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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맛나장단 Jun 20. 2021

18살 우리 딸이 집을 떠났습니다.

코로나 덕분에(?) 1년 넘게 집에서 함께 지냈던 딸이 오늘 아침 미국행 10시 비행기를 탔습니다.

공항에서 보낼 때는 웃으며 이별했는데, 막상 딸을 생각하며 글을 쓰려고 하니 코끝이 찡하네요.

언젠가는 추억이 될 18살 딸의 모습을 엄마의 눈으로 기억하고,

조금은 다른 선택을 한 딸의 모습이 누군가의 선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몇 글자 적어봅니다.


중3 2학기, 동네 학교를 떠나 거꾸로 캠퍼스에 입학했습니다

딸은 중학교 3학년 2학기부터 거꾸로 캠퍼스라는 대안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딸의 거꾸로 캠퍼스 입학은 조금 갑작스러운 계기로 찾아왔습니다.

딸은 창업가 엄마를 둔 덕에 세상의 변화에 대한 다양한 소식과 사례들을 접하며 자라왔습니다.

공교육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네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학교 안 다녀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건네곤 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학교 생활이 즐거웠던 딸은 그런 엄마의 말에 정색하며

'나는 학교가 좋아'라고 답하곤 했습니다.


저는 딸이 저에게 찾아온 손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손님같은 딸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하고.

그래서, 딸을 키우며 아래와 같은 기준을 적용하려 노력했습니다.


'딸이 스스로에게 맞는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자'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있음은 알려주되, 선택은 스스로가 하도록 존중하자.'

'본인의 선택이 옳도록 책임지도록 하되, 도움을 청하는 경우 도와주자'


딸은 다소 급진적인 엄마의 제안에 늘 보수적인(?) 선택을 하곤 했습니다.

저는 (다소 서운하긴 하지만) 그런 딸의 선택을 존중했고요.

하지만 중학교 3학년이 되어 친구들이 입시 스트레스에 시들어가자 딸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친한 친구가 학교를 안 나오고 있는데, 그 친구에게 도움이 될것 같아 거꾸로 캠퍼스 입학설명회에 다녀오겠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거캠을 선택한다면 본인도 생각이 있다면서.

평소에 다른 선택을 해도 괜찮다고 말해 왔지만,

막상 딸이 동네 학교를 떠나 대안 학교를 다닌다고 하니 겁이 났습니다.

저도 거캠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어떤 시스템으로 하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부랴부랴 저희 부부도 입학 설명회를 신청해 참석했습니다.

설명회에 참여한 아빠는 설명회 내내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아직 실험학교이니만큼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다른 선택을 하려고 하는 딸에 대한 걱정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설명회에 다녀온 후

정작 설명회에 참여할 계기를 마련해준 친구는 거캠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딸은 거캠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거캠의 기숙사 입소가 선택으로 변경되었지만

딸이 입학할 당시에는 기숙사 입소가 필수였습니다.

딸은 집을 떠나 새롭게 기숙사 생활을 준비하면서 또 다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숙사 입소에 필요한 물품 리스트를 적어 구입하고 기숙사로 배달되도록 하는등 그에게 다가올 독립생활을 차근차근 준비했습니다. 저는 그런 딸 아이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대견하기도 했고요.


고1 11월, 학교를 엑싯했습니다

다행히도 딸은 새로운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친구들과도 재미나게 기숙사생활과 학교 생활을 했고, 단짝 친구들도 생겼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체험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딸은 프로젝트 학습 위주로 운영되는 거꾸로 캠퍼스의 학습방식에 비교적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거꾸로 캠퍼스는 지식을 입력하기 보다는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학습을 돕고 있습니다.

매 모듈( 한 학기에 2번의 모듈이 운영됩니다)마다 개인 프로젝트와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하고 있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필요한 지식을 배우는 방식입니다. 팀원들과 창경궁을 소개하는 영어 영상을 제작하면서 창경궁의 역사를 공부하고, 영어를 공부하고, 편집 툴을 익히게 됩니다.

물론 이 같은 방식이 갖고 있는 한계도 있습니다.

정규 교과에서 배우는 내용들을 충분히 배우지 못해 기초학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다만, 이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정도도, 효과도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공교육의 한계를 깨닫게 된 부모님들로부터 거캠에 대한 문의를 받을 때마다 결국 케바케이고 선택의 문제라고 조언하곤 합니다.


어느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으니, 결국

1) 우리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더 행복하게 자랄까?

2) 다른 선택의 결과를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질문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딸은 '바쁘다' '힘들다'는 연발하면서도 열심히 학교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이 '학교를 그만 두겠다(통보 ㅠ)'고 했습니다. 저희는 화들짝 놀라 '무슨 일이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딸은 거캠생활을 통해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 알게 되었으니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솔직히 딸은 거캠에 다니기 전까지는 친구들과 노는 것 외에는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거캠생활을 통해 다양한 세상을 접한 후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로 변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이 지점에서 거캠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다양한 언어(영어, 일어, 스페인어, 불어, 컴퓨터언어 포함)를 깊이 공부해 보고 싶고, 덕질도 몰입해서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음,,, 덕질에 몰입할 나이는 아닌 것 같지만, 하지 말란다고 안 할 아이가 아니라서

( 저희가 그렇게 키웠어요,,, 흑흑) 일단은 원하는 대로 해보라고 했습니다.


**학교 엑싯 이야기는 아래 브런치 글을 참고해 주세요^^

학교 exit 후 스타트업 join


검정고시로 학력 인증을 받았습니다

딸은 학교 엑싯 후

스타트업에서 마케터로 일하기도 하고,

미뤄두었던 덕질도 실컷 하고

영어와 일어 공부, 영상 편집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덕심으로 몇 날, 몇 일을 새워가며 편집한 영상이

논현역 사거리 광고판에서 돌아가자 온 가족이 감상하러 가기도 했습니다.

( 자세한 이야기는 요기 )


저희는 참 행복한 10대의 하루하루를 응원하긴 했지만

검정고시 일정이 다가오니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딸은 검정고시를 한 달 앞둔 시점에 책을 몽땅 사 와 시험공부 준비(?)를 했습니다.

저희는 그런 딸의 모습에 검정고시를 저렇게 벼락치기로 준비해도 되나 싶어 여전히 걱정스러운 마음이 한가득이었지만, 결국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고 보니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검정고시가 쉬운 걸로,,,,^^:;)


딸은 검정고시 신청부터 준비까지 일련의 일들을 스스로 해냈고,

저희는 일관되게 응원하는 마음만 더했습니다.

남들은 이런 저를 보고 딸을 참 편하게 키운다고 놀리기도 합니다.

아,, 딸이 검정고시 신청을 미루고 있다가 마감날에 신청하려고 보니 마지막 날에는 인터넷 신청이 안 돼서

마감 2시간 전에 모교에서 증명서 떼어 택시 타고 안양교육청을 방문해 가접수 승인 후 서류 보완 조건으로 접수를 완료하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아직 18세, 새로운 세상에서 경험 자산을 쌓기로 했습니다


저는 일하면서 제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기회가 될 때마다 딸에게 말하곤 합니다.

말하면서 제 생각도 정리하고, 조금이라도 딸과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서 입니다.

엄마를 통해 늘 스타트업 소식과 창업가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던 딸이 어느 날 제게 말했습니다.

엄마, 창업은 어릴 때 하는 게 좋은 것 같아.
어렸을 때 하면 잃을 게 없잖아.

스타트업하는 언니, 오빠들 따라다니던 꼬맹이가 훌쩍 커서 혼자서 짐싸고, 출국 준비 하는 예비 어른이 되었어요

아마도 창업하면 얼마나 힘들지 모르니 하는 소리인 것 같습니다.

얼마나 힘든지 몰라야 할 수 있는 게 창업인 것 같기도 하고요.

딸은 앞으로 1년 동안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세상을 경험한다

외에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대학을 갈지 아닐지,

대학을 간다면 어떤 대학을 갈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살아갈지,

아무것도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이 전혀 불안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보기로 했습니다.

인생을 살아보니 1년쯤 자유롭게 살아봐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게 18세라면 더 없이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저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고등학교 과정을 끝낸 딸이

넓은 세상에서 많이 보고, 듣고, 느끼며, 스스로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보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 고민을 통해 무언가 앞으로 나아갈 단서를 찾게 되면 좋지만, 아니어도 좋고요.


어차피 인생은 모르는 것이고,

어차피 인생은 하기 나름이니까요.


훌쩍 성장해서 돌아올 우리 딸 예지의 1년 후를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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