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면 눈을 맞추고 머리를 가누고, 뒤집고, 다리에 힘이 생겨서 서고, 기고, 걷는다. 그 와중에 말도 배우고 '엄마'인지 '맘마'인지 '마'를 시작으로 말도 하기 시작한다. '설마 내 아이가 영재인가?' 하는 순간들도 찰나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설마설마>라는 행복감에 빠지기도 한다. 많은 아이들이 돌을 전후로 걷기 시작하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분유를 뗀다. 젖병을 떼고 밥을 먹게 되고 이후 기저귀도 뗀다. 아이에게 기저귀를 뗀다는 건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스스로 대소변을 가리게 된다는 건 아기에서 아이로 재탄생함을 알리는 승전고이다. 그것은 아름답고 귀중한 도약이며 더할 나위 없이 찬란한 발전이다.
2000년대 초반 영재 관련 방송이 여러 부문에서 나왔다. 어쩌면 이전에도 나오고 이후에도 꾸준하게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과 그 이후는 전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2001년생인 아들이 태어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생겼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2005년 새해가 되니 아이가 당시에 우리나라 표시 나이로 5살이 되었다. 영재 프로그램에 나오는 아이들은 5살에 한글을 쓰는 건 물론, 외국어에 능통하거나 특정 분야에서 특출 난 성향을 나타냈다. 매주 몇 곳의 채널에서 끊이지 않고 많은 아이들이 대중매체를 통해 소개됐다.
2005년에 나의 아들도 평가대에 올려졌다. 내가 아이를 평가대에 올렸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귀 얇고 줏대 없는 생초보 엄마인 나는 3.5살인 아이를 세상의 말말말에 시험대에 올렸다. 5살(현재 나이는 만 나이로 말하므로 3.5살) 유치원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또래 아이들과 비교가 되기도 했다. '유치원 짝꿍 00 이는 벌써 말을 유창하게 하더라, 한글을 쓴다더라, 영어도 단어를 외운다더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들에 신경이 쓰였다. 엄마로서 태만한 엄마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를 생각하면 참 아찔하다. 뭣이 중한지도 모르고 주변에 휘둘린 게 참 안쓰럽다. 그러니 무지가 죄라는 말이 나오나 보다. 자고로 아이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 엄마는 아주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 대충 하면 오히려 큰일을 낼 수 있으니 하려면 완벽하게 하고 안 하려면 오히려 조급한 마음을 없애고 천천히 아이를 관찰하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아이들의 발육상태에 따라 아이가 성장하는 건 신체의 크기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날이 갈수록 자신에게 맞는 성장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다른 아이들과 전혀 비교할 것이 못되고, 그것이 아이를 평가하는 어떤 기준, 대상이 되어서도 안된다. 그리고 영재는 다소 특별한 케이스일 뿐이다. 우리 아이가 영재가 아닐일까?라고 설마설마의 착각에 빠지는 것은 아이를 키우면서 발생되는 그저 재밌는 에피소드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이가 당시 나이 5살 되었을 때 무지하고 부족한 27살 초보 엄마인 나는 불안해졌다. 주위 5살 아이들 중 상당수가 한글을 배우고 있고 아주 잘 따라간다는 주변의 말말말이 나에게 채찍질로 가해졌다. 내가 아이에게 한글을 안 가르치는 건 엄마로서 태만이라는 말도 들었다. 유치원 가기 전에 한글을 다 떼고 가야 유치원에서 공부하는 걸 따라갈 수 있다고도 했다. 세상이 달라져서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는 달라서 '학교에서 한글은 안 가르쳐주고 다 알고 온다' 고도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무리 워킹맘이라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을 등한시하는, 아이에게 소홀한 엄마가 되는 건 태만이라는 말이 한풀이 굿판의 북소리처럼 그 크기와 울림이 강해지면서 계속 이어졌다.
내 주변 친구들은 아직 결혼을 안 한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비교하고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유치원 선생님, 유치원 또래 아이들의 엄마들, 회사 동료 언니들)에게 조언을 듣기도 했다. 너 나 없이 아이에게 빨리 한글을 가르쳐야 한다고 이구동성 말해주었다. 조기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파를 듣기도 했다. 초보 엄마는 놀라고 아이에게 태만한 엄마라서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나도 서둘러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문구점에 가서 책과 노트, 연필, 지우개 등을 사 왔다. 정성 들여 연필을 깎아주고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기역, 니은을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아이는 신기할 만큼 배움을 잘 따라왔다.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돼야 했는데 아니었다. 하루 동안 기역, 니은, 디귿을 가르치고 다음날이 되면 아주 깨끗하게 기역, 니은, 디귿을 까먹었다. 아이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는 것 같았다. 재밌고 신나게 한글을 가르쳐 주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이를 붙잡고 하소연하거나 한숨을 쉬고 있었다.
보름 동안 진도는 제자리걸음이었다. 날이 갈수록 조급해지고 마음이 불편했다. 삼 주째 다시 처음부터 '기역'을 아이에게 물어봤는데 기억을 못 했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다그치면서 울음이 왔다. 당황스럽지만 진짜 울었다. 답답하고 화가 나고 제 성질에 못 이겨 울음이 났다. 아이가 같이 따라 울었다. 아이랑 나랑 둘 다 소리 내서 울었다. 울면서 아이를 보니 아이가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순간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이를 꼭~안아주면서 아이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미안해 엄마가 화내서 아들~ 엄마가 미안해, 잘못했어." 나는 당시 아들에게 한글 조기교육을 시키는 열성 엄마가 되려다가 빠르게 포기하는 열성(우성의 반대말) 엄마임을 자각했다. 진짜 큰일 날뻔했다. 한글 가르치다가 아이를 죽이든(기를) 내가 죽을 뻔(복창 터져서) 했다. 1년 반 이후 아들은 6살부터 7살까지 자연스럽게 유치원 진도에 맞추어 한글 공부를 무사히 마쳤다. 초보엄마는 실수가 많고 아들이 엄마를 오히려 가르쳐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