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취학아동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텔레비전에서 만화를 본다는 건 그것 자체만으로 아주 큰 행사였고, 신나는 일이었다. 어린이에게 TV가 허락되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요즘처럼 집에 각자 방이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단칸방에 살고 있었고 TV가 있는 것이 황송할 따름이었다. 지금은 많은 집들이 각자 자기 방이 있다. 심지어 방방마다 각자 개인 TV가 있는 집도 많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단칸방에 TV도 한 개였지만 아이 위주로 배려하는 집도 아니었다. 우리 집뿐 아니라 다른 집들도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집은 흔치않았다. 우리 집은 가장인 아빠가 최우선 배려자였다. 그다음 배려자는 엄마였다. 다음은 우리 집 맏이인 큰언니가 아니라 독자인 오빠였다. 다음이 큰언니, 작은 언니, 나로 딸들은 연장자 순으로 서열이 존재했다. 막내인 나는 모든 가족들 중 가장 꼴찌로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텔레비전 채널 선택권은 평일의 경우 나에게 전혀 없는 권한이었다. 아버지가 일을 하셨을 때 아버지는 새벽에 출근을 하셨다. 퇴근하시고 이른 저녁을 먹었고 평일 오후 8시에 저녁 뉴스를 봤다. 그리고 9시면 안방 불은 꺼졌고 부모님은 잠을 주무셨다.
평일날은 TV를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아버지가 틀어놓은 뉴~우~스를 들을 뿐이었다. 그러나 유일하게 일요일 아침만은 달랐다. 그때 그 시절엔 왜 새벽 시간에 만화를 편성해 놨는지 모르겠다. 일요일 새벽 5시 정도부터 만화가 텔레비전에서 연속으로 나왔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으면서 시작되는 만화는 일요일 아침 9시가 되기 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학교를 가는 평일날은 7시가 넘어야 눈이 떠졌다. 그런데 일요일만 되면 5시에 자동으로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아직 엄마가 주무실 시간이었다. 엄마가 깨면 혼나기 때문에 최대한 볼륨을 낮추고 만화를 봤다. TV 앞에 앉아서 혼자만의 황홀한 시간을 맘껏 누렸다. 작은언니는 만화를 보기 위해 일부러 새벽에 일어나지는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 새벽마다 TV에서 틀어줬던 만화는 재밌고 신기하고 다양했다. 일요일 새벽은 어린 시절 나에게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다. 몇 시간씩 연속해서 나오는 만화를 자고 있는 식구들에게 소리가 들릴세라 TV를 거의 안다시피 하며 열중해서 보곤 했다. 그 시간에 만화를 본 사람이 누군가 또 있다면 엄청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신나고 즐거울 것 같다.
요즘엔 TV 채널이 아주 다양해졌다. 보통 100개가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어릴 때는 방송 채널이 고작 4~5개가 전부였다. 정규방송은 KBS1,2 MBC 세 채널이었다. 이후 한참 세월이 지난 1990년 11월에 SBS가 서울방송으로 채널이 추가됐다. 그마저도 처음엔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수도권 전용 방송이었다. 지금은 리모컨을 돌리면 채널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꽤 오래전부터 만화만 나오는 TV 채널도 몇 개 추가돼서 여러 채널이 되었다. 내가 어릴 때는 만화를 보려면 첩보작전이 필요할 정도로 공을 들여야 했다. 금지된 것은 더욱 열망하게 되는 걸까? 하기 어렵다고 못하는 게 아닌가 보다. 어떻게든 좋아하는 건 노력해서 쟁취하는 게 인간이다. 나는 인간의 특성에 맞게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만화를 자주 봤다. 그만큼 만화를 좋아하기도했다.
어렸을 때 본 만화는 나름 다양했다. 명탐정 코난, 아톰, 철인 28호 등 로봇 만화나 SF 만화는 그 자체가 신기한 모험이었다. 특히 메칸더브이는 노래도 줄줄 따라 불렀다. 들장미 소녀 캔디, 달려라 하니는 여자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로보트 태권브이, 은하철도 999는 만화인데도 철학적이었다. 인어공주, 백설공주, 신데렐라 공주시리즈도 섭렵했다. 톰과 제리, 미녀와 야수등 디즈니 만화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미미의 컴퓨터 여행도 미래사회를 보는 것 같아서 아주 재미있게 봤다. 은비까비, 배추도사 무도사, 초롱이의 역사기행, 날아라 슈퍼보드, 피구왕 통키 등은 조금 더 컸을 때 나온 만화들이다. 그 시절 그렇게 기다리면서 봤음에도 제목이 기억나지 않은 만화들도 많다. 이후 우리나라도 점차 만화를 더 많이 만들기 시작했고 재밌는 만화로 즐거운 기억들이 많이 생겼다.
뜬금없이 만화 이야기를 하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독수리 오 형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그 시절의 만화가 생각났다. 만화, 독수리 오 형제는 물론 나에게 잘못한 게 없다. 심지어 어렸을 때 재밌게 봤던 추억의 만화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나 좋고 싫고라는 것 자체가 당연하게도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에 어쩔 수 없다. 지금은 누군가 미운 감정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밉고 싫다기보다는 그저 인연이 그랬나 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일이건 지난 일은 감사함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나에게 추억의 만화인 <독수리 오 형제>는 유쾌한 단어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다행히 독수리 오 형제라는 단어만 꺼려질 뿐 여전히 나는 만화를 좋아한다. 시작은 그날부터였다.
2000년 처녀가 아이를 임신했고, 아이 아빠는 우리 집에 인사를 오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는 오기로 했던 시간보다 2시간이 경과된 후에 나에게 전화를 했다. 너무 늦게 온 전화에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화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뱃속에 아이 생각으로 온통 머릿속이 분주했다. 어디냐고 물었고, 그는 거의 다 왔다고 답했다. 엄마가 차려놨던 음식은 이미 다 식어버렸다. 게다가 면을 좋아한다는 그를 위해 엄마가 국수를 삶아놨었다. 국수 면발이 심하게 불어있었다. 전화를 끊고 엄마에게 그가 곧 올 거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조금 후에 그가 우리 집으로 들어섰다.
그가 불상을 보고 다소 놀랄 거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를 유심히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제시간에 맞춰왔다면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미 그는 2시간 이상을 늦게 와버렸다. 고작 2시간이 며칠처럼 긴 시간으로 느껴졌고 나는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엄마와 가족들까지도 그가 너무 늦어지자 어쩌면 그가 안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이었다. 점심시간에 맞춰서 온다는 그를 기다리면서 가족들 모두가 점심을 굶고 있었다. 나는 복잡한 마음이라서 배가 고픈 줄도 몰랐다. 그리고 너무 일찍 시작된 입덧으로 음식 냄새가 힘들었다. 그가 많이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싫은 소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당신이 괜히 싫은 소리를 해서 딸이 미혼모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나는 그저 면목이 없고 죄스러울 뿐이었다.
식사시간에 맞춰왔어야 했을 사람이 식사시간을 한참 지나서 도착했다. 더구나 밥을 먹고 왔다고 했다. 엄마랑 남자친구랑 간단한 이야기를 한 후 그와 같이 밖으로 나왔다. 왜 이렇게 늦은 건지 물었더니 그는 오는 길에 우연히 버스 안에서 같은 과 친구, 설 0을 만나서 밥을 먹고 왔다고 했다. 나는 그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임신한 여자친구네 오는 길에 우연히 방송대 같은 과 여자친구를 만났는데 설 0가 밥 먹자고 해서 둘이 밥을 먹고 왔다고? 다시 정리해 보자, 우연히 만난 친구와 밥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나와, 내 가족들과의 약속시간에 늦었다고?' 나로서는 어떤 부분도 이해가 안 된 부분이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갔고, 그날 나는 그와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다.
조만간 나는 그들의 실체를 조금씩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국어 국문과에 여자친구들이 많았다. 특히 여자 넷과 남자친구인 그, 다섯은 아주 친한 사이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독수리 오 형제>라 칭했다. 다섯 명은 모두 나이차가 1살에서 3살 차이로 비슷한 또래였다. 그리고 우리 집에 인사하러 올 때 우연히 버스 안에서 봤다는 설 0이라는 친구도 독수리 오 형제 중 한 명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의형제인, 독수리 오 형제는 서로 친했으며 모두 방송대 학생이었으므로 그와 내가 사귄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당시 24살이었고 그녀 네 명은 모두 서른이 넘었거나 서른 살이었다. 나는 29살인 남자친구의 행동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30살이 넘은 설 0이라는 여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전혀 다른 방향인 자신의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발견됐을 때 그가 우리 집에 처음으로 인사드리러 가는 길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일은 생각보다 아주 빨리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독수리 오 형제는 이후 나에게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만들어 주었다. 소소한 사건 속에 그가 설 0을 좋아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사건도 있었다. 서로 좋아하면 그들 둘이 알콩달콩 사귀는 게 맞았다. 그래야 세상이 밝아지고 상처받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혹시라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서로 사귀지 않는다면 깔끔한 관계를 유지해 주는 게 예의다.
설 0은 자신을 짝사랑했던 남자가 나라는 사람을 사귀는 게 못마땅했던 걸까? 자신은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을 방송대에서 다소 인지도가 있는 내가 사귄다는 것에 상대적 우월의식이 생긴 것일까? 상식적으로 임신한 여자친구 집에 인사하러 가는 과 친구를 왜 붙잡아 둔 것일까? 나에게 그렇게 막~ 할 수 있었던 건 어떤 자신감이었을까?
24살이었던 나는 그 당시 그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47살인데도 이해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