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처녀에게 아이가 생겼어요

셸 위 댄스-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82화

(라라크루 5기 -7일 차)




크레오메(꽃말:불안정, 인연을 맺음)



처녀에게 아이가 생겼어요


2000년, 국어 국문과 선배와 방송대학교 CC가 되었다. 부천 학습관에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회사를 부천 시청으로 옮기면서 시간이 그나마 더 여유롭게 되었다. 데이트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여름방학이라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데이트 장소는 대부분 학습관이었다. 학습관에서 공부를 하고 같이 밥을 먹고 버스정거장까지 함께 걸었다. 작고 왜소한 그는 부드럽고 선한 인상이라서 순하고 착해 보였다. 서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았다. 그가 국문과를 선택한 건 '소설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어서'라고 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니, 왠지 그가 더 멋져 보였다. 나는 집안 이야기를 모두 다 털어놓지 않았다. 차차 알아가기를 바랐다. 모든 걸 이야기하자니 많은 것들이 구차스럽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당시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일하는 업무 부서는 자재과라고 했다. 그 당시 그의 조언으로 서울역으로 회사를 다니다가 집에서 가까운 부천지역으로 회사를 이직했다. 이직한 회사에서 첫 달은 시간이 많이 났지만 다음 달부터 업무가 추가되면서 바빠졌다. <ISO9002> 심사를 위해 사무실에서 매일 바쁘게 지냈다. 회사에서 일이 많으니까 왠지 기분이 좋았다. 회사를 다니는 게 당당해지는 기분이었다. 평일날은 퇴근하면 매일 학습관으로 향했다. 평일 이틀은 중국어 수업이 있었다. 나머지 날은 학습관에서 자율적으로 공부했다. 학생회 임원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당직을 서야 했기 때문에 학습관에서 공부하는 게 익숙해졌다. 2학년 학기 초에 처음으로 입학 등록금 용지에 [0원]이 찍힌 등록금 고지서를 받았다. 방송대에서는 장학금이 등록금 면제로 되어있었다.

방송대 학교생활이 더 재밌어졌다. 학교에서 남자친구까지 생가자 마음이 편안했다. 알게 모르게 남자 선배들과 이런저런 구실로 거리를 잴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편하게 행동하더라도 상대방에게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행동이 많다는 것이 불편했다. 남자친구가 생기자 사람들과의 관계가 담백해졌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과의 관계도 오히려 좋아졌다. 싱글일 때는 나 같은 무딘 성격의 사람들이 모르는 그들만의 신경전이 어디에서든 이루어지곤 했다. 남자친구는 국문과에 여자친구들이 많았고 그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나는 성격이 예민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그다지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남자친구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마치 어린아이 같은 그가 좋았다. 누군가를 사귀는 게 마치 처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첫 남자친구와는 순수함 그 자체였다. 성인이 돼서 성인으로서의 남자친구는 그가 처음이었다. 당시에는 고등학교 절친인 친구 심도 연애 중이었다. 자연스럽게 친구를 만나는 시간이 적어졌다. 회사를 다니며 학교 공부와 병행하면서 나름대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나보다 다섯 살이 많았다. 나이가 많은 것에 비하면 순수한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학교에서 만난 사람이라서 내 좁은 시야에서 그를 판단했다. 나처럼 그도 늦은 나이에 공부가 하고 싶어서 대학에 왔다고 했다. 착해 보이고 부끄러움이 많았던 다섯 살 많은 선배는 나로 하여금 경계심을 허물게 했다. 사귀면서 우린 급하게 스킨십을 하게 됐다. 그리고 사귄 지 불과 3개월도 안 돼서 임신이 덜컹 되어버렸다.

첫 잠자리 후에 두세 번의 잠자리가 있었다. 다행히 섹스를 하는데 큰 거부감은 없었다. 몸살 기운이 있었지만 참을 만한 정도였다. 사귄 지 3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생각해 보니 당연한 걸 무시했었다. 몇 번의 잠자리를 가지면서 피임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어리고 몰랐으며 (멍청했으며) 겁도 없고 무모했다. 그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젊은 남녀가 함께 거사를 이뤘으니 정해진 순차대로 당연하게 임신이 되었던 것이다. 생리 날짜가 어김없이 다가왔다. 생리일이 되었을 때 살짝 피가 비쳤다. 생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살짝 비치고 이내 피가 보이지 않았다. 경험이 없었으니 그것이 생리인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착상혈이었다. 임신을 알게 된 건 5주 차가 되어서다. 아주 빠른 시기에 벌써 입덧이 시작한 건지 속이 안 좋았다.

제일 먼저 남자친구인 선배에게 이야기를 했다. 혹시라도 임신이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아득할 뿐이었다.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서 몸 상태에 대해 그에게 말했다. 그가 어떤 반응일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막연하지만 임신이라면 아이는 낳아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무모한 생각을 하게 된 건 모두 대한민국의 교육 덕분이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에 맹신하는 입장이었다. 청소년기에 내가 접한 성교육 비디오가 아직까지 선명하게 기억으로 남아있다. 성교육 시간에 비디오가 틀어졌고 낙태를 하는 영상이 아주 큰 스크린에서 우리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낙태는 살인이다~~~~.>

어두컴컴한 교실에서 성교육 영상이 치지직 소리를 내며 재상 됐다. 하얀 벽의 병원, 검은색 의자에 여자가 누웠다. 의사가 곁에서 초록색 천으로 여자의 상체를 가렸다. 여자는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었다. 그리고 영상은 현미경을 보듯 뱃속 태아를 보여줬다. 낙태를 할 때 태아는 뱃속에서 이미 사지 육신 모양으로 육체의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다. 낙태를 하는 순간 차가운 기기가 임산부의 몸에 들어간다. 그리고 사지 육신이 모두 만들어진 아이는 이미 커서 그냥 수술할 수 없다는 자막이 나온다. 의사가 기구를 이용해서 태아를 잘라서 조각을 낸다. 그 후 태아의 찌꺼기를 여자의 몸 밖으로 꺼낸다.

청소년기에 본 성교육 동영상은 끔찍했다. 그리고 나는 만약에 남자친구가 낙태를 하라고 하면 그 말을 따를 것인지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와 만나고 나서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고민을 하며 약국에서 테스트기를 샀다.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화장실에 가서 검사를 하고 테스트기를 가지고 나왔다.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두려운 마음으로 결과를 같이 봤다. 선명한 두 줄, 임신이었다. 24살에 임신이라니, 결혼도 안 한 처녀가 임신을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까마득해졌다. 그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는데 그는 선뜻 아이를 낳자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계속 내 머리 위에는 청소년기에 본 성교육 동영상이 치직 거리며 재생되고 있었다. 치지직~치지직~

어렸을 때 학교에서 본 흑백 영화 속에서 이승복 어린이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쳐대는 모습이 낙태 동영상과 함께 뒤죽박죽으로 엉켰다. 하염없이 플레이되는 영상이 몸을 떨리게 하고 정신마저 어지럽혔다. 이승복 어린이는 끝내 공산당에게 입이 찢겨 죽었다. 생에 봤던 끔찍했던 영상들이 머릿속에서 무한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장하늘발전소 #라라크루 #장하늘 #하늘상담소 #셸위댄스 #잘못된성교육 #낙태비디오 #크레오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