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즐거운 나의 집

셸 위 댄스 - 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89화

(별별챌린지 3기 -11일 차)




치자꽃 (꽃말: 청결, 한없는 즐거움과 행복)



즐거운 나의 집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쉬~일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내 집 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집 내 집 뿐이리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노래가 있다. 나는 임신해서 처음으로 내 몸을 쉴 수 있는 전셋집을 계약했다. 단칸방, 전세방이었지만 오롯이 생에 처음 갖는 나만의 공간이었다. 다세대였어도 2층 주인세대에 살고 있는 집은 거실도 있고 널찍한 창문이 있는 집이었다. 나의 집은 주인세대 끝방을 임시방편 개별세대로 만든 집이라서 창문 방향이 북향이었다. 건물주는 다른 곳에 살고 있었고 주인세대 2층집을 두세대로 나누어서 개조한 집이었다. 베란다는 없고 부엌과 화장실은 증축해서 난방이 전혀 안 됐다. 결점이 많은 집이었지만 나는 나만의 장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했다.


집 계약을 하고 친정 식구들에게 말했다. 엄마가 계약한 집을 봐주었다. 집 얻는 돈은 곗돈으로 시작됐고 여윳돈이 없었다. 집만 있다고 아무것도 없는 집에서 먹고, 자고, 쉴 수는 없었다. 살림을 채워 넣어야 했다. 냉장고, TV, 전자레인지, 가스레인지, 밥솥, 그릇, 이불, 세탁기 등등 당장 필요한 게 정말 아주 많았다. 친정식구들이 한 가지씩 가전제품을 마련해 주었다. 이불은 엄마가 마련해 줘야 한다면서 새 이불을 사주셨다. 가장 큰 가전제품인 TV, 냉장고, 세탁기는 엄마와 큰언니가 쓰던 것을 주었다. 국. 밥그릇, 접시, 냄비, 프라이팬, 컵, 주전자, 수저 등 많은 살림들을 엄마 집에서 공수해 왔다. 내가 산 것은 쓰레받기와 빗자루, 도마와 칼 정도였다.


엄마는 칼은 선물 받거나 다른 집에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고 직접 내가 사야 한다고 당부했다. 칼은 주방에서 꼭 필요한 도구지만 가격이 몇천 원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엄마 집과 언니들 집에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주 많은 살림살이들을 가져왔기 때문에 왜 칼은 유독 내가 사야 하는지 궁금했다. 엄마는 칼은 도구도 될 수 있지만 무기도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용할 사람이 직접 사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옛날 말들에는 뭔가 지켜야 하는 규율에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으므로 그 말을 따랐다. 따로 살림을 산다는 건 사소한 것 하나하나 모두를 마련해야 하는 일이었다. 엄마, 언니들은 아낌없이 집에 있는 것들을 나눠주었다. 나는 염치 불고하고 싸주는 대로 바리바리 가지고 나의 집으로 왔다. 작은 것 하나라도 사려면 나에겐 큰 부담이었다.


집 계약을 하자마자 엄마는 나를 가구점으로 데려갔다. 안방 크기를 줄자로 잰 이유를 곧 알게 됐다. 장롱을 샀다. 그건 꼭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삿날에 맞춰서 장롱이 도착했다. 당시에는 다소 나에게 부담되는 금액인 70만 원 후반 대였다. 그마저도 가구점 내에 있는 할부를 이용해서 엄마가 일방적으로 계약했다. 이삿날, "이대로 갚으면 돼"라고 말하며 영수증 한 장을 나에게 주었다. 영수증을 자세히 보니 매달 높은 이율로 이자가 붙은 할부금을 1년 가까이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삿날 정신이 없는 와중에 매달 하나의 고정비가 추간 된 것 때문에 몇 번이고 더 계산기를 두드려야 했다.


아이를 가진 후 얼마 안 돼서 큰언니가 누군가를 소개해 주었다. S생명 설계사님과의 만남이었다. 그분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보험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와 아이 아빠의 보험을 가입했다. 둘의 보험료가 20만 원 정도였다. 임신은 많은 생활을 변하게 했다. 임신을 했으니 모든 것들이 세트처럼 선택이 아닌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주변에서 당부했기 때문이다. 지출 금액이 늘어날수록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바로 일을 할 수도 없기 때문에 매달 생활비가 펑크 나면 큰일이었다. 하나하나 작은 비용이 추가되더라도 계산기를 여러 번 두드려봐야 했다.


곗돈은 첫 계로 500만 원 중 475만 원을 탔다. 첫 회 25만 원을 공제하고 475만 원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다음 달부터 매달 500만 원에 대한 1부 이자 5만 원과 매달 25만 원 곗돈을 합쳐서 20개월 동안 30만 원을 내야 했다. 첫계라고 좋아했는데 계산해 보니 이자가 어마어마했다. 총 625만 원을 불과 21개월 만에 납입하는 것이었다. 언뜻 보면 연 10% 이자 같았지만 그건 곗돈 계산식 방법이었다. 이런 돈을 1부라고 부른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러니 2부, 3부는 말 그대로 사채 돈이었다. 돈에 대한 무서움을 다시 한번 느낀 때였다.


이사를 하고 나니, 매달 고정비가 어느 정도 확정이 되었다. 그와 나 둘의 보험료 20만 원, 곗돈 30만 원, 전세자금 대출 원리금 35만 원 정도, 장롱 할부 10만 원, 두 사람의 핸드폰 요금 10만 원, 전기, 수도세 등 5만 원 정도 총 고정지출이 110만 원이 넘었다. 식비를 제외하고 숨만 쉬어도 나가는 돈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그의 월급은 100만 원이 채 안 되었다. 임신 7개월 차인 내가 무어라도 해야 했다. 매달 생활비가 펑크 나게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생활비 충당을 해야 했다.


내가 당시 집을 나올 수 있었던 건 모두 언니들 덕분이었다. 큰언니가 첫계를 소개해 줘서 <방탈출ㅋ>의 첫 키를 열 수 있었다. 숨을 쉬기 위해 탈출했으므로 앞으로 잘 살아내야 했다. 그러나 시작만 하고 매달 생활비에서 펑크가 나면 다시 길에 나앉을 수도 있는 형편이었다. 매달 조금씩 펑크 나는 것은 결국 빚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빚이라는 공포는 이미 체험으로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올해 초에 홍대에 갔다가 한동안 유행했던 <방탈출 게임>을 한 게 기억난다. 미션을 시간 안에 달성해야 하는 게임이었다. 게임은 달성하면 좋지만 미션을 달성하지 못해도 그만이라 즐겁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2001년 나의 <방 탈출기>은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리고 매달 부족한 돈은 내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미션이었다. <방탈출 게임>을 할 때, 문제에 대한 힌트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2001년 나에게도 마침 하늘이 도운 것인지 나름대로 미션을 풀어갈 <힌트>가 한 가지 있었다.


당시 작은언니의 소개로 큰언니는 부업 총책임을 맡고 있었다. 핸드폰 조립을 하는 거였다. 큰언니는 손이 엄청 빠르고 꾸준한 것으로는 최고의 노력가였다. 큰언니가 부업을 할 때 큰언니네 집에 자주 갔다. 처음엔 앉아있으면서 짬짬이 도왔는데 큰언니가 매번 품삯을 챙겨줬다.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일을 많이 하면 더 챙겨주었다. 막상 분가를 하고 보니 나에게 돈이 반드시 필요해졌다. 임신 8개월인 임산부가 밖에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부업을 좀 더 하게 되었고, 부업 일을 많이 늘리게 되었다. 만삭이 돼도 나는 부업을 했다. 하루에 꼬빡 앉아 있는 시간이 10시간을 넘어갔다.


임신한 동안 아침 일찍 그가 출근하면 나는 큰언니네 집으로 출근을 했다. 하루 종일 큰언니와 부업을 같이 했다. 점심은 큰언니와 함께 먹었다. 중간중간 임산부인 나를 생각해서 큰언니가 간식도 챙겨주었다. 저녁이 되는 시간이 다가오고 그가 퇴근하기 전에 나는 집으로 와서 저녁을 차렸다. 그는 반드시 국과 밥을 먹는 사람이라서 매일 국과 밑반찬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사하고 얼마 안 된 어느 날 그가 자정이 넘어 새벽 3시가 넘어가는데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를 수십 번 했던 것 같다.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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