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막막한 길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 늘 나를 구해준 은인이 있었다. 어떤 때는 가족이, 어떤 때는 친구 혹은 지인이 인생의 구원투수로 나서 주었다.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때도 있었다. 위로의 말 한마디, 조언, 또는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구원이 될 때도 있었다. 늘 때마다 귀인이 찾아왔다. 그런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때론 사람에게 상처를 받더라도 귀인들이 있었기에 사람으로부터 마음을 닫지 않았다.
엄마가 도와준다고 했기 때문에 명퇴가 현실로 실행되었다. 어렵게 명퇴 명단에 올랐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드디어 퇴직을 하게 됐다. 막상 명퇴가 확정되고 나니 여러 가지 감정들이 올라왔다. 내 생애 첫 직장이었던 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옛날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고등학교 때 원서를 받았던 일이 떠올랐다. 서류전형 합격, 면접을 봤던 것도 생각났다. 안양으로 출퇴근하고 대학교 입학과 자퇴도 떠올랐다. 부천으로 발령받고 와서 재밌고 즐거운 추억이 많았다. 그런 생각이 스치면서 아쉽고 슬픈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이미 감옥으로 인식된 회사를 탈출한다니 한편으로는 뛸 듯이 기쁜 마음도 들었다. 회사 분들 몇 분과 몇 차례 식사를 했다. 인수인계는 간단하게 마치고 회사 출근 마지막 날이 되었다.
마지막 날 내가 일했던 공간, 잘해주셨던 소장님, 설계사님들과 인사를 나눴다.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그제야 실감이 되는 것 같았다. 내 일의 터전이었던 영업소와 이제 영영 안녕을 고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감옥은 2천만 원이라는 빚의 굴레였던 것 같다. 당시 나는 한 가지 생각에 집중했고 그것만 아는 외골수였다. 빚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 불만족한 마음은 커졌고 감옥이라는 대상에 혼동을 일으켰다. 마지막 날 회사를 떠날 때도 나는 그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정들고 고마웠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쉽고 슬프다고 느낄 뿐이었다.
다음날부터 백수가 된 나는 좀 어리둥절했다. 아침에 출근을 하지 않으니 좀 이상했다. 늦잠을 자지도 않고 평소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났다. 명퇴 위로금과 퇴직금이 퇴직 후 한 달 정도 지나서 나올 예정이었다.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대출금을 갚는 것이었다. 때문에 일자리를 바로 구하지도 않았다. 다시 계산기를 두드렸다. 대출금을 다 갚으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해 봤다. 그동안 미뤄뒀던 공부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일자리도 천천히 알아볼까? 행복한 고민을 하는 것이 기쁘고 즐거웠다.
한 달 정도가 지나고 드디어 명퇴금과 퇴직금이 대출금을 상계했다. 대출을 받을 때 직장인 대출을 받은 것이라서 퇴직하면 바로 변제해야 했다. 며칠 전부터 엄마에게 미리 부탁했던 돈을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엄마가 돈이 없다고 당장은 줄 수 없다고 하셨다. 갑작스러운 계산 착오에 하늘이 노래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그때부터 나는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자산이라고는 유일하게 우리 사주가 전부였다. 당시 IMF라서 우리 사주는 내가 살 때보다도 더 떨어져 있었다. 우리 사주를 다 팔아도 200여만 원이 고작이었다. 주식을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주식회사 창구에 가서 주식을 처분했다. 그런데도 300만 원이 부족했다. 300만 원이 없으면 나는 신용불량자가 될 상황이었다. (이후 10년도 안 돼서 우리 사주 가치는 2천만 원이 훌쩍 넘어갔다.)
급한 마음에 울면서 친구 심에게 연락을 했다. 심이 나의 상황을 알고 흔쾌히 300만 원을 빌려준다고 했다. 나는 고마웠지만, 이런 상황이 창피했다. 그리고 미안했다. 은행 빚도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는데 개인 빚이 생긴다는 건 마음속에 큰 바위가 짓누르는 듯 몹시 불편하고 무겁게 느껴졌다. '세상에나 돈을 빌리다니... 그것도 친구에게..' 생각지도 않았던 상황이 된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진행될 거였다면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엄마가 500만 원이 없고 도와줄 수 없다고 했으면 방법을 다시 찾아봤을 것이다. 무리하게 명퇴를 강행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미치도록 화가 났다.
98년 나는 감옥이라고 생각했던 회사를 탈출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유의 몸이 되지는 못했다. 돈 2천만 원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은 성공했다. 빚에 굴레에 갇혔던 죄수는 철창 밖으로 나왔고 목에 드리운 칼도 벗어버렸다. 수갑도 풀었다. 자유의 몸이 될 것이라고 한껏 희망에 차있었다. 그런데, 300만 원이라는 탄탄한 족쇄가 나의 발에 새롭게 채워졌다. 나는 여전히 빚을 진 죄수가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