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백일을 앞두고 미리 백일 떡을 예약했다. 100일 사진을 찍기 위해 옷도 몇 벌 샀다. 미리 예약해 놨던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바지런을 떨고 옷 몇 벌을 챙겨서 사진관으로 갔다. 몇 개의 옷을 갈아입히고 사진을 찍었다. 아이에게 평생 남을 백일 사진을 찍기 위해 표정을 살피고 아기 앞에서 재롱도 피웠다. 사진사님이 아기의 사진을 찍는 것에 열성으로 임해주셨다. 찰나에 나오는 아기 표정을 포착하기 위해 여러 가지 소품이 이용됐다. 색깔별 딸랑이, 소리 나는 뿅뿅이 장난감, 아기가 좋아하는 인형 등 아기 앞에서 알록달록 눈길을 끄는 장난감을 움직이며 사진을 찍었다. 꽤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의 백일 날은 간단하게 보냈지만 혼란스러웠다.사진을 찍고 주변에 사는 친지와 가족들에게 떡만 돌리고 백일을 축하해 주는 게 우리의 계획이었다. 6월 5일 태어난 아들의 백날은 2001년 9월 12일이었다. 하루 전날 사진을 찍었고 다음날 백일 당일이 되었다. 전날은 사진 찍느라 하루 종일 고단했는지 아들은 일찍 잠들었다. 나는 낮에 언니네 집에 가서 부업을 하고 집으로 와서 이른 저녁을 먹고 평소처럼 오후 9시쯤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아들 백일떡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가족들에게 챙겨줄 떡을 나누어 담았다. 집집마다 따로 포장해서 담느라 진땀을 뺐다. 준비를 마치고 떡 배달을 위해 아기를 업고 밖으로 나갔다.
처음 간 곳은 엄마 집이었다. 엄마에게 떡을 드리고 바로 앞집인 큰언니네 집으로 갔다. 큰언니네 도착하니 TV가 틀어져 있었다. TV 뉴스에서 미국에서 뭔가 큰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나는 나머지 떡을 돌려야 했으므로 잠시 TV를 보다가 이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티브이를 틀었는데 특보가 이어져 나오고 있었다. 비행기가 쌍둥이 빌딩을 향해 돌진하는 장면이 나왔다. 우리나라 칼기 폭파 사건이 떠올랐다. 뭔가 큰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아들 백일 전날 밤 미국에서 테러가 일어났다. 테러, 이후 911 테러라고 명명하는 사고가 아들 백일 전날 밤에 미국에서 일어났다.
한동안 이어지는 뉴스속보에 정신을 놓고 봤다. 당시에는 911 테러가 어떤 것인지 실체를 바로 알지 못할 때였다. 사고 사황이 반복해서 나왔다. 각 국가별 사람들의 사망 소식이 실시간으로 방송됐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세계 무역 센터 건물에 항공기가 돌진했다. 급작스러운 사고에 무슨 일지 사람들 모두 어리둥절하고 우왕좌왕했다. 사고인지 전쟁인지 모르는 상황에 또 다른 항공기가 두 번째로 충돌했다. 단순 사고가 아닌 테러라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이었다.
110층 높이의 쌍둥이 빌딩은 항공기가 추돌하면서 화재를 발생시켰다. 건물이 불타는 모습이 TV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나는 미국에서 그런 일이 발생된 것이 놀라웠고 한편으로 겁이 났다. 테러라면 누구의 짓인 건지 불타고 있는 건물 안에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비행기 안의 사람들은 모두 죽는 것인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전쟁이라면 어떻게 되는 건지?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아직은 불확실한 사고 상황에 두려운 마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미국은 세계 강대국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었다. 아기의 얼굴을 보게 됐다. 세상 편안하게 방긋 웃고 있는 아기의 표정은 밝고 평온했다. 눈을 감고 기도를 하게 됐다.
지구촌 한편에서 테러가 일어난 날 나는 집에서 백일떡을 정리했다. 나머지 떡을 친지분들께 돌려야 했다. 친지분들과 같은 건물에 있는 분들께 떡을 돌렸다. 아기를 업고 아기 백일 떡이라고 말씀드렸다. 테러, 백일떡 너무나도 어색한 조합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속해 있는 환경에 그저 하루하루를 나아갈 뿐이었다.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놀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그저 기도를 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위 명언은 한국에서는 스피노자의 명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근거는 없다고 한다. 구글에서는 독일의 철학자 마틴 루터의 명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또한 근거는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누가 이야기 한 건지 불분명한 위의 명언은 아주 널리 알려진 유명한 말이다. 미국에서 911 테러로 세계전쟁이 발발할 건지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 나는 아들의 백일떡을 돌렸다.
911 테러.
911 테러는 2001년 9월 11일 (동부 표준시(EST)) 오전 8시 46분 ~ 10시 28분까지 19명의 아랍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을 향해한 동시다발 테러이며, 총 4대의 항공기가 납치되어 항공기 자살테러로 사용됐다. 세계무역센터 2,753명, 펜타곤 184명, 샹스크빌 펜실베이니아 40명 등 총 2,977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3,251명의 아이들이 부모를 잃었다. 부상자는 25,000명 이상에 이렀다.
테러 발생 직후 곧바로 알카에다가 테러를 일으켰다는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뒤이어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 내 알카에다 세력을 축출하고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인도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한 탈레반을 몰아내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다. 처음에는 빈 라덴이 자신이 테러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으나 2004년 빈 라덴은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공식적으로 자신이 테러를 기획한 것이라고 밝혔다. 알카에다와 빈 라덴은 테러를 일으킨 동기로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미군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둔, 이라크에 대한 제재 조치 등을 꼽았다. 빈 라덴은 테러 후 10년간 은신하였으나 2011년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 있는 자신의 은거지에서 미군의 넵튠 스피어 작전으로 사살되었다.
테러로 세계 무역 센터와 인근 인프라가 크게 파괴되었고 이는 뉴욕의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으며 세계적인 경제 불황도 초래하였다. 전 세계의 많은 국가가 9·11 테러 이후 테러방지법을 강화하였으며 테러 공격을 막기 위해 법 집행기관과 정보기관의 권한을 확대하였다. 미국과 캐나다의 민항 항공편은 9월 13일까지 폐쇄되었으며 월가의 금융 거래는 9월 17일에야 재개되었다. 그 외에도 추가적인 테러 우려로 수많은 폐쇄 조치, 대피, 행사 취소가 잇따랐다. 붕괴된 세계 무역 센터 부지는 2002년 5월 정리가 끝났으며 펜타곤은 테러 1년 만에 재정비를 완료하였다. 구 세계 무역 센터를 대체할 새 건물의 건설 공사는 2006년 11월 시작하여 2014년 11월 완공해 개방하였다.
9·11 테러로 2,977명이 사망하고 25,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으며 그 외에도 상당한 보건 문제를 일으켰고 인프라 파괴로 최소 100억 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하였다. 또한 이 테러는 역사상 가장 사망자가 많은 테러이자 미국의 역사상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소방관과 경찰관이 사망한 사건으로 소방관 340명과 경찰관 72명이 순직하였다. 테러 이후에는 사망자를 추모하는 뉴욕의 내셔널 셉템버 11 메모리얼 & 뮤지엄, 버지니아 앨링턴군의 펜타곤 메모리얼, 펜실베이니아주 추락 현장의 93편 국립 추모관 등 수많은 추모 및 기념관이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