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일 때 삶이란 시를 봤다. 그때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오만하게 노여워했다. "참~놔~ 삶이 나를 속이는데 맘껏 슬퍼하거나 노여워해 줘야지 왜 그것 조차 하지 말란 거야? 난 슬퍼하고 화낼 거야, 세상아 제발 날 시험에 들게 하지뫄라. 이미 많이 묵었다 아이가~" 빛바랜 책받침에 쓰여있던 그 시와의 첫 만남에 18살 여고생은 발끈했고 혼자 땡중처럼 중얼거렸다. 그 후에도 삶이란 시는 유명해서 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나에겐 공염불일 뿐 감흥이 없었다.
서른 즈음되었을 때 내 삶은 땅굴을 파고 롤러코스트와 암벽 등반, 그리고 고공낙하를 넘나들며 장애물 경기를 하는 중이었다.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고 홀로 맨발로 가시 밭길을 걸어가며 한걸음 한걸음 걷듯 하루를 보냈다. 일을 끝내고 집에 오는 퇴근길 지하철 역내 벽에 붙어있는 시 한 편을 읽었다. 익숙한 시라 '아는 시구나!'라는 생각에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피곤에 절어 실핏줄이 산줄기 마냥 갈라진 눈으로 멍한 듯 읽다가 어느새 왈칵 눈물이 났다. 공염불이었던 글귀는 빙산처럼 단단하게 경직된 나를 한순간에 녹이는 강력한 빛으로 내리쬤고 안개로 온통 먹먹했던 눈앞을 순식간에 말끔히 개이는 깨달음을 주었다.
연기(緣起)는 인연생기(因緣生起) 즉 인(因: 직접적 원인)과 연(緣: 간접적 원인)에 의지하여 생겨남 또는 인연(因緣: 통칭하여, 원인) 따라 생겨남의 준말로, '연(緣: 인과 연의 통칭으로서의 원인)해서 생겨나 있다' 혹은 '타와의 관계에서 생겨나 있다'는 현상계(現象界)의 존재 형태와 그 법칙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세상에 있어서의 존재는 반드시 그것이 생겨날 원인[因]과 조건[緣] 하에서 연기의 법칙에 따라서 생겨난다는 것을 말한다. 연기의 법칙, 즉 연기법(緣起法)을 원인과 결과의 법칙 또는 줄여서 인과법칙(因果法則) 혹은 인과법(因果法) 또는 인연법(因緣法)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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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인간사에서 인연법을 벗어날 수 있을까? 명, 암의 구분은 한 가지만 있으면 구분을 할 수 없다. 어둠이 있어야 별이 빛난다. 힘든 일을 겪고 나면 성장한 나를 만날 수 있고 불만족이 발전을 낳는다. 살면서 일어나는 고통은 마땅히 그 존재의 이유가 있고 그건 벽일 뿐 그 벽은 허물어 버리거나 넘어가면 그만이다. 인간에겐 태어나면서 도구로 사용할 팔과 다리가 있고 세상 만물을 도구로 사용할 머리도 주어졌다. 고맙게도 창조와는 거리가 있는 단순하고 바보 같은 나와는 달리 많은 현자들이 이미 많은 도구를 만들어 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에게 유익한 도구는 생성되고 있을 것이다.
힘들고 고된 일이 거칠고 암담하게 나를 막아서더라도 나는 '알아차려'야 한다. <네가 내 앞에 있는 건 나를 단련시키려는 거니? 아니면 성장시키려는 거니?> "반갑다! 친구야"를 외치지는 못하더라도 "고마웠다~ 고난아"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도록 힘을 내어 지금을 지나가 보자. "네가 내 앞에 있어서 버겁고 싫지만 너는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 곁에 머무는 동안 잘해보자."고난은 나에게 머물 때도 안녕을 고하며 떠날 때도 상처에 새살을 돋게 하며 딱쨍이를 만들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장 71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빌립보서 1장 2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