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그의 졸업, 그리고 그의 방으로

셸 위 댄스-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86화

(라라크루 5기-9일 차)




겹황매화(꽃말: 기다림, 숭고)



그의 졸업, 그리고 그의 방으로


2001년 봄이 되어 임신 7개월 차가 됐다. 몸이 제법 무거워졌다. 학교는 2학기 기말고사 이후 방학을 맞이했다. 뱃속에 아이는 무럭무럭 자리고 있었다. 임신 초기부터 이런저런 검사를 많이 했다. 임신을 하면 원래 그렇게 많은 검사가 필요한 건지 한 달에 두 번 있는 정기검진 말고도 여러 가지 검사가 진행됐다. 병원비가 많이 나올 때도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이 되는 검사를 받을 때는 통장잔고를 고려하면서 검사를 받았다. 그래도 임산부에게 모두 필수 검사라고 되어있어서 함부로 무언가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날로 하게 되었다. 뱃속 아기의 주수에 따른 검사가 아기의 상태를 확인해 주는 중요한 지표 같았다. 임신을 해서 그런지 아기의 건강상태에 대한 염려하는 마음이 생겼다. 한 가지씩 검사에 통과될 때마다 한 번씩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7개월 차가 되면 3월로 계절이 봄에 접어들게 된다. 3월에는 하루가 다르게 옷이 곧 가벼워질 수 있었다. 회사를 다니는 건 2월 말일까지로 정했다. 회사에서는 아무도 나의 임신 사실을 몰랐다. 다행히 7차 월까지 배가 아주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정기검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번 아기의 발육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아기가 잘 자라고 있어서 평균적인 성장을 유지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준비할 것이 많았는데 무엇 하나도 준비한 게 없었다. 아이 옷 한 벌은 고작이고 아직 혼인신고도 안 했고, 아이를 키울 장소도 정하지 못했다. 둘 다 가진 돈도 없었지만 가족들에게 손을 벌릴 처지도 안 됐다. 회사의 중차대한 <ISO9002>는 무사히 통과됐고 나는 2월 마감을 끝으로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다급한 대로 처녀가 아이를 가진 상황에서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당시 형, 형수, 어머님과 함께 시흥에 위치한 빌라에 살고 있었다. 임신하고 그의 집에 인사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제야 그의 형편을 조금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본인이 갓난아이로 백일 정도 됐을 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홀어머니가 아들 둘을 홀로 키웠다고 했다. 그리고 1년 전 본인과 형이 빌라를 샀고 명의는 어머님 명의로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형도 불과 얼마 전에 결혼을 해서 자신은 어머니, 형, 형수와 함께 산다고 했다.


빌라 집에 방은 세 개였고 돈이 전혀 없었던 우리의 보금자리로 그의 방이 정해졌다. 내가 무거운 몸을 한 채로 몆 가지 옷가지만 챙겨서 들어가게 되었다. 형수님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셨지만 좋은 분 같아 보였다. 어머니도 언뜻 잠시 인사했을 때 나에게 조차 존댓말을 하는 걸 보며 점잖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형의 직업은 일식 요리사로 벌이가 꽤 되는 듯 보였다. 형수 되는 분이 시집을 와서 가정주부로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 형이 결혼하고 나서 집안 살림은 형수가 맡아서 하고 있다고 했다. 형수님의 음식 솜씨가 좋아서 맛있는 밥을 먹는다며 좋아했던 게 기억이 났다.


2월에는 그의 졸업식이 있었다. 그는 나보다 2학년이 빠른 학번이었고 2001년 2월 겨울의 막 마지에 97학번의 졸업식이 있었다. 그는 그의 의형제들과 함께 졸업을 맞이했다. 그의 졸업식에 나는 배가 부른 상태에서 참여했다. 그의 친구들인 <독수리 오 형제>는 모두 같은 학년이라서 다 같이 졸업식에 참석했다. 나는 꽃다발을 준비하고 그와 그녀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당연히 식사를 하러 같이 이동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먼저 집으로 가라고 했다. <독수리 오 형제>끼리 쫑파티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좀 당황했다. 학교에 아직 내가 임신한 사실을 다 알리지는 않았지만 독수리 오 형제는 모두 우리의 상황을 알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도 그와 그녀들은 나에게 혼자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홀로 그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의형제(여자 넷)들과 식사시간을 가졌으며 그날 아주 늦게야 집에 도착했다.


며칠 후 시흥 집으로 들어가서 기거할 때 그는 의형제들과 졸업여행을 간다고 했다. 나는 우리 집(친정집)도 아닌 그의 방에 있는 기간 동안 마음 편히 거실에 나와있지도 못할 때였다. 그가 졸업여행을 다녀온다고 해서 나는 혼자 그의 방을 지켜야 했다. 그의 방으로 들어간 지 2주 정도 지났을 때까지 나는 그의 방 안에서 거의 나오지 못했다.


살림은 형수의 것이었기 때문에 그의 집에서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나는 그의 집에서 밥 먹고 설거지할 때만 식기류를 만질 수 있었다. 나에게 대놓고 구박한 것은 아니지만 공기부터가 달랐다. 암묵 속에 흐르는 공기는 숨을 쉬는 것조차 불편해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밥 먹는 시간 이외에는 거실에 오랫동안 나와 있을 수 없었다. 낮 동안 형과, 그가 출근을 하면 어머니와, 형수도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밥을 두 끼 먹고 설거지를 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회사를 그만둔 2001년 3월 나는 블랙홀이나 미로 속에 빠진 듯 그의 방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문 밖에는 무서운 고양이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면 잡아먹을 듯 거실을 돌아다녔다. 임신으로 무거워지는 몸으로 두려움과 공포에 질린 새끼 쥐처럼 꼼짝없이 방 안에 갇힌 듯 나는 문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그의 방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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