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참을 수 있는 것 vs 참을 수 없는 것

셸 위 댄스-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85화

(별별챌린지-9일 차)





스노우드롭:설강화 (꽃말: 희망, 위안, 인내, 첫사랑의 한숨)



참을 수 있는 것 vs 참을 수 없는 것


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참는 게 좋고 기뻐서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마조히즘이 있는 사람은 그것 자체가 즐거움일 수도 있으니, 그건 참는다고 할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참아야 하는 일이 많았다. 예를 들면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 공부하고 싶은 것 등을 참아야 했다.


24살에 임신을 하고 나니 참기 힘든 것이 생겼다. 입덧과 졸음이었다. 입덧은 참 요상한 느낌이다. 임신을 하면 왜 입덧을 하는 것일까? 그 느낌은 마치 계속 뱃멀미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별로인 느낌이다. 머리는 흔들거리고 기름을 한 사발을 마시고 다시 연거푸 열 사발이 기다리고 있어서 계속 마셔야 하는 기분이다. 느글거리고 울렁거리는 기분이 한동안 이어지면 기운이 다 빠지고 힘이 없어진다. 그리고 참기 힘든 또 하나는 졸음이다. 임신 때문인지 어떤 상황에서도 졸음이 한번 쏟아지면 마치 기면증을 앓는 환자가 되어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머리만 닿으면 자는 게 아니라 가만히 서있어도 눈이 감기고 깜빡 잠드는 일이 왕왕 생겼다.


2000년 말, 옛말에 처녀가 애를 가져도 할 말이 있다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처음에는 가족들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남자친구가 아이를 낳자고 한 후 작은언니가 알아차리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적 틈이 있었다. 겨우 가족들에게 말을 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할 수 없었다. 회사에 내색할 수 없는 건 당연했다. 학교 선후배, 동료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뭔가 그들에게 직접적인 죄를 지은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그다음 순서로 아이를 낳는 게 일반적인 사람들이 밟는 수순이다. 대부분의 사람과 같지 않은 나만 갖는 그 순서의 뒤틀림은 문제를 일으켰다. 문제는 해답이 필요하듯 타인에게 나의 임신이란 사실에 <설명>이란 과정, 즉 <해답>이 필요했다.


테스트기가 두 줄이 나오고 바로 남자친구와 먼저 산부인과를 갔었다. 산부인과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아이의 실체가 나타난 초음파 사진을 받게 되었다. 초음파 사진은 흑백으로 손바닥 보다 작은 종이쪽지에 불과했다. 그렇게 작은 종이 안에 점처럼 조그마한 아이의 존재가 나타났다. 흑백 종이에 동그란 모양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킬 뿐이었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은 숙달된 듯 빠르게 검사하고 필요한 내용을 전달해 주었다. 병원비를 수납하면서 수첩 하나를 받았다. 그 수첩의 이름은 산모수첩이었다. 그날부터 수첩에 여러 가지 스케줄을 메모하게 되었다. 산모수첩을 받고 작은 노트를 하나 샀다. 아이가 생긴 후부터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임신을 하고 정해진 스케줄대로 산부인과에 다녔다. 산부인과에 누워서 진료를 받는 게 다소 어색했지만 아이를 위한 검사라서 어쩔 수 없이 참아냈다. 병원에 다니면서 매번 초음파를 찍었다. 매주 새로운 사진이 추가됐다. 사진 속에서 아이의 모양이 변하는 게 눈으로 확인이 됐다. 생명의 신비를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아이의 심장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처음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을 때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심장박동 소리가 크고 심장 뛰는 속도가 빠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5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때 난생처음 겪는 아주 신비한 경험을 했다. 아이의 태동이 느껴진 것이다. 아이가 움직이는 게 배에서 느껴졌다. 경이로움에 눈물이 났다.


임신을 하고 나서 내 몸 상태가 뭔가 계속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사람마다 입덧을 하는 기간이나 정도가 다르다고 들었는데 나의 입덧은 아주 초기부터 시작됐고 달이 차오를수록 심해졌다. 입덧이 심해지자 모든 음식이 거북스러웠다. 집에서는 내색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회사에서는 전혀 내색할 수 없었다. 문제는 점심시간이었다. 회사에서 밥 하는 냄새를 맡기가 힘들어졌다. 밥 짓는 냄새가 풍기기 시작하면 그 냄새 때문에 도저히 사무실에 있을 수가 없었다. 밥 냄새가 나기 전부터 밖으로 피신해야 했다. 배가 불러오고 있었지만 다행히 겨울이었다. 옷을 두껍게 입으니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었다.

참을 수 없는 잠이 쏟아지는 것은 큰 변화이면서 골칫거리였다. 잠이 수시로 와서 일을 하다가도 깜빡 잠들곤 했다. 당시에 완료해야 하는 ISO9002로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로 서류를 만들었다. 그런데 일을 하다가 한순간에 기절하듯 선 자세로 잠이 들곤 했다. 길게 자는 건 아니었지만 5분, 10분이 삭제됐다. 잠깐 타는 버스 안에서 서 있다가도 잠이 왔다. 저녁에도 일찍 잠이 들었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 낮에도 수시로 잠이 와서 깜짝깜짝 놀랄 일이 생기곤 했다. 회사일을 하다가도 뭔가 빼먹는 일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메모를 더 자주 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혹시나 빼먹는 게 있을까 봐 정신을 집중할 때였다. 몸 상태가 달라지다 보니 학교 스케줄을 빼먹고 말았다. 출석수업 날짜를 깜빡한 것이다. 큰일 났다. 이미 이틀을 못 갔다. 과목별로 수업일수가 부족하면 시험을 못 치르게 할 수도 있었다. 부랴부랴 출석수업에 참석했다. 다행히 세 과목 중 두 과목은 출석 일을 맞출 수 있었다. 그런데 한문이 문제였다. 출석수업을 단지 하루만 참석했고 교수님이 상황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수업을 인정하지 않으면 시험을 치르는 게 의미가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험은 세 과목 모두 응시했다.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는 동안 다행히 겨울이라서 학우들은 내가 임신한 사실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다.

출석수업은 제대로 못 들었지만 시험공부는 완벽하게 준비해서 시험에 응시했다. 시험을 본 후 1개월 후에 점수가 나왔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한문 시험은 0점 처리가 됐다. 이미 출석수업 응시로 시험을 치렀기 때문에 대체시험으로 바꿀 수도 없었다. 시험을 아무리 잘 봤어도 출석 점수가 인정이 안 돼서 점수를 못 받은 것이다. 잠이 쏟아지면서 생긴 실수라서 그게 너무 한심스러웠다. 아이를 가졌다고 다른 일들을 소홀히 지나칠 순 없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른 것도 더 신경 써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임신 5개월 차에 기말고사가 있었다. 기말고사는 준비를 더 열심히 했다. 공부를 많이 한 만큼 점수가 나쁘지 않게 나왔다. 그러나 출석수업 0점 처리된 한문은 당연하게도 안 좋은 점수를 맞았다. 중간고사에 시험은 시험 자체만으로는 30점 만점이 나와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0점이었으니 기말고사에 한문을 더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3~4문제만 틀려도 과락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책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공부했고 객관식 기말고사에서 한 문제를 틀렸다. 다행히 F학점은 면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출석만 인정해 주셨으면 A+ 였을 텐데 D+를 받게 된 것이다. 그래도 여섯 과목 중 과락인 과목은 없으니 3학년에 올라가는 건 문제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엄마와 살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그의 집에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계속해서 배가 불러오고 있었다. 봄이 되면 회사에 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회사의 서류도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ISO9002 심사가 끝난 후에는 회사를 그만둘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나는 돈이 없었다. 그리고 그도 돈이 전혀 없었다. 둘 다 가진 돈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야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려면 그전에 같이 있을 공간이 필요했다.

"아이야~ 너와 함께 있을 공간이 필요한데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아이가 느껴진 후 나는 자주 아이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참을 수 없는 여러 가지 몸의 변화를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아이의 존재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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