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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Oct 16. 2024

소설 덕수궁 돌담길, 그 계절에16

2008년 첫사랑 짝사랑 멜로 연애

다원은 책상 앞에서 시험 시간표를 보고 있었다.

“첫째 날. 영어랑 과학이네. 공부하기 전에 책상정리부터 하자.”


 책상을 닦으며 다원은 책을 가지런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문제집을 펼쳐 놓은 상태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거실에서 청소를 하며 이은미의 ‘애인있어요’를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가 절정 부분에 도달하자 커지기 시작했다. 다원은 놀라서 그제야 잠에서 깼다.


 “뭐야?”


 다원은 비몽사몽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다가 정신을 차렸다.


 “하나도 안 풀었네. 청소를 열심히 했더니 졸렸나?”


 문제집을 들여다보던 다원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갑자기 문제집을 덮더니 여러 권의 책을 챙겼다.


 다원은 도서관의 독서실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문제집을 펼쳐 집중을 시작했지만 이내 떡볶이집에서 봤던 은석과 서경의 사진이 떠올랐다. 괴로운 표정을 짓던 다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향했다.


 “집에서는 졸고 있고. 여기서는 난데없이 그 생각이 나고. 언제 공부하냐…”


 세수를 끝낸 다원이 거울을 들여다보고 푸념을 했다.


 다원은 건물에서 나왔다. 그리고 맞은편에서는 명준이 도서관으로 들어오다 다원을 발견했다.


 “언제 온 거야?”


 명준이 다원에게 물었다.


 “한 30분 전에?”


 “겨우 30분 공부하고 나오는 거네?”


 “겨우라니? 그냥 산책 좀 하려고.”


 다원과 명준은 한참을 걷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이 많아 집중을 못할 정도인데?”


  다원은 고개만 가로저었다.


 “고민 있으면 얘기해봐.”


 “고민은 무슨.”


 “은석이 말고 뭐 있어?”


 두 사람은 벤치를 찾아 앉았다.


 “그 둘이 친할 수도 있지. 그런데 그 두 사람이 예전에 어떤 사이였는지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까 좀 불편해.”


 “확실한 거야?”


 “지갑에서 사진을 봤다니까. 못 잊어서 그걸 간직한 걸 봐.”


 명준은 갑자기 지갑을 꺼내 뒤졌다.


 “왜? 너도 그런 사진 있어?”


 “난 내 지갑에 뭐가 들었는지 잘 모르거든. 은석이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친구라고 편드는 거야?”


 “아니, 편을 드는 게 아니고. 자기 지갑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는 사람 많을 걸.”


 “그게 말이 돼? 자기 지갑인데 정리를 안 한다고?”


 “그럼 직접 물어봐.”


 “뭘 그런 걸 물어보기까지 하냐. 은석이한테 너 서경이랑 사귀었어라고 물어볼까? 내가 물었는데 은석이가 응이라고 대답하면? 그럼 난 거기에다 대고 뭐라고 대답해?”


 명준은 순간 할 말이 없었다.


 “몰랐으면 더 좋았겠지? 과거야 다 지난 일이고 그게 문제는 아닌데… 아, 신경 쓰이니까 싫어.”


 두 사람은 도서관 근처에 있는 편의점을 찾았다. 다원과 명준은 컵라면에 물을 받고 익어가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에 다원은 초코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명준은 다원이 이미 다 해치운 삼각김밥의 껍질을 보다가 그런 다원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어떻게 계속 들어가?”


 “그러게. 스트레스 받았더니 더 잘 넘어가네.”


 “이렇게 잘 먹는데 왜 조그마한 거야?”


 다원은 순간 명준을 살짝 노려봤다.


 “라면 다 익었겠다. 근데 너 다 먹을 수 있겠어?”


 명준이 눈치를 보며 말을 돌렸다.


 “걱정 마.”


 다원은 컵라면 뚜껑을 열며 흡입하기 시작하였다.


 “진짜 잘 먹는다.”


 “안 먹어? 안 먹으면 뺏어 먹어야지.”


 그 말에 명준은 라면을 허겁지겁 먹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명준은 컵라면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뭐야? 설마 다 먹은 거야?”


 “응. 배불러?”


 “겨우 이거 먹고?”


 “내가 입이 짧아.”


 “입은 짧은데 왜 그렇게 커?”


 “음… 유전.”


 “좋겠다. 더 안 먹을 거면 내가 먹어도 돼?”


 명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다시 도서관 공원에 갔다. 명준은 손에 수첩 크기의 영어 단어장을 들고 있었다.


 “많이 외웠어?”


 “아까 전에 많이 먹어서 그런가? 식곤증 때문에 잠만 잤어.”


 명준은 졸리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원은 명준의 손에 들린 단어장을 가져와 펼쳐봤다. 그때 단어장 사이에서 쪽지 하나가 떨어졌다. ‘나만 알고 싶다 나만 보고 싶다 아무도 모르게 감추고 싶다’ 등의 문장이 적혀 있었고 다원이 글을 읽었다.


 “뭘 알고 싶고 뭘 보고 싶은 거야?”


 그 말에 명준은 정신이 확 들었고 다원의 손에 들린 쪽지를 황급히 회수하려고 했다.


 “왜 뭔데? 네가 쓴 것 맞아? 누군지 궁금하네.”


 다원은 이 상황이 재미있었다.


 “어… 그게… 시험 정답.”


 “시험 정답?”


 “시험 정답을 알고 싶다고. 시험 정답을 보고 싶고.”


 “아닌데. 노래 가사로 만들면 어울리겠다. 나만 알고 싶다 나만 보고 싶다 아무도 모르게. 그 다음은 뭐였지?”***


 “노래 가사로는 전혀 안 어울리는데.”


 명준은 쓸데없이 진지해졌다.


 “아니. 노래 가사로 딱인데. 한 8년 쯤 뒤에? 노래로 나올지도 모르지.”


 


 


 


 


 


 


 


 


 


 


 


 


 


*** 소란 – 나만 알고 싶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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