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

셸 위 댄스 -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80화.

(라라크루 5기 - 6일 차)




수선화 (꽃말: 존경, 자만심, 자기 사랑, 편안히 지내세요, 신비, 자존심, 고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2


2000년도, 방송대에 다니면서 회사가 서울역인 게 너무 멀다고 느껴졌다. 지역이 가까운 곳으로 직장을 알아보고 싶었다. 어차피 박봉이라면 이왕 집에서 가까운 부천 내에서 출. 퇴근하는 게 좋을듯싶었다. 학교 선배의 조언으로 부천지역 노동청 사이트에 이력서를 접수했다. 며칠이 안 돼서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근무처는 부천 시청이라고 했다. 부천 시청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면접은 서울로 보러 오라고 해서 회사 본사 주소지로 찾아갔다. 면접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회사의 정체는 건물 관리를 하는 용역회사였다. 내가 그곳에서 할 일은 총무업무라고 되어 있었다. 다음날 면접을 본 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음 주부터 출근하면 된다고 했다. 가까운 곳으로 출근을 하면 좋을 듯싶었다. 부천 시청은 버스를 타면 한 번에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위치했다. 집에서 회사까지 출근시간이 30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부천시청 건물 안에 사무실이 있었다. 아주 잘 아는 장소라서 편안한 마음으로 회사에 출근했다. 내가 일 할 사무실은 부천 시청 건물 지하에 위치했다. 사무실에는 책상이 몇 개 없었다. 좁은 사무실에 소장님과 총무, 그리고 청소하는 분들을 관리하는 관리직 여직원, 단 세 명의 책상이 있었다. 내 전임자는 이미 퇴사하고 없어서 나는 소장님과 청소 관리직 여직원에게 대략적인 업무에 대한 설명을 듣고 바로 일을 하게 되었다. 아침에 출근하니, 당연하게 책상을 닦고, 컵을 닦고 소장님께 커피를 타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내 사무실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일을 하는 건 아무렇지 않았다. 내 첫 직장에서 총무로서의 위치는 주인의식을 강조했고 진짜로 내가 주인처럼 일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용역회사의 총무는 왠지 심부름을 하는 수동적인 입장으로 보였다.


자리와 위치에 따른 생각의 차이였을까?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건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리고 용역회사 자체포지션이 딱 '을'의 자리였다. 용역회사의 갑은 일을 주는 회사였다. 내가 일한 곳의 갑은 부천 시청이었다. 부천 시청은 용역회사에 한 달 동안 비용을 주고 용역회사는 그 돈을 받아서 직원을 채용했다. 갑으로부터 받은 돈 중 일부는 최종근로자들에게 월급을 지급하고 본사가 일하는 사람들의 급여를 주고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구조였다. 부천 시청은 크게 전기, 기계, 조경, 청소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을 모두 용역회사를 통해 관리했다. 나는 그곳에서 총무로 일하게 되었다. 전기실, 기계실, 조경실, 청소사무실에는 각각 그들을 관리하는 실장님이 계셨고, 그분들의 사무실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 모든 분들의 최고 관리자가 나와 같은 사무실에 있는 관리소장님이었다.


청소하는 분들(환경미화원)을 관리하는 여직원은 나와 동갑이었다. 나와 동갑이면 둘이 서로 친해질 법도 한데 그 친구와 나는 성향이 많이 달라서 직장동료 그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지 못했다. 직장생활을 하면 직장동료와 친밀해져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었다. 그러나 몇 번의 직장을 경험한 이후 그런 부담감은 내려놨었다. 직장이란 장소가 평생 다니는 평생직장이 될 수 없다는 걸 첫 직장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직장동료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지내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출근을 하고 처음 보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이전에 회사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었다. 사무실 내에서 점심시간에 밥을 직접 해서 먹고 있었다. 청소 관리직 여사원과 총무인 나, 둘은 사무실에서 밥을 해서 먹었다. 맞다. 쌀을 씻어서 밥을 지어먹었다. (ㅋㅋㅋ) 내가 첫 출근이니 오늘은 자신이 밥을 할 테니 내일은 내가 하면 된다고 했다. 직장에서 밥을 짓는 게 신기했다. 그곳은 기존에 직원들이 계속 그렇게 했다니까 자연스럽게 그 관례를 따랐다. 반찬은 집에서 간단하게 싸 오기도 했고 사다 먹기도 했다. 점심시간 1시간 전에 사무실에서 순번대로 쌀을 씻어서 밥을 올렸다. 20분 정도가 지나면 사무실에서 밥 짓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출근 일지와 몇 가지 서류를 만들어서 소장님께 올렸다. 그리고 나면 점심밥을 할 때까지 할 일이 없었다. 하루를 온통 쉼 없이 일하는 게 나의 일하는 루틴이었는데 빈둥빈둥 놀기가 너무나도 민망했다. '회사라는 곳이 참 여러 가지 형태구나' 싶었다. 내 업무와 청소 관리직 여직원 둘의 일을 합해도 무방할 만큼 할 일이 없었다. 소장님 또한 하는 일 없이 빈둥대기 일쑤였다. 용역회사는 <갑>으로부터 인원수에 해당하는 만큼 급여를 따낸다. 갑으로부터 (인원수* 직책별 책정급여)를 받았다. 받은 돈의 일부를 일하는 직원들에게 급여로 제공했다. 생각보다 많은 자금이 용역회사 본사로 편입됐다. 나는 총무라서 얼마의 돈을 받고 얼마의 돈을 지불하는지를 모두 알 수 있었다. 사람 한 명 한 명이 모두 돈이기 때문에 용역회사는 일의 효율 따위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조직으로 보였다.

오후에 잠시 서류 몇 가지만 준비하고 나면 총무일이 끝났다. 할 일이 끝나면 퇴근시간까지 멀뚱멀뚱 사무실에서 멍하니 있었다. 나는 인터넷을 하거나 딴청을 피울 만큼의 배포는 없는지라 조금 과장하면 '미춰버리는줄' 알았다. 회사에서 할 일이 없다니 아주 많이 이상했다. 내 포지션의 업무 자체가 중요도에서 비중을 잃다 보니 회사 내에서 대우나 존중을 받는다는 것도 참으로 오버스러운 욕심같이 느껴졌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스스로 알아서 컵을 닦고 책상을 정리하고 커피도 타게 되었다. 가끔 부천 시청에서 관련된 공무원이 오면 기계적으로 깍듯하게 모시게 되었다. 적어도 회사에서 월급이란 걸 받는데 그 정도 서비스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을'의 자리나 역할이 다소 우스꽝스럽다고 느꼈다. 소장님과 청소 관리직 여사원은 사무실에서 딴청 피우는 게 일상이었다. 나는 차마 대놓고 인터넷을 하는 건 민망해서 잠깐씩 학교 교과서를 펴놓고 슬쩍슬쩍 보곤 했다.

회사에 다닌 지 한 달 마감을 하기 전에 본사에서 호출이 있었다. 각 지역에 있는 용역 지역 총무들이 모두 모였다. 본사에서는 혁신 과제로 각 업체마다 <ISO9002>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주먹구구식으로 하던 일에 업무 매뉴얼을 모두 마련하는 일이었다. 모든 매뉴얼과 서류를 만드는 기한은 6개월로 정해졌다. 서류가 다 만들어지면 심사를 통해 회사는 표준을 갖춘 회사로 거듭나는 중대한 업무였다. 다른 지역의 총무들은 일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며 볼멘소리를 했다. 해야 하는 업무가 상당히 많은듯했다. 기초부터 모든 서류를 만들려면 캐비닛 몇 개를 가득 채워야 하는 분량일 것이라고 했다. 나는 회사에서 할 일이 생긴다는 게 신이 났지만 다른 총무들의 원성이 무서워서 내색하지 못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혼자 조용하게 쾌재를 불렀다. "야홋~ 드디어 회사에서 할 일이 생겨 뜨아~"


세 번째 직장에서 특별하고 신기한 새로운 경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직장이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행을 하듯 직장생활의 생경함을 경험하고 있었다. 세상은 넓고 직장은 다양하다. 21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도에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독특하고 기괴한 여행을 하며 시간의 페달을 밟고 있었다.






#장하늘발전소 #라라크루 #하늘상담소 #장하늘 #셸위댄스 #수선화 #장하늘부런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