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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Sep 16. 2024

나만 빼고 퇴사해15

중소기업 지역 청년 연쇄 퇴사 소설

 오랜만에 그 시절을 기억하며 인오와 예주는 웃었다.

“오빠,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떠올릴 수 있고 얘기할 수도 있어.”


 “다행이다.”


 “시간이 약이었나? 그때 마지막 학기 중간고사는 불태울 수 있었지.”


 “다들 충격 요법 덕분인지 마지막 학기에서 학점은 정말 잘 나왔잖아.”


 “치열하기도 했고 재밌기도 했어.”


 “혹시 보이후드라는 영화 알아?”


 “최근은 아니고 보기는 봤어.”


 “나이 들면 열정도 사라지고 무감각해진다는 대사가 확 꽂히더라.”


 “오빠, 벌써 그럴 나이야?”


 “나랑 몇 살이나 차이난다고.”


 “난 오빠랑 달라. 똑같은 취급하지 마. 항상 열정이 넘치면 그것도 이상하잖아.”


 “그렇겠지?”


 “나이가 들면 열정 대신에 다른 게 채워지지 않을까?”


 


 하진은 출근을 하면 주식 어플에 접속을 하고 모니터에는 주식 창을 띄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 회사의 유일한 장점.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다. 지금 이 시간에 대기업에서는 직원들이 배탈이라도 난 듯 우르르 전화기를 들고 화장실로 달려간다. 아침마다 그런 풍경이 어김없는 일상처럼 펼쳐지니 장염이 전염병처럼 돌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화장실 칸마다 직원들이 앉아서 주식 창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전부 울상을 짓는다. 그런데 정말로 대장(大腸)에서 신호를 보내 화장실이 급한 직원이 용무를 볼 수 없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1년 가운데 단 하루.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열리는 날은 10시를 앞두고 화장실 쟁탈전이 벌어진다.’


 인오는 아침부터 울리는 무전기를 받았다.


 - 지원자 들어왔냐?


 - 아니요.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 언제 올렸는데 아직 지원자가 아무도 없는 거야? 현장에 매번 사람이 나가서 바쁜 것 알아? 몰라?


 - 상단에 보이도록 신경 쓰고 있는데요.


 - 지원자 들어오면 빨리 보고하라고.


 인오는 매번 무전기를 통해 똑같은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모습에 정말 구역질이 난다는 생각을 하며 구직 사이트 창을 열었다.


 


 곤 부장은 회의를 소집하였다.


 “참, 두 사람. 근무 중 퇴사 방지 방안은 어떻게 됐어?”


 인오와 하진은 난감한 표정만 지었다.


 “이번에도 신입사원을 뽑았는데 첫날부터 나가면 두 사람이 책임질 거야?”


 ‘책임은 왜 우리만 지는 거냐?’


 ‘내가 먼저 나가던가 해야지.’


 “두 사람 어떻게 할 거야? 묵묵부답으로 시위라도 하는 거야?”


 “현장직처럼 수시로 채용하면 어떨까요?”


 인오가 말했다.


 “뭐? 그럼 내가 수시로 면접을 봐야한다는 얘기야? 내가 한가한 줄 알아? 안 돼. 참, 요즘 젊은 사람들… 문제야, 문제. 편하게 살아서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하고… 우리 회사 일은 힘든 축에도 못 드는데…”


 인오와 하진은 매번 듣는 이야기라 ‘또 시작이다’ 하는 표정을 지었다.        


 


 수요일 오후, 두 사람은 샛별 아파트를 찾았다. 사람들이 뜸해진 틈을 타서 인오와 하진은 쉬고 있었다.


 하진은 주식 삼매경이다.


 “좀 나아졌냐?”


 “월급이 들어왔으니 물을 타야지.”


 “대주주가 되려고?”


 “몰랐구나? 내 꿈은 판타스틱 솔루션의 대주주가 되는 거야. 다 계획이 있거든.”


 


 2053년.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행사장의 객석에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다.


 무대 앞쪽에는 ‘공부보다 대주주 되기가 가장 쉬웠어요’의 저자 도하진 초청 강연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인다.


 “그럼 저자를 모시고 강연회를 진행하겠습니다. 여러분 큰 박수로 환영해주십시오.”


 60대의 하진이 사람들의 박수와 탄성과 함께 무대에 등장한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판타스틱 솔루션의 대주주 도하진입니다. 여러분, 제가 어떻게 대주주가 되었는지 비결을 알고 싶어서 오셨죠? 저는 중소기업 직장인으로 다니면서 주식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직접 공부를 하면서 판타스틱 솔루션을 발굴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주가가 내려가더라고요. 재무제표가 건실하고 아무런 악재도 없는데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판타스틱 솔루션을 믿었고 벼룩의 간만한 월급으로 물타기를 끊임없이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불안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8년쯤 지나니 추세 전환이 일어났고 유망한 스타트업이었던 판타스틱 솔루션은 중견기업이 되더니 어느덧 대기업으로 거듭났습니다. 저는 어쩌다보니 대주주가 되어 있었고요. 여러분! 여러분이 선택한 기업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주가가 하락하면 계속 물타기를 하세요. 그러면 여러분도 대주주가 될 수 있습니다.”


 객석에서 탄성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하진은 자신의 상상이 이루어진다고 확신에 가득찬 얼굴이었다.


 “대주주가 되면 나한테 떨어지는 것 없냐?”


 “모르는 척은 하지 않을게.”


 “치사하네.”


 “너 면접 보러 간다며?”


 “여기 근처야.”


 “근무 시간에 이직 면접도 보고 치밀하네.”


 “근무 시간에 주식하는 사람이 뭐라는 거야?”


 


 인오는 와룡시장에서 멀지 않은 회사를 찾았다.


 “식품회사 영업직 경력이 있네요? 저희랑 업종은 다른데 괜찮겠습니까?”


 “네.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다른 질문이 더 있나요?”


 “저기… 제 또래의 직원은 없나요?”


 “아, 젊은 직원이 있기는 있어요. 베트남 출신 후이는 지산전문대학 기계과를 졸업했고 태국에서 온 친구는 범물정보대학 출신이고. 아까 못 봤어요?”


 “네…”


 “의사소통에 아무 문제 없어요. 대구에 있는 전문대는 이제 다른 나라 학생들이 채운다고 봐야지.”


 “그럼 연봉은 어떻게 되죠?”


 “그건 사장님이 결정하는 문제라서요. 저는 일개 과장입니다.”


 “그래도 대략적으로 얼마인지는 얘기해줄 수 있지 않나요?”


 “그 문제는 사장님 권한이라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면접을 마친 인오는 와룡시장을 찾았다. 마치 베트남이나 필리핀 등으로 여행을 온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시장 주변에 외국인 노동자와 유학생이 많아 그들이 와룡시장을 살린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시장을 잠깐 둘러보고 인오는 다음 면접장으로 갔다.


 


 대구의 구도심 향촌 청년시장에 있는 예주의 가게 이름은 ‘책꽃이’였다. 한 공간의 반쪽은 꽃집, 나머지는 서점이었고 인오는 내부를 둘러보며 책을 살폈다.


 “분위기 괜찮다. 책 사러 왔다가 꽃을 살 수도 있고…”


 “꽃을 사러 왔다가 책을 살 수도 있지.”


 인오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여덟 번째 방>, <쇳밥일지>, <자살공화국> 등을 고르고 계산대로 향했다.


 “오빠가 첫 손님이야. 정식 개업은 안 했지만.”


 “첫 손님인데 뭐 없냐?”


 “인심 쓴다. 저기 조그마한 화분 가운데 하나 골라봐.”


 식물이 가득한 곳으로 가서 인오는 다육이 하나를 선택했다.


 “잘 키울 수 있지?”


 “선인장을 고를 걸 그랬나? 공연은 언제 할 거야?”


 “연습은 하고 있지. 나 얼마 전에 대동제 영상 봤거든.”


 “나도.”


 “완전 흑역사더라. 그냥 나 혼자만 신났더라고.”


 “그래도 노래는 괜찮게 불렀잖아.”


 “아니야. 엉망이었어. 아주 못 봐주겠더라.”


           


 명덕 대동제에서 찬형의 무대가 끝난 다음에 예주는 럼블피쉬의 ‘I go'를 열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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