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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Jul 19. 2023

길 잃은 개

누워있는 남자 

1.

나는 어릴 적부터 파괴된 세계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세상이 마음에 안 들었으며 편을 가르고 이분법적으로 사는 세계에서 싸우는 기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파괴된 세계는 전쟁, 재난과 같은 물리적 현상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가치 및 규범의 붕괴를 의미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태어난 세상은 남과 북이 물리적으로 분단되어 있으며, 내가 속한 세상은 여러 다양성이 무시된 체 입신양명 및 성공 등의 획일성만을 강조하는 사회였다.     

 

특히 가정이라는 작은 세상 안에서 나의 아버지 또한 어릴 적부터 나에게 단 한 가지만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와 일탈을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그러했을 수도 있겠는데 우리 아버지는 남들보다 좀 더 빡센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마 전생에 최소 영조 혹은 스탈린)     


       ‘성공’      


학창시절 누구보다 단정해야 했고, 오로지 공부만 해야 했다. 아버지는 ‘무엇을 해라’라는 말보다는 ‘하지 말라’는 말이 더 많았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말 보다 ‘어떤 사람이 돼야만 한다’라는 말만 했다.      


나는 그의 말과 생각에 심각한 염증과 자유에 대한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어느새 폭발을 해서 20대 초반에 다니던 학교도 허락 없이 그만두고 가출을 했다.    

  

법정스님이 말씀하시길 안 좋을 때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나의 상황이 딱 그러했다. 함부로 연을 맺었고, 그 맺은 연을 통해 생긴 상처 때문에 나의 세상을 파괴하고 나라는 존재의 흔적을 세상에서 지우기 위해 아무도 날 알아 볼 수도 없고 죽어도 부고조차 한국으로 전해지지 않으려면 세상의 끝에 가야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당시 죽을 만큼 외로웠다.    

  

새가 알에서 스스로 깨어나듯, 스스로 자각 하는 행위는 진통 그 자체였다. 그리고 세상의 끝으로 향해갔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다. 날지 않으면 떨어져 죽을 ‘발 없는 새’와 같았다.   

             


2. 

그때는 그랬다. 겁은 많았으나 두려움의 눈빛을 가리려고 짙은 선글라스를 꼈고, 왜소한 체격을 가리기위해 머리카락을 길게 늘렸고, 목소리가 점잖아서 말할 때 마다 담배물고 비속어를 남발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내가 죽겠다고 새장 밖을 나섰다. 아니 사실은 살려고 했던 강력한 의지였다. 아마 그때 당시 나를 지켜 본 사람들은 알았을 것이다. 내가 굉장히 살고 싶었다는 것을. 용기는 없지만 무모했던 스물 넷의 청년은 다짜고짜 인도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로얄 엔필드라는 클래식 바이크(죽더라도 간지는 내야했음)를 타고 세계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북인도 라다크 지역을 찾아갔다.     


뱀처럼 구부러진 길이 마치 땅 밑에서 하늘 끝까지 닿는 듯 처럼 보였고 그 길 옆에는 천길 낭떨어지였다. 나는 그 길을 헬멧도 쓰지도 않은 채 흙먼지와 군용트럭의 매연을 얼굴로 받아가며 꾸역꾸역 올라갔다. 라다크에서 나는 달라이라마 스님을 만났고 그의‘용서하세요’라는 주제의 법문을 듣고 그때부터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녹이기 시작했다. 그 후 남쪽으로 머리를 돌려 뭄바이까지 산 넘고, 사막건너 '무언가'를 찾으려고 다가갔다. 그러나 인도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했다. 이후 돈이 떨어져 영국으로 건너갔다. (영국으로 간 이유는 무비자로 6개월간 체류할 수 있었음)     


남은 돈 300만원에서 비행기 표를 사고 난 나머지 금액은 대략 200만원대, 나는 겨울을 버텨야했고 자연스럽게 보내야했다. 그때 당시 나의 꿈은 딱 한 가지였다. 서에서 동으로. 런던에서부터 서울까지. 그것도 오토바이로. 목적은 굉장히 단순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국경선을 맨몸으로 주파할 생각에 기분 좋은 상상도 했다. 마치 내가 고대 그리스 전설에 나오는 오딧세이가 된 것 마냥 스스로에게 서사를 부여했다.   

   

막상 내가 계획한대로 유라이아 대륙횡단을 한다면 나는 굉장히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고 이후 앞날은 내가 지나온 비포장길이 아닌 포장된 도로일 것 같다는 굉장한 착각을 했었다. 서쪽의 끝에서 동쪽의 끝까지. 전의 삶이 끝을 보지 못 해서 그런지 나는 끝을 보고 싶었다. 죽어서라도. 그 정도로 간절했다.    

 

영국에 체류했던 6개월 동안 나는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노동 환경이 조금 더 나아졌는지. 그때는 그랬다. 하루에 15시간 일을 했고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오전)만 쉴 수 있었다. 그렇다고 시급이 높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한 달을 꼬박해서 한화로 약 200만원을 벌었다. 왜 그렇게 불리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곳에 있어야 했던 이유는 여행비자로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태 안 좋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힘든 겨울이 지나고 마침내 봄이 찾아왔고 영국에서 장마가 막 시작될 무렵 나는 비로소 오토바이를 장만할 수 있었고 집으로 부모님이 없는 집으로, 목적지 없는 집으로, 집이 없는 집으로, 무작정 동쪽으로 스로틀을 당겼다.     


도버해협을 건너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발칸반도, 그리스, 폴란드, 발트3국, 스웨덴, 마지막으로 노르웨이까지. 3개월 가량 길 위에서 보냈다.     


결국엔 나의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당시 제3국에서 러시아 비자를 받기는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나는 나 이전의 여행 블로거들의 흔적들을 좇아 해당 국가의 러시아 대사관에 직접 방문하고 문의를 하였지만 결국 실패했다.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폭발한 나는 결국 영사의 얼굴에 헬멧을 던졌고 3일간 얼굴 험학한 체첸인들과 함께 수감됐다. 벌금도 털려서 거지꼴이 됐다. 죽고 싶었다.    

  

멋지게 대륙횡단을 하여 영웅 오딧세이 처럼 집에 들어가고 싶었던 나의 꿈이. 진한 코발트 색의 깊고 푸른 발트해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좌절감에 뼈가 시릴 무렵, 인도에서 만났던 알렉스라는 친구에게 스톡홀름에 놀러오라는 얘기를 듣고 마지막 여행지를 북유럽 세계관의 세상의 끝인 노르드 캅이라는 곳으로 가는 마지막 계획을 세웠다. 그 이후의 계획은 아무것도 없었다.     


북유럽의 살인적인 물가와 당시 여름이었기에 맞이한 백야는 또 다른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 또한 한여름의 북유럽 모기들은 한국의 엥엥거리는 귀여운 것들과 달리 영화 프라이벌에서 나오는 것 같은 지옥에서 온 악마들처럼 살이 노출되기만 하면 물어 뜯겨 나중엔 얼굴이 두들겨 맞은 사람의 얼굴처럼 퉁퉁 부어다녔다.          

그렇게..그렇게...힙겹게 세상의 끝에 도착했다. 세상 끝에서 바라본 북극해 그리고 그곳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거대한 고래까지. 그 고래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세상 끝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건 너의 집착이야 바보야" 나는 허무함에 다리를 주저 앉았다. 막연한 상상 속에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발할라로 올라가는 천국의 계단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만약 그 계단을 밟았으면 난 죽었겠지) 이내 체념하고 시원하게 담배한대 핀 뒤 다시 스톡홀름으로 돌아갔다. 나의 여행은 거기서 끝이 났다.     


길 잃은 개. 위의 치기어린 경험담을 적은 나의 첫 번째 에세이다. 제목 따라 인생 간다라는 말이 있듯 (모짜르트는 레퀴엠을 쓰고 죽음) 나도 책을 내고 길을 잃었다. 사회인도 그렇다고 예술인도 아닌 어설픈 사람. 그러다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또 실패를 했다. 길을 잃은 개였는데 그 와중에 또 사랑까지 잃었다. 

얼마 전 지인에게 찰스 부코스키의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를 선물 받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길을 잃은 개가 아니라 사랑을 품고 지옥에서 온 개야”     


그 이후 나는 ‘경계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게 좋든, 싫든 경계인의 최후는 이방인에 나오는 뫼르소 처럼 탄알 일발 장전 후 관자놀이에 꽂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이따금씩 블로그 혹은 DM으로 책 잘 읽었다며 응원의 메세지를 주시는 분들이 있다. 가끔 그런 메세지를 받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스스로 보잘 것 없는 삶이라 생각했는데 나는 누군가에게 나침반이자 방아쇠가 될 수도 있겠구나. 그 분들을 위해서라도 나의 족적들이 이어져 선으로 이어진 방향이 밝은 빛으로 가는 거라고 스스로 자부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나는 누군가의 등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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