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서평
2018.03.20.
Ⅰ. 도스토예프스키와 그가 쓴 이야기
러시아 청년의 인생은 인간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에서부터 인간의 존재를 묻는다. 글로 썼지만 마치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사람이 가지는 생각과 사고, 감정 변화를 소설 속에 생생히 표현한다. 또한 작가는 당시 러시아 사회의 모습을 함께 담아낸다. 농노제적 질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적 관계가 들어서는 과도기의 모순을 주인공의 삶으로 투영한다.
책은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가 살인죄를 저지르고, 끝내 그가 벌을 받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라스꼴리니꼬프는 극도의 가난에 시달리는 대학생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힘든 부정적 상황에서, 그는 선을 위해 악을 행할 수 있다는 사상에 경도된다. 그리고 본인의 논리적 판단을 확신하며 지나친 정의감으로 악명 있는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살해한다. 또한 살인 현장을 목격한 노파의 여동생도 죽이게 된다. 살인 이후 그는 죄를 숨긴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스스로의 예상과 달리 심리적으로 몹시 불안해한다. 죄의식에 사로잡히며 그의 생각과 사상은 무너진다. 후에 살인을 연인 소냐에게 고백하고, 그녀의 설득 끝에 자수하여 시베리아 유형 처벌을 받는다. 유형을 간 후에도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끝까지 죄의 중압감을 견뎌내지 못한 자신의 능력을 경멸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소냐의 무한한 사랑을 받아들이며 그는 마음을 바로잡는다.
Ⅱ.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난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지. 그래서 죽였어…….”
라스꼴리니꼬프는 위대한 인물이 되고자 살인을 저지른다. 사회 속에서 수많은 불의를 목격한 그는 부조리한 세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심한다. 고뇌는 세상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었다. 비범인(非凡人)과 범인(凡人)이다. 비범인은 위대한 공을 세우는 사람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살상해도 되는 인물이다. 인류의 진보를 위해서 비범인이 도덕을 저버리고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정의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범인은 기존 질서에 순응하며 복종할 뿐이다. 범인은 도덕률을 초월할 수 없다. 라스꼴리니꼬프는, 비범인은 법과 도덕을 뛰어넘는 특권을 가진다고 본다. 그는 비범인으로 프랑스의 나폴레옹을 꼽으며, 본인도 나폴레옹처럼 역사적 인물로 거듭나고 싶어 한다. 악과 폭력에 대한 순응에 분노한 그는 자신이 비범인임을 확인해보기 위해 노파를 살해한다.
하지만 그는 살인 후에 불안해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이성에 대한 믿음을 사회 정의를 위해 행동했으면서 사회와의 단절을 시도한다. 그의 행동은 그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상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정의를 깨뜨리는 모순을 발생시킨다. 소설 속의 모순은 현실 속의 이야기에도 반영된다. 현대인들도 본인이 판단하는 이성과 논리를 신뢰한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마음을 갖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러나 이내 제 2의 라스꼴리니꼬프가 되어 생각의 흠결을 발견하고 만다.
라스꼴리니꼬프는 개인의 극단을 보여준다. 자신의 사상에 깊숙이 빠진 나머지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올바른 사회를 위해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모순을 저질렀다. 한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성향은 논리를 마비시켰다. 이성을 마음의 변화에 치우치는 감정으로 변화시켰다. 신조가 깨지고 파멸로 몰고 갔다. 결국 노파의 살인은 주인공 자신에 대한 살인이 되었다. 개인이 생각이 합리적이고 이상적으로 보이더라도, 그 현실의 행동과 결합되면 너무나 지나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선과 악을 대한 인간의 태도는 명확치 않다. 노파는 사람을 괴롭히며 사악하다. 노파의 계속된 행동은 선보다 악에 가깝다. 하지만 그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건 과연 타당한가. 죄를 지음으로써 악을 제거하는 것은 더 큰 악을 낳는 명분을 제공하지 않는가. 악을 통한 정의 실현은 옳은 건가. 개인의 판단으로 악을 제거하는 실수를 경계한다. 제거하기 위한 선의 정의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의 사상과 그에 합치된 행동을 통해 여러 시사점들을 던져준다. 그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Ⅲ. 인간은 인간으로 메운다
소설 속 주변 인물을 통해 주인공의 불완전성은 더욱 잘 드러난다. 인물들 간의 차이는 인간 자체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예심 판사 뽀르피리와 주인공의 연인인 소냐가 그렇다. 예심 판사 뽀르피리는 라스꼴리니꼬프를 의심하며 죄를 추궁하고 벌을 내리는 인물이다. 뽀르피리의 예리함은 라스꼴리니꼬프가 자책과 죄의식을 더 갖도록 유도한다. 그는 주인공의 이중적인 면과 모순성을 잘 지적함으로써 법적 정의를 실현한다.
“소냐, 소냐 마르멜라도바, 세상이 존재하는 한, 소냐는 영원하리라!”
소냐 역시 라스꼴리니꼬프와 대비되는 인물이다. 소냐는 몸을 팔면서도 항상 순수한 영혼을 지니며 굳게 살아간다. 소냐는 주인공의 음울함을 감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뚤어진 라스콜리니코프가 그녀의 헌신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참사랑을 느낀다. 소냐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기에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의 행동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더 나은 인간으로 새로이 부활하고자 한다.
뽀르삐리는 개인의 불완전성을 꼬집었다면, 소냐는 불완전성을 감싸 안았다. 두 인물은 각자의 역할을 통해 주인공의 길을 이끌어냈다. 라스꼴리니꼬프처럼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통해 배우고 바뀐다. 소설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메우는 일도 결국 인간이 해야 함을 말한다.
Ⅳ. 죄와 벌, 숙명으로 받아들이다.
라스꼴리니꼬프는 결국 죄를 저질렀고 벌을 받았다. 그가 따른 이성과 판단은 범죄자라는 결과를 낳았다. 비단 소설 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현실에서도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죄를 저지른다. 인간에게 죄와 벌은 피할 수 없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개인의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 죄와 벌을 규정하는 법이 만들어졌다. 법을 관리하는 국가도 세워졌다. 지금의 사회 시스템이 모두 인간의 불완전성에서 귀결됐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개인의 본능과 이기심 그리고 완벽치 못한 판단력은, 죄와 벌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족쇄라는 걸 일깨워준다.
“나는 그냥 죽였어. 나 자신, 나 한 사람을 위해서 죽인거야.”
한 사람, 한 가지 사상, 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는 스스로에게 무기력한 우리들의 자화상으로 비춰진다. 그러한 의미에서 인생은 죄와 벌이 뒤따르는 비극의 총체다. 허나 개인의 비극을 받아들이고 여럿이 서로를 이끌어준다면, 버티는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