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 순대를 못 먹었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역해서 먹을 수 없었다. 작은언니는 순대를 무척 좋아했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어릴 땐 못 먹는 게 많았다. 파, 양파, 생강은 정말이지 먹기 힘들었다. 실수로 파나 양파, 생강이 숟가락이나 젓가락에 잡히면 그대로 씹지도 않고 삼켜버렸다. 어릴 때 엄마는 음식을 뒤적거리는 걸 참아주지 않았다. 음식을 뒤적거리면 숟가락이 바로 머리에 딱~소리를 내며 가격해 왔다. 양념 말고 음식 중에 대표적으로 못 먹었던 건 생간, 순대, 번데기 등이었다. 떡볶이는 너무 맛있는데 순대는 냄새만 맡아도 속이 메스꺼워서 못 먹었다. 나는 떡볶이를 좋아하고, 작은언니는 순대를 좋아했다.
그런데 임신을 해서 그의 집에 있는 어느 날 순대가 너무 먹고 싶었다. 순대 정도를 사 먹을 정도의 돈은 가지고 있었다. 언니들이 조금씩 돈을 준 것도 있었기 때문에 순대를 못 사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방문 밖이었다. 방안에만 있다가 형수님께 순대가 먹고 싶다고 말하기도 어색했다. 어머니가 같이 살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평소에 말이 더 없으셨다. '밖으로 나가서 순대를 사 먹을까? 사 올까?' 도 생각해 봤다. 그러나 혼자 나가서 순대를 사 먹는 건 왠지 너무 나쁜 일 같았다. 그리고 처녀가 임신해서 남자의 집에 들어온 것에 주눅 들었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게 있다고 내 손으로 사 올 수도 없었다.
순대가 너무 먹고 싶다고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퇴근길에 순대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임신을 하고 처음으로 먹을 것을 부탁해 본 것이다. 그가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오는 소리에 그의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그런데 그의 손은 빈손이었다. 순대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그날 저녁도 그냥 형수님이 차려준 밥을 먹었다. 며칠 후 한 번 더 순대를 사다 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다. 그는 두 번째도 순대를 사 오지 않았다.
2001년 3월, 그의 방으로 들어온 지 보름이 지났다. 산부인과 검진을 위해 계속 다니던 부천병원으로 갔다. 지역이 바뀌었다고 함부로 병원을 옮길 수는 없었다. 검진을 받았고 특이사항은 없었다. 다행히 아이는 잘 자라고 있었다. 그맘때쯤 보통의 부모들은 아이의 성별을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병원에서는 먼저 아이의 성별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나는 아이의 성별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마음속으로 아기가 딸이면 더 좋겠다고만 생각했다. 우리 집만 봐도 엄마에게 아들이 한 명, 딸이 셋 있었지만 딸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도록 아들이 무척 분발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 진료가 끝났지만 집으로 바로 가지 않았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인 심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심의 퇴근시간에 맞춰서 부천역으로 가면 됐다. 진료가 끝났지만 심의 퇴근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부천역 근처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숍에서 차를 한잔 시켰다. 늘 커피가 '굉장히' 마시고 싶었지만 임신한 상태에서는 가려야 하는 게 많았다. 10여 년 전 아는 동생이 임신을 했을 때 만나보니 옛날과는 분위기가 변한듯했다. 산모더라도 좋아하면 조금씩 다 허용하는 분위기라서 자유로워 보였다. 나는 차 한 잔을 시켜놓고 몇 시간 동안 커피숍에서 심을 기다렸다.
심이 퇴근을 하고 부천역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다. 나는 커피숍을 나가서 심과 만났다. 심은 배가 많이 불어있는 나를 보고 바로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우린 밥을 먹었다. 나는 오랜만의 외식에 먹는 것에 집중했다. 음식점을 나와서 커피숍으로 갔다. 그간 서로의 변화에 대해 심과 이야기 나누었다. 심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나도 심의 연애사 이야기와 부천지역 모임 소식을 전해 들었다. 중간중간 이야기를 하는 내가 다소 멍해 보이고 표정이 전에 없는 표정이 되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순대 이야기를 꺼냈다. 순대가 너무 먹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심이 순대를 지금이라도 사주냐고 물었다. 그러나 이미 배가 불렀고 순대 생각은 나지 않아서 괜찮다고 했다.
우리가 헤어질 시간이 다가올 때였다. 심이 나에게 말했다. "너 거기서 나와야 할 것 같아, 너 그러다 큰일 날 것 같아" 심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집을 알아봤었다. 집을 구하려면 꽤 많은 돈이 필요했다. 돈이 전혀 없는데 어디로 간단 말인가? 월세방을 구하려고 해도 보증금이 필요했다. 아무리 허름한 집이더라도 보증금 300만 원에서 500만 원이 필요했다. 게다가 보증금이 적을수록 월세가 부담되는 게 실정이었다. 집을 구한다는 건 너무도 큰 장벽이었다.
다음날 다시 나는 방안에 있었다. 임신 때문인지 자꾸 뭔가 먹고 싶었다. 다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순대가 먹고 싶으니 사다 달라고 세 번째로 부탁했다. 혼자 나가서 먹는 건 아닌 것 같고 내가 먹자고 순대를 내 손으로 사 오는 것도 형수와 어머님께 왠지 면구스럽다는 말을 전했다. 그가 퇴근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게 됐다. 그런데 그는 그날 술 약속이 있었는지 늦은 시간에 들어왔다. 나는 형수님이 차려준 저녁을 먹었다. 그래도 그가 순대를 사 오면 순대를 먹을 생각에 저녁밥을 조금만 먹었다. 그는 아주 늦은 시간 집에 왔고, 그의 손에 순대는 들려있지 않았다.
다음날 작은언니와 통화를 했다. 작은언니의 안부를 묻기 위해서였다. 순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맘때 작은언니는 둘째 출산 예정일을 좀 더 남겨놓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아이를 조기 출산하게 되었다. 아이는 작게 태어났고 태어나자마자 몸이 안 좋아서 인큐베이터로 바로 직행했다. 작은언니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상황이 아니었다. 집안 이야기를 하다가 큰언니가 곧 계를 시작할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계? 그게 뭔지 잘 몰랐지만 <돈?>이라는 말이 나에게 와서 박혔다. 첫계? 계? 500만 원?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뭔가 내가 듣고 싶었던 단어가 햇살처럼 쨍~하게 비추었다.
잘 모르는 상황이지만 돈이 생길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나에겐 광영으로 느껴졌다. 계를 알아봤다. 첫계를 타려면 큰언니가 보증을 서야 한다고 했다. 큰언니에게 부탁하고 계를 타기로 약속받았다. 곗돈을 받아서 집을 얻어 나온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순대는 내가 임신한 기간 동안 유일하게 그에게 먹고 싶은 걸 말한 음식이었다. 순대가 먹고 싶을 때 사 먹을 자유를 얻기 위해 나는 그의 방에서 나오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