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식 잡채, 몽골 스타일의 된장국
여행 가기 이틀 전 나는 군대 선임을 만났고,
내가 속해있던 부대는 정말 빡센 부대였기 때문에 매일 지옥이었다. (해병대 사령부 의장대, 하루 과업 대부분을 총 돌리는 것에 썼다.. 전역할때까지..)
군대에서 정말 의지하는 선임이었던 터라 그 선임에게 여행을 가는 이유에 대해 자초지종 설명했고,
나의 계획을 두 시간 안에 하기가 부족했다.
"현수야, 너는 남들 가지 않는 멋진 길을 선택했어 정말 멋있다. 건강히 잘 다녀와"
그는 나에게 짧은 말을 뱉고 내게 무언가를 쥐여주고 떠났다.
그렇게 내 손에 쥐어진 건 3만 원과, 새하얀 편지 봉투 하나.
집으로 가는 길에 몇 번이고 편지를 되뇌었는지 모른다. 순간 나는 전의를 불태웠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나는 해내고 말 거야!!"
사실, 난생처음 가는 여행에 몇 번이고 망설였었다.
어릴 때부터 가져온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다.
학창 시절 교정기를 달고 살아서 그런지 유독 잘 웃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회화 능력도 퇴화됐다.
회화라고 해 봤자 Thank you. 하와유, 아임 빠인 땡큐가 전부였다.
그렇게 내가 택한 나라를 보면 언어에 대한 도피처였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나의 첫 세계여행 루트는 중국, 몽골, 네팔, 인도였다.
남들이 보면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특별한 여행을 계획하기로 한다.
나의 전공은 요리이고, 유럽에서 파스타, 피자를 먹는 것 보다.
인도에서 커리를 배운다거나 몽골 시골에서 음식을 배우는 경험을 중시한 여행이
내게 훨씬 재미를 줄 거 같았다.
어릴 때 CIA , 꼬르동 블루 같은 요리학교를 보고 선망했었고, 유학길에 오르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 나는 외국이라도 가서 내 한을 풀고 싶었나 보다.
25, 반오십이라는 나이에 처음 나가본 외국은 나를 기이학적으로 발전시켰고,
그때부터 나는 딱히 '유학'에 대한 한이 없어졌다.
내가 택한 배움길은 꽤 전략적이었다.
사람이 많은 도시에서 음식을 배우는 게 아닌
일부러 시골 같은 곳을 가서 최대한 많이 골고루 다른 음식을 시키고 난 후
이목을 끄는 방법을 택했다. 이는 그래야 훨씬 진득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주인이 알짱거린다면 90퍼센트는 넘어왔다는 뜻이다.
일부러 나는 한국에서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영어 문장 5문단을 외워 왔었고,
알러뷰 소리가 나오는 토끼 인형처럼 옆에 누군가 다가서면 나는 항상 이 문장이 자동 반사되었다.
" I'm Food business man" , 저는 장사를 꿈꾸는 남자입니다.
"제가 외국에 온 목적은 당신들의 음식을 배우고 제 음식을 알려드리기 위함에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 돌아간다면 외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퓨전 식당을 운영해 보고 싶습니다."
"제가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중국요리'와 한국요리를 합친 퓨전 요리입니다." 등
(다른 나라를 갈 때마다 앞의 요리를 바꾸었다. ex) 인도에 갔으면 '인도 요리', 네팔에 갔으면 '네팔 요리')
나름 직접 번역을 하고, 영어 잘하는 친구에게 물어봐 가장 트렌디한 영어 문장으로 바꿔 외웠었다.
그렇게 외우고 말한 결과 몇몇 식당을 갔을 때나, 혹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음식을 먹을 때도 나를 굉장히 신기하게 보았었다. 수염을 기르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며칠 자르기 귀찮다 보니 수염은 자리를 잡았고, 주위 사람들도 괜찮다고 어울린다고
너의 마스코트가 될 수 있다고 하니 나는 계속 길렀었다.
그러다 보니 '장꾸남' 이라는 독창성 있는 캐릭터가 탄생이 되었던 거 같다.
그 뒤로 문장을 뱉고 나서도 나는 한마디 했다.
"당신의 음식을 배워도 될까요? , 만약 당신이 하는
요리를 알려주신다면 저도 제 요리를 알려주겠습니다"
비유를 한다면 외국인 청년이 한국에 찾아와 전라도 같은 시골로 들어가서 김치찌개, 불고기백반, 간장게장 등을 주문한 후 배워보고 싶습니다. 라는 행동과 똑같다. 생각해 보면 감히 누가 알려주겠는가 싶다.
위의 방법을 통해 나는 소위 말한 '배움'을 얻었고
그리고 '식기행' 이라는 확실한 컨셉까지 얻었다.
일석 이조인 셈이었다.
그렇게 앞으로의 여행에 식기행 컨셉을 적용했다.
몽골 에르데네트라는 몽골에서 두 번째로 큰 소도시에 갔을 때 이야기다.
나도 왜 이곳을 갔는지는 지금까지 의문이다.
울란바토르를 보고 나서 적어도 몽골에서 가장 큰 도시면 임펙트는 있어야 할 것인데
그런 충격을 느끼지 못해서 갔을 가능성이 크다.
나란 사람은, 하는 일에 있어서 재미는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에르데네트에 도착하고 여느 때와 같이 영상을 찍으면서 론니 플래닛 책자에 나온 'Marcomarco pizza' 를 찾으려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사비르라고 하는 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
신기하게도, 아니 운명적이게도 그와 만남은 별빛처럼 반짝임이 느껴졌다
헐크라는 식품 기업의 대표이면서 한국어학당을 운영하고 계신 사장님인 사비르에게
나는 내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달달 외운 영어 문장을 줄줄 내뱉었다.
"저는 장사를 꿈꾸는 남자입니다."
"제가 한국에 간다면 몽골 음식과 한식을 결합한 음식점을 운영하고 싶어요"
그때 아마 사비르는 나의 타오르는 눈빛과 열정을 본 것 같다.
이야기가 끝나고, 사비르는 몽골 요리를 할 수 있는 곳을 소개해 주겠다며
다음날 우리가 처음 만난 시간에 이 장소로 다시 오라고 하였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고, 사비르를 만났다.
사비르는 그때 당시 에르데네트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고 계신 소위 말해 인플루언서(?)였고,
한국에서 몽골로 요리 배우러 온 장사꾼이라고 게시물을 올렸었다.
이 게시물은 상당히 이목을 끌었는데 몽골 각 전역에서 나를 보기 위해 10여 명의 호텔 관계자분들이 찾아왔고, 스카웃을 하기 위한 경쟁이 펼쳐졌다.
내가 선보인 음식은 몽골 스타일의 잡채와 몽골식 된장국 (된장 수프)였다.
잡채는 몽골의 전통음식인 쵸이왕이라는 볶음국수를 먹어보고 내 스타일 대로 해석해서 만들었고,
그때 당시 내가 먹은 몽골 식당의 수프가 있었는데 그 수프에 내 스타일을 가미해서 만들었다.
그 음식을 먹어보고 많은 사람은 생전 처음 느껴 보는 맛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많은 사람 중 Deedes 호텔의 매니저 루시가 나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했고 그 호텔의 총주방장으로 스카웃이 되었다.
그때 당시 나는 어떤 일을 할 때면
"이 일이 지나면 다시 올지 몰라, 해보자!"를 되뇌었다.
이 마인드는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고, 어떤 상황이 와도 그 도전 정신을 가지고만 있으면 나에겐 많은 추억과, 경험이 따라왔다.
흐릿하게 보이지 않았던 일들을 선명히 보이게 하려면 평소 꿈꾸고 있는 사소한 것들을 꾸준히 하면 된다. 처음엔 힘들지만, 막상 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다. 일을 발전 시키기 위해선 이 행동들이 정말 꼭 필요하다.
간단한 영어 문장을 외우기 시작하면서
흐릿하게만 보이는 것들이 전부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고, 별거 아닌 거라도 내뱉는 습관은 언제나 옳다.
적은 노력이라는 문장들이 모여, 행동이라는 문단들을 만들며,
결국 '기회'라는 글을 만들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말을 뱉는다.
"I'm a Food business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