 하고 마음 정리를 한 번 더 합니다. 이후 오전 10시가 되면 집 근처 절에서 부암동으로 울려 퍼지는 이웃 스님의 염불 소리를 들으며 글을 씁니다. 저의 글쓰기는 평범한 직장인들처럼 정해진 시간에 하는 것이 저의 특징입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해야만 뭔가 사회인으로서 소속감도 생기고 남들 놀 때 놀 수 있어서 저도 좋거든요. 집에서 쓰는 것이 아니면 국립 현대미술관에 있는 열람실에서 글을 씁니다. 그곳에서 글을 쓰면 마치 럭셔리한 집무실에서 쓰는 것 마냥 제 개인 사무실인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저는 그곳을 아주 좋아합니다.   

   

도서관이 문을 닫을 오후 5시 30분이 되면 천천히 나와 근처 벤치에 앉아 서쪽으로 저물고 있는 태양을 바라보며 바흐의 Goldenberg bariation bwv 988을 듣습니다. 이후 서촌에 있는 요가원에 6시 30분까지 가서 수련을 하고 스쿠터를 타고 인왕-북악산 길을 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후 간단한 저녁 식사 겸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거나 가벼운 산책을 즐깁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테라스에 있는 화초들에 듬뿍 물을 주며 무럭무럭 잘 자라기를 조용히 희망합니다. 침대에 눕기 전, 코튼 향이 나는 섬유 향수로 침구를 듬뿍 적시고 또한 가습기에 아로마 오일이 섞인 물을 채워줍니다. 자, 이제 눕습니다. 고양이 물루가 머리 위나 옆에 같이 누워 잘 준비를 하네요. 나는 그 녀석의 목덜미를 간지럽히며 함께 잠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을 땐, 재미없는 우주 다큐멘터리를 튼답니다.      

아마 곧 잠에 들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하루 고생 많으셨어요. 잘 자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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