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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Sep 17. 2024

나만 빼고 퇴사해16

중소기업 지역 청년 연쇄 퇴사 소설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남명맨션 A동 103호에서 나온 인오는 6분을 걸어 건들바위역에 도착한다. 명덕역과 남산역을 거쳐 청라언덕역으로 가는 짧은 시간에 출근과 등교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탑승을 하고 내린다. 인오는 아침미다 사람들을 보며 전생에 각 시대와 나라에서 매국 행위를 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환생을 했다는 확신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 중년 여성이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들어오더니 사람들에게 비켜라고 신경질을 내며 당당하게 얘기를 한다. 비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중년 여성과 장바구니 때문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나온다.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는 인오의 발을 밟고 지나간다. 인오는 얼굴만 찡그릴 뿐이다. 이어서 등산복장에 등산 가방을 맨 중년 남성 두 명이 들어온다. 이들은 복잡한 사람들 틈에 끼어들며 앉을 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등산 가방에 있던 등산 스틱이 인오의 얼굴을 가격한다. 인오는 화를 누르려는 듯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뜬다. 사람이 밀려들며 인오는 본의 아니게 옆에 있던 남자의 곁에 밀착을 하고 만다. 인오는 순식간에 얼굴이 아찔해진다.


 ‘향수 대신에 니코틴을 뿌리고 다니나?’


 인오는 고개를 돌리고 숨을 참아본다.


 지상철 3호선에서 지하철 2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서는 전자레인지를 돌려 카레와 짜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을 소요해야 한다. 인오는 여느 날처럼 하행선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상행선에서는 송성현이 탑승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느 지점에서 스쳐갔다. 인오는 긴가민가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지만 송성현의 뒤통수만 보였다.


 ‘얼굴이 익은데… 누구지?’


 


 곤 부장은 독수리 타법으로 ‘구미시 부동산 시세’를 입력한다. 잠시 후, 전화가 걸려온다.


 “명식아. 오랜만이다. 이번에 대출 금리를 낮춰준다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상담 받으러 갈까? 나야 아무 때나 가능하지. 보자… 회의를 빨리 끝내고 11시쯤에 너희 지점에 갈게. 만나서 점심도 같이 먹자. 오후에 일정은 어떻게 되냐? ‘대암아파트 분양하잖아. 구경 하러 갈래?”


 


 인오는 하진에게 오전에 봤던 송성현에 대해 말했다.


 “넌 기억 안 나?”


 “이름까지는 무리지. 얼굴도 생각이 날까 말까인데.”


 “나도 처음에는 누구지 싶었는데 한참 후에야 생각나더라고.”


 “뒤늦게라도 생각나는 게 신기하다. 네가 그 얘기 꺼내서 악몽이 떠오르잖아.”


 “아… 첫 출근 날에 도망을 갔어야 하는 건데.”


 “아니지. 출근을 안 해야 하는 거였어.”


 


 첫 출근을 며칠 앞두고 인오는 이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봉동에서 사용했던 가구와 집기는 이천동으로 그대로 가져왔다.


 “이런 집이 무슨 1억 5천이나 하노?”


 남명맨션은 6월 민주 항쟁이 일어나던 해에 완공을 하였고 인오와 인서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이런 집도 못 사서 대출 받으려고 그 난리를 쳤네… 우리는 언제 새 아파트에서 한번 살아보겠노?”


 엄마의 푸념과 헛웃음이 나왔다.


 “강남에서는 1평에 1억이 넘던데.”


 인오가 말했다.


 “그럼 이 집만 들고 대치동 은마아파트 옆으로 옮길까?”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더 비싸지 않나?”


 “그러면 이 집 가지고 압구정 현대아파트 옆으로 이사 가자.”


 인오는 생각을 했다. 1987년생 남명맨션이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에서는 1억 5천만원이지만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다면 최소 23억이라는 사실을.


 


 드디어 첫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 왔다. 하지만 인오는 아무런 확신이 없었다. 기상을 하고 방에서 나온 인오는 거실 탁자에 있는 대출 관련 서류를 봤다. 첫 출근을 위해 집에서 나온 인오는 뒤를 돌아 남명맨션을 한번 쳐다본 다음에 건들바위역을 향했다. 첫날부터 지상철 3호선에서 지하철 2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한 에스컬레이터가 지옥길이라고 여겼다. 청라언덕역에서 환승한 인오는 반고개역, 내당역, 두류역, 감삼역, 죽전역, 용산역, 이곡역을 거쳐 성서산업단지역에서 내렸다. 천기식품은 성서산업단지역에서 13분을 걸어야 닿을 수 있었다.


 출근 첫날 윤 대리는 인오와 하진, 안상준, 고진성, 송성현, 황우진에게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어 곤 부장이 회의실에 들어섰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면접에서 봤죠? 곤대일 부장입니다. 신입사원은 돌아가면서 자기소개 할까요?”


 곤부장은 인오를 지목했다.


 “안녕하십니까? 나인오라고 합니다. 저는 명덕대학교에서 관광학을 전공하고 밴드 동아리에서 활등을 했습니다. 올해 나이는 27살이고…”


 신입사원들은 비슷하고 틀에 박힌 자기소개를 이어갔다.


 “여기는 유대철 대리예요.”


 곤 부장의 소개에 윤 대리는 목례를 하였다.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6명이 우리와 진짜 인연을 맺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5명은 우리와 인연이 아니었던 거죠. 그런데 말이야. 요즘 청년들. 시작도 안 해보고 뭘 안다고 판단을 해? 자기하고 안 맞는 것 같대. 젊어서는 뭐든 부딪쳐보고 겪어봐야 경험 자산으로 남는다 말이야. 최종면접까지 보고 합격했으면 우리와 인연이 맞아 닿은 거지. 다른 데 가봐야 뭐 별 것 있는 줄 알아? 내 장담한다. 별것 없다고. 사람 뽑는다고 들인 시간과 비용을 자기들이 물어줄 거야? 어떻게 보면 애초부터 글러먹은 사람은 빨리 걸러내서 좋은 것일 수도 있지.”


 곤 부장은 열을 올리기 시작했고 인오는 동료들의 표정을 살펴봤다. 모두 집중을 하지 못하고 멍하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이 중에는 끈기 없이 그만두는 사람은 없었으면 합니다. 그런 사람도 수두룩 빽빽해. 요즘 청년들은 고생을 모르고 살았잖아? 대부분 집에서도 좋은 대우받고 자랐고. 사회생활은 안 그래. 하기 싫어도 더럽고 치사해도 다 견뎌내야지. 그게 사회생활이야. 누구나 사표 쓰고 싶지. 나도 그래. 하지만 사회생활을 그렇게 할 수 있나? 힘들어서 중간에 그만 둬.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이 그 사람 몫을 해야지. 남한테 피해나 주고 말이야. 그런 근성으로 다른 곳에 가봐야 뭐가 달라지겠어? 제가 여러분한테 하고 싶은 말은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 명심하라고. 왜 다들 가만히 있어? 적자생존이라는 말 들어 봤나? 적는 자만이 생존한다. 필기를 하란 말이야.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금방 잊어버려. 손을 열심히 써야 해.”


 곤 부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신입사원은 수첩과 필기도구를 꺼냈다.


 “나는 오늘 8시 10분에 왔다 말이야. 업무 시작은 8시 30분부터인데… 밑에 직원들은 내가 출근하기 전에는 먼저 와야겠지? 상사보다 늦으면 보기에 안 좋잖아? 그게 도리이고.”


 신입 사원 모두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토요일 격주 근무 때문에 일하기 싫다는 말도 많이 나오는데. 참나. 예전에는 일요일을 격주로 쉬었는데 말이지. 주5일제로 근무하고 싶으면 공부해서 공무원을 하면 되잖아. 사기업에서 뭘 그렇게 바라는 거야?”


 그 사이에 윤 대리는 천 공장장의 무전기 호출을 받았다.


 - 신입사원들 바쁘냐?


 - 교육 받고 있습니다.


 - 무슨 교육을 받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게 빠르지. 얼른 신입들 내려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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