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24살, 방송통신대 2학년 재학 중일 때 나는 임신을 했다. 아이 아빠는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덜컹 아이를 낳자고 했다. 어리숙하고 사리 분별이 안 되는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낙태는 살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는 무조건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다음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모아놓은 돈이 전무했다. 몇 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지만 남은 돈이 없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고 새롭게 다니던 회사는 박봉의 월급을 받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엄마에게 생활비를 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에게 빌린 돈까지 있는 빚쟁이였다. 당장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 막막했다. 집에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도 고민이 됐다.
그 당시 집에는 내방이 있었다. 엄마와 나만 살고 있었기 때문에 허락된 나만의 방이었다. 20평도 안되던 그 빌라 집에 살고 있었다. 있을 곳이 없을 때마다 친구네 집을 떠돌기도 했었는데 그것도 옛일이 되었다. 산소호흡기를 차고 늘 누워있던 아빠가 돌아가신 지 3년 차였다. 엄마는 참참참 식당을 그만두고 집에 있었다. 자영업이 남기고 간 후폭풍은 나름의 타격을 주었다. 엄마는 무언가 일을 시도할 때마다 다른 가족들에게 공동책임을 전가해 주곤 했다. 엄마가 일을 벌이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스스로 수입이 없는 것도 문제였다. 큰언니는 바로 앞 동 빌라에 살고 있었다. 작은 언니도 같은 동네에 월세방을 얻어서 따로 나가서 살고 있었다.
나의 임신 사실을 먼저 알아차린 건 작은 언니였다. 작은 언니는 우여곡절을 겪고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임신 초기라서 엄마 집에 자주 놀러 오곤 했다. 주말에 나를 보더니 작은 언니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어릴 때 나는 군살이 없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임신을 하자 초기인데도 몸에 살이 붙어있었다. 입덧도 아주 초창기부터 빨리 찾아왔다. 집에서 음식 냄새가 풍기자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던 것 같다. 남자친구가 생긴 걸 알고 있던 작은 언니가 추궁하며 여러 질문을 해왔다. 그러다가 덜미를 잡혔다. 들킨 김에 작은 언니에게 털어놨다. 작은 언니는 남자친구를 빠른 시일 내에 집으로 데리고 오라고 재촉했다.
남자친구에게 집에서 알게 됐다고 말하고 우리 집에 인사를 오라는 말을 전했다. 가족들이 나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남자친구가 집으로 오기로 한 약속한 날짜가 빠르게 다가왔다. 당일은 아침부터 엄마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엄마는 막내사위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과 첫 대면이라 신경을 쓰며 음식 장만을 하셨다. 엄마가 맛있게 잘 만드는 고기볶음과 겉절이 등 몇 가지 음식들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나오면서 나에게 출발했다고 알려주었다. 버스 시간은 뻔하기 때문에 그가 올 시간에 맞춰서 상차림을 준비했다. 좁은 집, 좁은 거실에 다소 큰 상이 놓였다. 상 한가득 음식들을 자리를 잡으며 놓았다. 음식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작은 언니는 그를 보기 위해 일찍부터 집에 와 있었다.
차려진 음식이 무색하게 시간이 지나도 그가 오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그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를 했다. 답변이 없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다 보니 음식들이 식는 게 보였다. 나는 내방으로 들어왔다. 전화를 또 걸어보려다가 전화기를 내려놨다. 어쩌면 그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오지 않는다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그는 이 상황이 마뜩지 않을 수 있다. 나 또한 이렇게 혼란스러우니 그도 그럴 수 있다. 전화를 하려다가 문자만 한 번 더 보냈다. 문자를 읽은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엄마가 나를 불렀다. 몇 시에 오는지 물어보셨다. 시간이 지나도 그가 오지 않는 것에 대해 엄마와 가족들에게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거실에 떡하니 자리 잡은 할아버지 상과 불상을 쳐다봤다. '그가 안 오는 걸까요? 이대로 그와는 끝인 걸까요?' 불상을 보며 나는 그 너머에 있을 신을 향해 물었다. 그가 집에 와서 우리 집을 보는 것이 여러 가지 설명을 하는 것보다 빠를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집 거실에 불상이 차려져 있다고 말하지 않았었다. 엄마가 불상을 모시는 보살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집에서 보는 게 가장 빠른 설명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오지 않는다면 우리 집에 대한 설명을 안 한 게 오히려 낫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 식어가는 음식을 보다가 차려진 상을 뒤로하고 내방으로 들어왔다. 그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물이 흘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숨죽이고 그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는 안 올 거야~ 니 계획은 이미 망쳤어
자책하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환청이 들리는 듯 울리는 소리에 귀를 양손으로 틀어막았다.
그때는 몰랐다. 나는 내가 순수하거나 순진한 사람이라고 착각한 것 같다. 사람이란 동물이 워낙 간사한 것인지 영악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다, 일반화를 시키다니 그건 비겁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라는 종자가 그렇게도 약삭빠른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24살에 나는 지긋지긋했던 집으로부터 나만의 탈출 계획을 세웠는지도 모르겠다. 24살에 처녀가 아이를 가졌는데도 나는 겁이 나고 무서움만 느낀 것이 아니다. 드디어 집, 엄마로부터 벗어날 찬스가 왔음을 인지했다. 큰언니, 오빠, 작은 언니도 그렇게 집으로부터 해방됐다. 나도 드디어 임신이란 사고로 나만의 터전으로 달아날 수 있다고 희망을 품었던 것 같다.
야심 찬 나의 탈출기가 무참하게 쓰러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가 와야 할 시간이 한참을 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