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의대생의 음식 중독 탈출 계기
저속노화 생활 초반에는 엄격한 MIND 식사를 따랐다.
간단히 말하면
단순당과 정제곡물을 피하고
소나 돼지고기 대신 생선과 가금류를 섭취하고
콩으로 만든 음식과 베리류 과일을 매일 먹고
유제품을 자주 먹지 않는 방법이다.
백미를 렌틸콩밥으로 바꾸고
카페에서 당이 든 음료를 마시지 않게 되었다.
아침에 매일 빵이나 샌드위치를 먹다가
과일과 두유를 주로 먹게 됐다.
그랬더니 조금씩 체중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땐 그게 혈당 변동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저속노화 생활 초반에는
스리라차 소스, 저지방 요거트, 통밀 크래커, 두유로 만든 면, 닭가슴살 큐브 등 대체식품이나
알룰로스, 스테비아 등 대체당을 넣은 제품을 적극적으로 소비했다.
탄, 단, 지, 무기질 등 음식에 든 성분이 전부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요즘은 단순당, 정제곡물도 적게 먹지만
오히려 가공정도가 높은 음식을 더욱 멀리하고 있다.
정희원 교수님이 유튜브 채널 중 한 코너로 운영하시는 ‘정희원의 도서관’에서 추천하신
<<초가공식품>>이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영국의 의사 선생님이 썼다.
뭔가 무시무시한 제목에 이끌려 첫 페이지를 넘겼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내 머릿속 바보 여러 명 중 1명씩 도가 트는 소리가 들렸다.
이 책에 따르면 소를 목장에 풀어놓으면
소가 무슨 칼로리 기록 어플을 쓰는 것도 아닌데!
마찬가지로 인간 아기도 여러 종류의 자연식품을 무한 공급하는 조건에서는
일례로 우리 몸속 수분의 양에 대해 생각해 보자. 체수분의 양은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실제로 물을 지금 마실지 나중에 마실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지만, 길게 놓고 보면 체수분의 양, 그리고 그에 따라 물속에 녹아 몸을 구성하고 있는 수십만 가지 화학물질의 농도도 내부적으로 정교하게 통제되고 있다. 당신이 무언가를 마시고, 땀을 흘리고, 오줌을 싸도 이 수치는 일정하게 유지된다. 수분 균형에 대한 의식적 통제는 기껏해야 일시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며, 대체로 착각에 불과하다. … 우리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먹을지는 의식 수준보다 한참 낮은 수준에서 작동하는 복잡한 시스템에 의해 결정된다. <<초가공식품>>
이 대목을 읽으니, 시상하부-뇌하수체-신장을 통해 일어나는 체내 수분 조절이 떠올랐다.
‘그래. 목마르면 물 마시면 되고, 많이 마셨으면 오줌으로 나가는 거지.
물 마시는 걸 억지로 참거나 너무 많이 마시는 건 신장이나 뇌에 내과적 또는 외과적 문제가 있는 거지.
근데 왜 먹는 건 주로 의지로 조절한다고 으레 생각하는 걸까?
의지로 조절하는 게 아니라면 왜 나는 살이 쪘던 걸까?
내 뇌에 문제가 있었나?’
에너지 밀도가 높은 초기호성 식품이 중독성 약물에 영향을 받는 것과 동일한 뇌의 회로와 구조물을 자극해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뇌 스캔 연구 데이터가 쌓이고 있다. <<초가공식품>>
가공정도가 높거나, 특히 첨가물이 든 음식이 식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으면
섭식 행위를 조절하는 뇌내 신경 회로의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준다.
뇌를 포함한 사람의 몸은 가공된 물질을 알맞게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섭식 회로의 변형 정도가 크면 무엇을 얼마나 먹을지 조절하는 본연의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런 경우 마약이나 술에 중독된 사람의 뇌 영상 진단과 같은 패턴이 나타난다고 한다.
마약, 술, 초가공식품의 공통점은
전두엽에서 도파민을 매개로 작동하는 보상 회로의 민감성을 떨어뜨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렇게
알아서 필요한 만큼 음식을 골라 먹는 무의식적 능력을 잃어버린 상태를 비만으로 본다.
그러면서 이렇게 적는데 아주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암이나 당뇨에 걸리듯 과체중과 비만에 ‘걸릴’ 뿐, 비만 자체가 그 사람의 정체성은 아니다. … 사람이 무언가를 안고 살아간다고 해서 그것으로 그 사람을 정의할 필요는 없다.
의지력을 발휘해서 체중 증가를 뒤집을 수 있다는 개념과 연결된 또 다른 혼란스러운 개념이 있다. 비만이 있는 사람을 두 범주로 나눌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 개념에서는 생물학적 혹은 유전학적 질병 때문에 생긴 것이라 비난할 수 없는 비만이 있고, 스스로의 잘못된 선택으로 비만이 된 사람이 있다고 본다. 언론에서도 툭하면 이런 생각을 조장한다.
이 책에 따르면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비만이나 과체중을 ‘안고’ 살아왔던 것이다.
살찐 상태가 일종의 내 ‘고유한 특징’처럼 여겨지곤 했는데.
유전이라서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면?
나는 한창 하던 미국의사시험(USMLE) 공부도 제쳐두고 이 책을 후루룩 읽었다.
결과적으로 내용을 과도하게 단순화해서 기억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위험회피 성향이 높은 나의 편도체가 민감하게 반응했나 보다.
내 뇌는 책 내용을 마음대로 이렇게 요약해 버렸다.
거의 무슨 프로파간다처럼 뇌리에 박혀 버렸고,
이때부터 마트에서 파는 과자, 음료수, 아이스크림, 라면 따위가
정확히는 거기 든 유화제, 안정제, 산도조절제, 변성전분, 무슨무슨 인산나트륨, 색소, 향료 따위가
공포스럽고 역겹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전두엽이?
하… 이미 뇌종양도 있는데 뇌가 망가질 리스크를 여기서 더 질 순 없잖아.
어릴 때부터 과체중 이상이었던 내 섭식 중추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스스로 먹는 양을 조절하는 능력 같은 건 유아기에 없어졌다.
다행히도 초가공식품을 멀리하면 다시 정상화된다는 이야기도 책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섭식 중추가 성했던 적이 없는 내 과거를 떠올려본다.
어린이집 다닐 땐 주로 외할머니 댁에서 생활했는데
손에 팔뚝만 한 불고기햄을 그러쥐고
"이건 내 거야." 하고 햄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면 햄에 대한 소유권을 공식화하고 싶었던 모종의 상황이 있었나 보다.
모든 종류의 야채는 '못' 먹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 앞 분식집에서 당시 물가로 2100원어치의
떡볶이, 피카추 돈까스, 설탕을 치지 않은 핫도그 (이때부터 단맛은 싫어했나 봄), 치킨볼, 치즈스틱을 외상해 먹고
건강에 좋지 않은 걸 왜 그렇게 많이 먹느냐며 엄마 차 안에서 혼났던 기억이 아주 생생하다.
중학교 3학년 때
다이어트 좀 해보겠다고 한동안
파리바게트에서 칼로리가 320 정도였던 소시지소프트프랑스빵을 사 와 학원에서 먹곤 했다.
(지금은 칼로리가 510으로 올랐다는데 레시피가 더 자극적이게 바뀌었나 보다)
그러다 결국 김밥 4줄을 포장해 와서 앉은자리에서 다 먹어 버렸다.
고등학생 때는 식단표가 나오면
매일 각 메뉴를 형광펜으로 그어서 주관적인 선호도 기준으로 등급을 매기고
'A+급'의 음식을 온종일 갈망하곤 했다.
하루는 급식실에 늦게 가 치즈떡볶이가 품절되어 배식받지 못했던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영유아처럼 울어버렸다.
그때 본인의 떡볶이를 나눠 준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부끄러운지...
성인이 되어서도 내 섭식중추는 늘 그랬듯이 온전치 못했다.
특히 월경전증후군(PMS) 기간에는 완전히 엉망이 된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회사를 다닐 때도, 의대 학기 중에도
월경 전 일주일 동안은 하루 종일 특정 음식을 먹는 상상을 했다.
월경 전이 아닐 때도 자주 그랬다.
그걸 원동력으로 업무나 수업 시간을 겨우겨우 버티는 식으로 살아갔다.
그 백일몽의 주인공은 주로
떡볶이, 마라탕, 제육볶음, 핫도그, 붕어빵, 순대, 와플, 돈까스, 아이스크림, 과자 등
정제곡물이 많거나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이었다.
회사나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끝나갈 때쯤엔
무슨 일이 생겨서 그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될까 봐 절박했다.
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실제로 정확히 그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기라도 하면 패닉에 빠졌다.
공황장애처럼 가슴이 조여들고, 저혈당처럼 손이 떨렸다.
그리고 며칠 내에 어떻게든 그 음식을 손에 넣어야만 했다.
나는 섭식을 조절하는 신경 회로 손상에 의한 음식 중독과,
그에 따른 비만 내지 과체중을 20년 이상 앓았던 것이다.
저속노화 습관을 시작하고,
이어 초가공식품을 멀리 했다.
2024년 1월 153cm, 56kg이었던 나는
2025년 6월 현재 약 8개월 동안 46~49kg을 유지 중이다.
이 정도 몸무게는 의학적으로 사망률이 가장 낮다고 알려진 BMI 21 부근이다.
체지방률은 34~36%에서 27% 정도로 내려갔다.
더 이상 포동포동한 상태가 내 특징이 아니게 되었고,
대사적으로 이전보다 훨씬 건강한 상태가 되었다.
더 이상 당이 떨어지지 않는다.
간식을 안 먹어도, 아니 안 먹어야 더 멀쩡하다.
이제는 뭐랄까,
“XX 음식점의 마라크림떡볶이가 먹고 싶어 미치겠다. 계속 그 느끼하고 매운맛이 떠올라. 치즈는 반드시 올려야 돼. 그거 못 먹으면 죽을 것 같아. 아니다 벌써 죽을 것 같아 너무 먹고 싶어서. 수업 언제 끝나? 아”
이랬던 마음의 소리가 이렇게 바뀌었다.
음식과 나의 관계,
그리고 그 변화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3부에서 다시 자세히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