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꾸남 Oct 22. 2023

에르데네트라는 도시

김치와 김밥

김치를 담그는 나

몽골에서의 두번째 도시. 에르데네트에서 처음 방문했던 식당에서의 일이다.

주문한 밥이 나와 맛있게 한 술 뜨려는데, 주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배너! 밴치니! 블라블라!"


지금도 여전히 뜻을 모르는 몽골어들만 잔뜩 오갔고,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큰 소리가 들리는 걸 보아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오늘 출근한 직원들이 모두 초보라 새 식재료를 받고서 헤매고 있었던 것. 그 상황을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나는 양해를 구하고 주방을 기웃거렸다. 자포자기한듯 멍하니 홀에 서있던 식당주인이 흘끗 나를 보더니 들어가 보라고 손짓했다.

어리둥절하며 나를 보던 직원들을 뒤로하고, 신기하게도 주방에 들어서니 요리를 할 생각에 갑자기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요리를 알려줘야겠다! '  몽골여행을 한 달 정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짧은 단어들은 습득하고 있던터라 자신 있게 말했다. "파 2, 당근 1, 계란 3! "

짧은 몽골어로 필요한 재료만을 나열하던 내가 얼마나 웃겼을까. 직원들 표정이 딱 '어쭈 얘봐라?' 하는 듯 느껴졌으니.  요리하다가 모르는 재료가 있으면 바디랭귀지로 물어보며 일일이 적어내려갔고, 처음 보는 재료지만 바로바로 음식을 만들어 주방 분들께 친절하게 알려줬다.


몽골 식재료로 만든 김밥, 김치

그렇게 완성된 음식은 김치와 김밥. 가게 직원들은 김치와 김밥을 손으로 집어들고는 맛있다며 방방 뛰어다니기도 했다. 준비되지 않은 재료로 김치를 담근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 또한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라 생각하니 모든 과정이 전혀 고되지 않았고 그저 행복한 마음 뿐이었다.

.

'장사를 꿈꾸는 남자' 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가진 것은 오로지 깡과 실패하지않겠다는 마음가짐뿐,

이 두가지가 이방인이었던 나를 어느 몽골식당의 일일요리사로 만들어주었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주방에 있는 지금, 누군가 그 날의 나처럼 깡있는 사람이 주방으로 찾아와 레시피를 공유하는 재미있는 장면들이 펼쳐졌으면.

아니면 내가 또 가고. :)

이전 06화 수이주러우(水煮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