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아이 콤플렉스(good boy syndrome)는 가토 다이조(加藤諦三)의 자녀 교육서 『착한 아이의 비극』에서 제안한 신조어로, 타인으로부터 착한 아이라는 반응을 듣기 위해 내면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심리적 콤플렉스를 뜻한다. 이러한 형태는 유기 공포(fear of abandonment)를 자극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어린이의 기본적 욕구인 유아적 의존 욕구를 거부하고 억압하는 방어기제로 탄생한다. 이는 바르게 해결되지 않아 그대로 성장하게 된 어른에게는 '착한 아이' 대신 '착한 여자, 착한 남자, 좋은 사람' 등으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서양에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직접적으로 대응되는 개념은 없으나 둘째 아이 증후군이라는 유사한 개념이 있으며, 해당 증상은 정신병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동일어로 나이스가이 증후군이 있다.
특징
주로 '착하거나 말 잘 듣는 것은 좋은 것, 착하지 않거나 말 안 듣는 것은 나쁜 것'으로 규정하는데 이는 타인의 판단을 절대적으로 내면화한 것이다. 이러한 규정은 "착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고 버림받을 것이다"라는 믿음의 바탕에서 생성된다. 이러한 믿음은 어린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만들어지며, 어른이 되어도 변하지 못하고 고착돼 얽매여 생활하게 된다. 이에 따라 타인의 눈치를 보고 타인이 하는 말에 집중하며 갈등 상황을 피하고 타인의 요구에 순응한다. 그리고 자신이 타인에게 착하게 행동하고 있는지, 타인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계속 눈치를 보며 확인한다. 반면 자신의 느낌이나 욕구는 억압하기에 타인을 향한 투사나 반동형성의 행동이 뒤따르게 되며 언제나 내면은 위축되고 우울한 감정으로 가득 차게 된다. ---네이버 검색
착한 사람 콤플렉스, 착한 여자 콤플렉스, 한동안 이 말이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화두로 떠오른 적이 있다. 한때 주변 친구들이 나를 염려해서 이 말을 한 적도 있다. 걱정하면서 한 말이었지만, 좋은 의미로 말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마음의 병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고 잘못된 자의식으로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게 불필요하다는 것을 꼬집기 위해서 해준 말이다. 아주 친한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이고 우스갯소리처럼 이야기하기도 했고 진지하게 이야기한 적도 있다.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소위 말해서 호구 짓을 할 때가 있다. MBTI 유형으로도 테스트하면 늘 ENFJ(정의로운 사회운동가)가 나온다. ENFJ의 특징을 살펴보다 보면 별칭 중에 호구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호구의 사전적 의미는 호구(虎口) <1. 범의 아가리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처지나 형편을 이르는 말. 2.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체육 ] 바둑에서, 바둑돌 석 점이 둘러싸고 한쪽만이 트인 그 속.> 3가지 의미로 나온다. 유의어로는 [밥, 범굴, 봉]이 있다.
나는 착한 사람인가? 당시에도 많이 생각해 보았다. 진짜로 한동안 심도 있게 고민한 적이 있다. 이후에도 어떤 일들이 있을 때마다 깊이 고민하고 생각한다. 착하다는 건 좋은 건데 과연 착한 사람이라는 건 좋은 것일까? 나의 결정이, 나의 판단이, 못나고 병적인 자기 연민이나 환경에서 온 그릇된 판단이면 어쩌지? 어린 시절 사랑을 못 받고 자란 트라우마로 이미 망가져 버린 걸까? 영영 타인의 눈치나 보면서 앞으로도 누군가의 호구로 사는 건 아닐까? 잘 산다는 건 무엇일까? 나는 어떤 인간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판단해야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끝도 없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 답을 오롯이 스스로 찾으려고 했다.
2005년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나는 이혼 계획을 세웠고 이혼 절차에 필요한 서류를 모두 모아놓은 상태였고 이혼까지 실행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시어머님이 쓰러지셨다. 두 달 동안 병원비가 1600만 원이 청구됐고, 그것은 전부 남편에게 신용카드 빚으로 남아있었다. 그 후 시어머님을 요양병원 시설로 옮기면서 병원비는 매달 120만 원으로 고정됐다. 당시 남편은 소득이 불규칙하면서도 낮은 소득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 그의 벌이로는 자신의 용돈과 매달 고정된 병원비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다. 당장 나와 이혼을 하게 될 경우 신용카드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수도 없이 생각하고 고민했던 생각 중에 법적으로 배우자인 남편에 대해 '남편'만 떼어놓고 생각해 보았다. 나와 남편은 어떤 관계인가? 부부라는 사회적 계약을 한 사람이지만 그와 나의 내실에 부부라는 신뢰와 정은 한 줌도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부부, 적어도 가족에 대한 어떤 마음도 남아있지 않았다. 남녀라는 관계를 떠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인격도 무시당했다. 그에게 남아있는 기대, 믿음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나에게 남편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딱 한 가지뿐이었다. 남편은 나의 아들의 아빠, 딱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그가 어떻게 되더라도 나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던 철저하게 타인이 된 사람이었다.
그와 이혼을 한다고 해서 내가 그를 버리는 것은 <분명하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간혹 연인이 헤어질 때 그런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버린다는 표현, 그건 성인끼리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린아이, 늙은 부모와 인연을 끊는 건 버린다는 표현을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인에게 그런 표현은 과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버릴 수 있겠는가? 연인이 헤어진다는 것은 버린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두 사람이 앞으로 관계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행위일 뿐이다. 그것을 명확하게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와의 이혼이 마치 그를 벼랑 끝에 버리는 것 같은 죄의식을 느꼈다.
그렇다면 나의 죄의식은 어디에서 왔을까? 남편만 생각해 보면 남편은 하나뿐인 엄마가 갑자기 두 번이나 쓰러지면서 중증을 앓게 되었다. 대학병원을 퇴원해서 요양병원에 입원했으며 의식도 없이 대소변을 못 가리게 되었다. 나는 분가를 하면서 2년 동안 시어머님과 함께 살았지만 시어머님과 돈독한 정이 있지 않았다. 그저 시부모라는 의무감에 시어머님께 나의 의무를 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시어머님, 시아주버님, 남편 세 사람 모두에게 나는 연민, 동정의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저 남편이 나에게 상처를 준 모든 것들이 떠오르면서 남편이 그 같은 상황에 놓인 것은 자업자득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남편을 그의 가족들과 엮어놓으면 나와 남편은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남편과 나 사이에는 아들 있다. 천륜, 남편과 나는 하루아침에도 남남으로 인연을 끊을 수 있는 부부의 연이지만 아들과는 부(아버지)와의 관계이니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아들은 겨우 3살, 아들에게는 유일한 부모로 남편과 내가 이어져 있었다. 나는 당시 남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아들만 생각했다. 아들이 성장했을 때, 아빠가 벼랑 끝에 있을 때 자신의 아빠를 철저하게 외면한 엄마를 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들에게 미안해질 수 없었다. 아니 아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아들에게 잔인한 엄마가 될 수 없었다.
이혼을 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적어도 그 시기가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다잡았지만 몇 날 며칠을 울었다. 이혼을 결심했을 때보다도 이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나서 더 많이 울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친구 심과 통화를 했다. 결정된 사항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울음이 계속 터져 나왔다. 의무감인지 죄의식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모두 겪어내겠다고 대답했다. "이혼, 지금은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 심과의 전화를 끊었다. 적(남편)과 함께 살면서 또 다른 큰 적(빚)을 물리쳐야 했다. 남편과 인연을 끊지 않고 남편에게 남겨진 병원비를 내가 갚기로 마음먹었다. 결정을 내리고 마음을 잡아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과거에도 현재도 나는 착한 사람도, 착한 사람 콤플렉스와도 상관없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 보호적인 인간에 불과하다. 나쁜 여자다. 나쁜 여자지만, 나쁜 엄마가 될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