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워킹맘 되다

셸 위 댄스 -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99화

(별별챌린지 3기-16일 차)




돌부채:설화(꽃말: 인내, 순응)



워킹맘 되다


부업을 해서 모았던 돈으로 포장마차를 열었으나 환경적으로 여의치 않아서 장사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문을 닫았다. 엄마가 이어받아서 하시고 싶다고 하는데 내 욕심만 고집하며 팔아버리기에는 상황이 죄송스럽게 됐다. 여러 가지 경우를 고민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이를 밤에 맡아줄 곳도 없고 현실적으로 내가 포장마차를 계속하는 것보다 직장 생활을 하는 게 좋은 선택지였다. 매정하게 팔아버릴 수도 없어서 엄마에게 포장마차를 하시라고 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엄마는 포장마차를 이어받어서 장사를 시작하셨다. 음식 맛이 있으니 장사는 내가 했을 때보다도 잘 되고 있었다.

포장마차 장사를 했다가 다시 직장을 잡는 데까지 3개월 정도가 지났다. 직장 생활을 하기 전에 가장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젖을 완전히 떼야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아기에게 젖을 먹일 수는 없었다. 만 10개월까지 젖을 먹은 아기는 포동포동 젖살이 올라있었다.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물젖, 참젖이라는 소리를 하는데 나는 참젖이었는지 아이살이 단단하고 튼튼했다. 젖으로 제 양을 다 채우다가 분유를 먹여야 하는 상황이 됐으니 분유를 먹이는 연습을 해야 했다. 아기가 분유를 잘 안 먹으려고 했다.

젖을 뗀다는 건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46살 동안 많은 통증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젖을 떼면서 산고의 고통보다 더 큰 통증을 경험했다. 젖을 떼기 위해 약을 먹은 건 물론이고 젖 말리는데 좋다는 자연식품을 같이 먹었다. 인위적으로 젖을 줄여야 했기 때문에 젖 줄이는 약을 먹었다. 약을 먹었기 때문에 아기에게 젖을 물릴 수 없었다. 하루아침에 자신의 먹이가 바뀌는 상황에서 아기도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직장 생활을 하려면 무조건 젖을 떼야했다. 아기가 배고파해도 젖을 물리지 않았다. 분유를 계속 거부하는 아이가 힘들어했다. 배가 고프다고 우는 아이를 어쩔 수 없이 냉정하게 지켜봐야 했다. 아기가 배가 너무 고팠는지 분유를 차차 먹기 시작했다. 반면 나는 젖이 아파서 미칠 것 같았지만, 무대포정신으로 무작정 참았다.

젖 떼는 약을 먹는데도 가슴이 불어나면서 통증으로 밤잠을 설쳐야 했다. 젖이 커지다 못해 살이 트면서 가슴이 뻥~ 터져버릴 것 같이 위태롭게 커졌다. 크기만 커지는 게 아니라 온통 살이 다 트면서 여기저기에서 피가 났다. 만삭 때 뱃살도 트면서 피가 났는데 가슴은 더 처참했다. 젖이 계속 돌면서 가슴이 온통 빨갛게 실핏줄이 다 터져버렸다. 가슴만 불덩이가 되는 게 아니라 온몸에 통증이 생겼고 몸에서 열이 났다. 그렇다고 젖을 짜면 다시 젖이 돌면서 가슴이 커지기 때문에 최대한 그 고통을 참아야 했다. 젖 말리면서 며칠 동안 너무 아프니까 잠을 제대로 누워서 자지 못했다.

고되고 힘들게 젖 말리는 시간을 보냈다. 2주 넘는 시간 동안 고통스러운 통증으로 고생했다. 젖이 어느 정도 마른 상태에서 면접을 보러 갔다. 회사는 서울에 위치해 있었다. 출근시간은 1시간이 조금 넘었고 출퇴근할 만한 시간이었다. 급여는 기본급과 성과급으로 나뉘어있었다. 일을 잘하는 만큼 급여를 더 받을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면접을 보고 사무실을 둘러봤다. 한 사무실에 줄지어 책상들이 붙어있는 곳이었다. 사무실 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책상은 칸막이가 있었고 사람들이 제각각 바쁘게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통증이 다 사라지지 않은 상태로 출근이 시작됐다. 처음 채권추심이라는 일을 한 곳은 L 카드사였다. 2002년에 5월부터 신용카드회사에 출근했다. 전화로 하는 업무는 인바운드 (전화를 받는 업무)와 아웃바운드 (전화를 하는 업무)가 구분되는데 채권추심은 아웃바운드 업무였다. 회사별로 일을 스파르타식으로 일을 가르쳐 주는 곳이 있다. L 카드사는 채권추심업계에서 가장 스파르타식으로 업무를 가르쳐 주는 곳으로 정평이 나있는 곳이었다. 일을 제대로 배우는 건 중요하기 때문에 처음 L 카드사에 간 건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자리에 앉아서 업무가 진행됐다. 리스트가 나오면 금액별 리스트대로 전화를 걸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연체된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정상화를 만드는 게 내 업무의 목표였다. 첫날 전산을 접하면서 신기했다. 자리에 앉아서 혹시 내 이름을 전산에 조회해 봤다. 내용이 모두 나왔다. 당시만 해도 개인 정보에 대한 시스템이 없었을 때였다. 이름만 조회해도 가입된 모든 사람들이 조회됐다. 궁금했던 연예인을 조회해 보기도 했다. '신기한 곳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출근 첫날 간단한 설명을 듣고 바로 업무에 투입됐다. 업무 하는 시간 동안은 쓸데없는데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어서 일만 해야 했다.

초단기 카드채권업무를 시작했다. 연체가 3일 이상 되는 사람들이 넘어왔다. 하루 종일 앉아서 전화를 했다. 사무실에 총 7,80명의 사람이 모여있었다. 그중 10명 정도씩 한 팀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각 팀에는 팀장이 있었다. 우리 팀에도 팀장이 있었다. 팀장의 성별은 여자였고 젊었다. 얼굴이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예쁜 얼굴이었다. 팀장은 전화하는 팀원들을 관리하는 업무까지 하고 있었다. 첫날부터 조심해야 할 사항들을 이야기해 주는데 자리 이석이나 통화시간 체크 등 지켜야 하는 사항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팀장은 목소리에 신경질적인 느낌이 있어서 대화만 나눠도 사람을 긴장시키는 사람이었다

아침에 9시에 출근해서 퇴근 6시까지 화장실은 최대 2번 이상 가지 말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아기 만 10개월일 때 어린이집에 맡기고 젖이 덜 마른 상태에서 나는 워킹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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