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 그의 방을 벗어나 이사를 했다. 출산예정일을 고작 두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때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배가 부른 상태에서 부업을 했다. 핸드폰 부품을 조립하는 부업이었다. 부업 작업은 몇 가지로 나뉘어있었다. 스티커를 붙이고 단자를 여러 개 끼워야 했다. 단자는 보통 길이는 1센티 정도 되고 두께는 1mm 정도 되는 작은 단자였다. 여러 개의 단자를 케이스 두 개에 꼽아야 했다. 그 과정이 가장 난도가 높았다. 작은 단자를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양옆을 잡고 끼워야 했다. 자칫 위에서 누르면 불량이 날 수 있었다. 워낙 작은 단자에 힘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손톱이 도구가 되곤 했다. 핸드폰 두 개의 케이스에 금색으로 도금된 단자들을 끼우는 작업을 하다 보면 손톱이 망가지기가 쉬웠다. 매일 조금씩 손톱이 갈리면서 손톱 끝이 움푹 파이게 됐다.
이사를 계획했을 때 나와 그는 동사무소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 혼인신고를 하려고 했기 때문에 시기가 늦은 것도 빠른 것도 아니었다. 전세자금 대출을 받으려면 주소지에 이전하는 사람들의 개인 정보와 관계도 필수 사항이었다. 둘의 관계가 동거인이 아니라 가족이어야 했다. 결혼에 대한 간단한 예식도 없이 치러진 혼인신고였다. 각자 부모님들께 인사는 드렸지만 상견례조차 하지 못했다. 임신 다음으로혼인신고가 이루어졌다.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중차대한 수순이 이미 너무 틀어져 버렸다. 예식도 없이 그와 나는 기혼자가 되었다.
아침에 큰언니네 집으로 출근해서 평소와 똑같은 아침 점심 저녁이 지나갔다. 퇴근시간이 넘었는데 그가 집에 오지 않았다. 전화를 몇 번 했다. 자정이 지날 때까지는 두세 번 전화한 게 다였다. 이런 일이 그전에도 또 있었기 때문이다. 술 약속이 있거나 <독수리 오 형제>와 약속이 있는 날은 전화를 잘 받지 않곤 했다. 보통 처음에는 전화를 잘 받았지만 술자리가 깊어지면 술에 취해서 전화를 안 받았다. 소소한 에피소드로 나는 독수리 오 형제를 싫어하게 됐다. 처음엔 별생각이 없었지만 그들의 행동에 화가 났고, 그에게도 몇 차례 실망했다. 그러나 임신한 상태에 아이 아빠인 그를 증오할 수 없으니 그녀들을 싫어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의형제를 싫어하는 내가 못마땅했던 그는 이후 그들과 만날 때 내 전화를 종종 받지 않았다.
12시가 넘어갈 때까지는 그냥 '그녀들과 노느라 내 전화를 또 안 받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화를 더 자주 하지 않았다. 그런데 12시가 넘어가고 새벽 2시간 넘어갈 때까지 연락이 안 되자 덜컹 겁이 났다. 혹시라도 사고가 난 건 아닌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두려운 마음이 들자 더 전화를 하게 됐다. 처음엔 전화만 하다가, 문자도 하게 됐다. 이후에는 음성도 남기게 됐다. 별 탈 없는지 소식이라도 전해 달라는 애원조의 음성이 녹음됐다. 무서운 생각이 나를 차츰 잡아먹고 있었다. 임신한 상태에 아이아빠에게 큰일이라도 일어난다면 끔찍할 것 같았다.
새벽이 밝아왔다. 뜬눈으로 날을 지새웠다. 그의 전화기는 꺼져있지 않았다. 그러나 전화연결은 새벽까지도 안되고 있었다. 무의식 중에 화장실을 참은 건지 배가 아팠다. 통증이 느껴지자 덜컹 아기 걱정이 됐다. 배 속에 아기가 엄마의 불안한 마음을 느끼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미 뱃속에서 아이가 많이 자라 있었다. 엄마가 이렇게 마음고생을 하면 아기에게 악영향이 미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잠을 못 잔 게 뒤늦게 후회되고 아기가 걱정됐다.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기 위해 누웠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나도 모른 게 눈물이 흘렀다. 만약 사고라도 난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아침 시간이 되었다. 무사하다면 집에는 안 들어와도 회사는 출근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침 출근 시간이 지나서 전화를 또 걸어봤다. 그는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새 핸드폰을 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 저녁에 집에 올 거라는 문자였다. 사고가 난 건 아니라는 생각에 한편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에 별일 없다는 듯이 나는 큰언니네 집으로 갔다. 평소처럼 부업 일을 했다. 가족들에게 그가 어젯밤 집에 안 들어왔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핸드폰 단자를 끼우느라 엄지손톱이 심하게 망가져서 통증이 느껴졌다. 퇴근시간이 다 돼서 집으로 갔다. 평소와 같이 저녁밥을 만들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가 나타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퇴근시간이 지나서도 오지 않았다.
그에게 전화를 했지만 그는 또 받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그가 집에 오지 않아서 다시 전화를 했다. 그가 전화를 받았다. 술을 마셨는지 취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그는 나에게 힘들다는 말을 했다. "힘들어서 못 살겠어"라고 말하는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술 조금만 마시고 들어와요"라고 말하고 통화를 끝냈다. 그는 새벽 즈음 집에 들어왔다. 아주 많이 취해있었기 때문에 그냥 자게 둘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그와 이야기를 했다. 힘들다는 그에게 무엇이 힘든지 물어봤다. 술이 완전히 깬 그는 정확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그가 왜, 무엇을,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나는 당시에 알지 못했다. 그때는 그저 가장이, 아이의 아빠가, 남자가 집을 나간 것이 이상했다. 화도 났고, 그가 걱정되기도 했다. 내가 무언가 잘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가 이틀 만에 집으로 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서류상 부부가 된 여자가 임신 8개월 차 일 때 그는 집을 나갔다. 25살이었던 나는 처음 겪는 일에 대처할 능력이 없었다. 그리고 그가 이해되거나 해석되지 않아서 그 누구한테도 상의할 수 없었다.
그가 집을 나간 것에 대해 나는 그걸 한 단어로 명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집을 나간 것을 외출? 외박? 가출? 등으로 명명하지 못했다. 다만 <집을 나가는 것>이라고 명명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