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나의 노래

셸 위 댄스-인생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by 장하늘

91화

(별별챌린지 3기-12일 차)




등골나물꽃(꽃말:주저)



나의 노래


2001년 4월 부천으로 이사 오고 그가 처음으로 집을 나갔다. 그가 집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와 큰소리 내며 싸우지 않았다. 그가 힘들다고 하는 이유가 알고 싶었다. 처음엔 술 마시고 취해서 늦게까지 노느라 집에 안 들어온다고 생각했었다. 술 마시느라 전화도 안 받고 잠들어 버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전에도 여러 차례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술 마시다가 잠들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집에 안 들어온 것이 화가 났지만, 그와 연락이 안 되면서 걱정하는 마음이 많이 커졌다. 사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걱정하고 겁을 먹기도 했다. 간사한 마음 덕분에 내 마음속에 불같이 일어났던 화조차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술자리를 좋아했다. 특히 독수리 오 형제와의 술자리를 좋아했다. 내향적인 성격이라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와 불편한 사람이 있을 때 행동이 많이 달라졌다. 친한 친구들이나 편안한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말도 많아졌다. 술 마시고 즐거울 때는 목소리도 커지고 활달하게 변했다. 그러나 불편한 사람이 있거나 우리 가족들과는 있을 때는 말이 별로 없었다. 술 주량도 어울리는 사람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 친구들과 있을 때는 술을 많이 마셨고 취할 때까지 놀았다. 술이 센 건 아닌지 취하면 잠이 들었다. 잠이 들면 당연히 연락도 안 되고 늦게 들어오곤 했다.


나는 그가 힘들다고 말한 것이 계속 신경 쓰였다. 그를 힘들게 하는 원인을 찾고 싶어서 나름대로 계속 그 생각을 하곤 했다. 연애중일 때 그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었다. '아이가 생기고 가정을 꾸리면서 글을 못써서 마음이 안 좋은 걸까?' 혼자 그가 왜 힘든지 생각해 보려고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가 전에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는 꿈이 있다고 했다. 자유롭게 살며 유랑하듯 떠돌며 방랑객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가 길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나는 그의 말에 "꿈이 객사라고요?"라고 웃으며 말했었다. 내가 순전히 농담으로 던진 말에 그가 진지하게 수긍을 했던 게 기억난다. 당시에도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며 표정관리가 안 됐던 기억이 났다.


날마다 뱃속에서 아이의 존재를 느끼며 다짐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다. 나는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이 알고 싶었다. 나의 부모는 나에게 좋은 부모가 어떤 건지 알려주지 못했다. 나는 자녀양육의 최선에 대해 보고 배운 게 없었다. 그게 마음속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럴 때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방법이 나오면 늘 메모하고 시도해 보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그러나 막상 메모장 속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로 채워지지 않았다. 다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만 채워지곤 했다. 나는 나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자고 나락의 길에 들어갈 순 없었다.


좋은 부모가 되는 가장 큰 조건은 부모의 능력이 기반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경제적 기반이 없었다. 당장 내 앞길을 헤쳐나가려면 아이와 같이 있어줄 수도 없었다. 나에게는 무거운 빚이 있었다. 그리고 챙겨야 하는 식구들도 있었다. 남편 혼자서는 우리 네 식구가 생활하는 것도 빠듯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적어놓는 건 의미 없는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적다 보면 적을 것이 없어졌다. 다만 내가 느꼈던 부모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차곡차곡 기재해 놓게 되었다. 충분하게 자식에게 무언가 해주는 건 이미 내려놓았다. 부족하더라도, 적어도 자식에게 나쁘거나 아픈 부모가 되진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렇게 산모수첩 속의 메모는 아이에게 쓰는 편지와 신에게 기도하는 내용들로 채워졌다.


봄볕이 더욱 따뜻해지는 어느 날 작은언니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를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왜 거기에 가야 하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작은언니가 나에게 너는 그냥 와서 서류만 작성하면 된다고 했다. 가족들 모두가 가야 한다고 했다. 영문도 모른 채 그곳으로 향했다. 가족이 다 같이 모여있었다. 나, 작은언니, 오빠, 큰언니, 엄마, 모두 함께 어느 건물에 도착했다. 창구 같은 곳에서 서류를 받아 들었다. 그곳에 모두 서명과 날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제목에 <보증>이란 단어가 보였다. 내가 작은언니를 쳐다봤다. 이게, 뭔지 묻는 의미였다.


작은언니는 당시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샀던 빌라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여전히 아버지 명의로 되어있었다. 세상 물정 모르던 우리들은 상속, 명의에 대한 조치를 아무것도 하지 않았었다. 당시 상속법은 무지에 대해 보호해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4년이 지나도록 가족들 중 누구도 명의 변경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집에 대한 담보대출권자가 임의로 상속을 진행시킨듯했다. 담보대출 원리금이 연체가 되자 절차대로 강제상속을 진행한듯했다. 그 때문에 모든 상속인들이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서류 제목에 <보증>이란 단어가 왠지 꺼려졌다. 작은언니에게 내가 물었다. "그런데 이거 보증이란 말은 모야? 이거 서명하면 책임져야 하는 거 아냐?" 내 물음에 작은언니가 나에게 "넌 그냥 싸인만 하면 돼"라고 말했다. 작은언니가 엄마랑 합가 해서 살게 됐으니 작은언니가 잘 해결할 거라고 받아들였다. 서류를 읽지도 않고 싸인을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집을 나갔다 들어온 후 며칠 동안 나는 그의 눈치를 보게 됐다. 그에게 낮에 있었던 일이나 친정의 소소한 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만삭이 거의 다 되어 방송대 3학년을 맞이했다. 곧 출석수업 일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 아빠, 엄마의 집, 걱정되는 일들이 많았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큰 걱정거리였다. 출석수업에 우리 과 학우들을 만나게 될 텐데 나의 모습을 보고 놀랄 것 같았다. 우리 과 학교 사람들은 2학년 때까지 나의 임신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곧 출석수업에 그들을 만나면 모두가 알게 될 일이었다. 세 과목은 리포트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출석수업일 당일이 됐다. 집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학교에 가는 길이 천리길처럼 멀게 느껴졌다. 돌아서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거워진 몸보다 마음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졌다.


이어폰을 꼈다. 임신을 하고 거의 매일 듣는 목소리였다. 카세트테이프에서 좋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할리데이비슨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하고 싶다고 그가 말했다. 몇 년 전 우연히 버스 안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처음 듣는 목소리와 음색에 빠져들었다. 버스 안인데도 노랫소리에 빠져서 그 어떤 잡음도 들리지 않았다. 잔잔한 음률에 홀린 듯 집중해서 듣다가 이내 눈물을 흘렸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가수와 노래 제목을 알게 되었다. 가수는 김광석,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노래였다. 그 후 그의 목소리에 반해서 김광석 테이프를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가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다. 듣고 있던 건 그가 몇 년 전 콘서트 때 녹음한 테이프였다. 이내 노래가 이어졌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

아무도 뵈지 않는 어둠 속에서

조그만 읊조림은 커다란 빛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노래는 나의 삶

자그맣고 메마른 씨앗 속에서

내일의 결실을 바라보듯이

아이의 조그만 읊음 속에서

마음에 열매가 맺혔으면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노래는 나의 삶!

~~~~~~~~~~~~ 김광석의 <나의 노래> 중...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학교에 도착했고 출석수업에 참여했다. 나를 본 언니들과 학우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않고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보는 사람마다 똑같은 레퍼토리의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대답했다. "네, 네, 임신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세상을 향해 나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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