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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Oct 14. 2024

소설 덕수궁 돌담길, 그 계절에14

2008년 첫사랑 짝사랑 멜로 연애

회화과 1반 교실.

“이번 과제는 인물화인데 남학생은 여성의 얼굴, 여학생은 남성의 얼굴 그리기이고 제출은 다음 주 금요일까지.”


 선생님이 과제를 던져주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넌 여자 친구 그릴 거야?”


 서경이 짝꿍 은석에게 말했다.


 은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서경은 의아했다.


 “따로 그리고는 있는데 다음 주 금요일까지 완성 못해.”


 “넌 누구 그릴 거야?”


 이번에 서경은 대각선 뒷자리의 명준에게 물었다.


 “글쎄. 너 그릴까?”


 “나?”


 “나도 너 그릴래.”


 은석도 불쑥 끼었다.


 “이것들이. 내 얼굴이 만만해?”


 서경은 어이가 없었다.


 “넌 좀 그리기에 수월한 얼굴이야.”


 은석이 말했다.


 “그건 맞아.”


 명준도 거들었다.


 “듣고 보니 기분이 좀…”


 “칭찬이야.”


 “모델로서는 정말 최고지.”


 은석과 명준이 번갈아가며 말했고 서경이 고심에 잠겼다.


 “난 하명준.”


 “왜 나야?”


 “그리기 수월한 얼굴이잖아.”


 “내가? 아닐 텐데. 어떻게 감당하려고.”


 “뭐야.”


 


 다원과 명준이 복도에서 마주쳤다.


 “ 은석이 기다리는 거야?”


 “그런데 뭐 딱히 할 일도 없고. 사생대회는 언제쯤 끝나려나?”


 “5시쯤 되어야 할 건데.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


 두 사람은 화실을 찾았다.


 명준은 이젤 앞에 맞은편에는 다원이 부자연스러운 표정과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냥 내 사진보고 그리면 안 돼?”


 “이왕이면 실물을 보고 그려야 더 정확하지.”


 명준이 스케치북에 다원의 윤곽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과제 점수 잘 받으면 내 덕인 줄 알아.”


 명준은 웃기만 하고 대답은 없었다.


 “듣고 있어?”


 명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다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원의 양쪽 어깨에 손을 대며 균형을 잡았다. 이어 다원의 얼굴을 만지며 이리저리 각도를 쟀다. 다원은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오늘 안으로 마무리 못 할 것 같은데 사진 하나 찍어도 돼?”


 다원은 명준의 제안을 듣고 생각에 잠기다가 고개만 끄덕였다.


 “하나, 둘, 셋!”


 명준은 전화기에서 사진기 기능을 찾아 찍었다. 하지만 이내 사진을 보며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편, 다원은 문자수신음이 오지만 듣지 못했다.


 “웃어 봐. 이왕이면 웃는 모습이 낫겠다.”


 난감한 표정을 짓던 다원이 어색하게 웃었다.


 “조금만 자연스럽게.”


 다원은 이내 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좋았어.”


 명준이 다원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이어 다원은 명준의 곁으로 갔다.


 “한번 보자.”


 명준이 다원의 사진을 보여줬다.


 “이상하잖아.”


 “잘 나왔는데.”


 “아니야, 다시 찍어. 이건 지우고.”


 “지우기는 왜 지워?”


 “좋은 말로 할 때 지워.”


 “지우면 뭐 해줄 거야?”


 “내가 왜?”


 “그럼 안 지워.”


 “그런 게 어디 있어?”


 


 대회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온 은석이 다원을 찾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는 회화과 교실 복도를 거쳐 화실을 향했다.


 다원은 명준의 전화기를 뺏으려고 애를 썼다. 명준은 전화기를 빼앗기지 않으려 혼신을 다했다. 둘의 모습을 멀리서 보면 마치 연인의 장난처럼 보였다. 누군가 떠드는 소리에 은석의 발길은 화실 복도에까지 닿았다.


 “이렇게까지 치사할 줄이야.”


 다원의 목소리였다.


 “그림만 그리고 사진 지울 거야. 뭘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


 이어 명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너 내 사진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할거잖아.”


 “하나도 안 이상해. 그리는 사람 마음에 들면 되는 거지.”


 “넌 고집불통이야. 얄미워. 내가 졌다.”


 은석은 화실에서 들리는 소리를 다 듣고 있었고 황당하다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지었다. 그는 떨리는 손을 문 손잡이에 올렸다.


 “은석이 오겠다.”


  다원의 말에 정신을 차린 은석은 손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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