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덕수궁 돌담길, 그 계절에12
2008년 첫사랑 짝사랑 멜로 연애
다원은 여느 날처럼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명준은 뒤늦게 나타났다. 명준이 오자 다원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명준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다원에게 다가갔다.
“아침부터 기분 좋아 보이네?”
명준이 무심하게 말을 꺼냈다.
다원은 명준의 질문에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왜? 무슨 일 있어?”
“그게… 나 어제부터 은석이랑 사귀기로 했어.”
명준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얼굴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 은석이 다원의 볼에 입을 맞추고 있던 모습을 떠올렸다.
“잘 됐네.”
명준은 정신을 차리고 태연한 척을 했다.
“너한테 제일 처음 말하는 거네. 어쩌다보니.”
다원은 그렇게 말해놓고 수줍어했다.
이내 버스가 왔고 두 사람은 버스에 몸을 싣기 시작했다. 다원이 먼저 올라탔고 명준은 어깨가 축 처져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다원과 명준은 교문을 향해 걸었다.
“난 먼저 들어갈게.”
“왜? 어디 가야 돼?”
“넌 은석이랑 같이 와.”
명준은 그렇게 말하고 쌩하니 먼저 가버렸다. 다원은 그런 명준의 뒷모습을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명준이 교실 뒷문으로 들어서자 서경이 은석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명준.”
서경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왜?”
명준은 시무룩하게 대답하며 자기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 있어?”
서경이 명준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아니. 좀 피곤해서…”
“강은석한테 좋은 소식 있다!”
은석은 쑥스러워하며 서경에게 눈치를 줬다.
“왜? 어때서. 강은석도 연애 한다.”
“알아.”
은석과 서경이 동시에 명준을 봤다.
“들었어?”
은석이 물었다.
“어떻게? 누구한테 들어?”
서경은 의아했다.
“다원이랑 같은 동네에 살거든.”
은석이 말했다.
“그랬구나.”
“난 두 사람 그렇게 될 줄 알았어.”
“뭐야? 하명준, 넌 그전부터 알고 있었어? 나만 몰랐네. 배신자.”
하굣길에 다원이 회화과 복도 앞을 찾아 갔다. 뒷문에서 명준이 나왔다.
“집에 갈 거지? 같이 가자.”
“은석이는?”
“이제 실기 대회 준비하잖아.”
“난 집에 바로 안 갈 건데.”
“어디에 가려고?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다원과 명준은 화방을 찾았다. 명준이 붓, 물감 등의 재료를 고르면 다원은 그 옆을 졸졸 따라다녔다.
“노란색은 많이 필요하지?”
“아무래도 빨리 없어지지. 많이 쓰기도 하니까. 계산대로 가자.”
계산대로 향하던 두 사람은 앞서 계산을 하고 있던 은석과 마주쳤다.
“어떻게 같이 있어?”
은석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난 그냥 따라왔어.”
그렇게 말하며 다원은 은석의 곁으로 갔다. 그 모습을 본 명준은 계산대에 물건을 올려놓기만 했다.
“여자 친구는 언제 불렀냐?”
그 소리에 다원과 명준은 고개를 돌렸다. 은석과 같이 온 서경이 마찬가지로 재료를 다 고르고 계산대로 왔다.
“하명준도 만나네.”
서경이 뒤늦게 명준을 발견하고 말했다. 다원은 서경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쟤도 우리 사귀는 것 알아?”
다원이 은석의 귀에 속삭였다.
“알지.”
은석은 다원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손을 잡았다.
“강은석. 여친한테 엄청 다정하네. 저런 모습이 있었어?”
다원에게 서경의 말은 불편하게 들렸다.
“계산이나 하고 와.”
은석이 서경에게 말했다.
“둘은 같이 온 거야?”
“응. 서경이도 같이 대회에 나가거든.”
“그렇구나.”
“여기서 뽀뽀할까?”
은석이 다원의 귀에 대고 말했다. 그러자 다원은 웃으며 은석의 팔을 한 대 때렸다. 명준은 그런 둘의 모습을 애써 외면했다.
명준과 서경이 따로 가게에서 나와 다원과 은석을 기다렸다.
“넌 왜 쟤랑 같이 온 거야?”
서경이 명준에게 물었다.
“집에 같이 가니까.”
“학교에 올 때도 매일 같이 오겠네?”
“응.”
“우리 반에 연애 안하는 사람은 이제 너랑 나밖에 없지 싶다.”
다원과 은석이 밖으로 나왔다.
“내가 끝나면 전화할게.”
“알았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원은 아쉬움이 가득한 눈치였다.
“빨리 학교에 가자.”
서경이 다그치듯이 은석에게 말했다.
다원과 명준, 은석과 서경은 그렇게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다원과 명준은 동네를 걸으며 각자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빨라서 놀라긴 했어.”
“아침에 말을 해야 하긴 하는데 쉽게 입이 떨어지지는 않더라. 그래도 넌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다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한 거야.”
“너는 좋아하는 애한테 고백 안 해? 아니면 기다리는 거야?”
“지금은 안 좋아해.”
“왜? 마음이 바뀐 거야?”
“그 사람은 연애하고 있어.”
“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연애를 하고 있거든. 그런데도 마음을 못 접겠어.”
명준은 발걸음을 멈추었고 다원의 발길도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리고 명준은 다원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마음 접을 생각이 없어.”
“네가 많이 좋아했나봐?”
다원은 얼떨떨했다.
“응.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어떡하면 좋을까? 계속 봐야 할 텐데… 내 마음은 접을 생각이 없으니까.”
“좀 힘들겠네.”
다원은 난처하지만 애써 침착하려고 했다.
“내가 괜한 얘기했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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