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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Oct 11. 2024

소설 덕수궁 돌담길, 그 계절에 11

2008년 첫사랑 짝사랑 멜로 연애

다원은 침대에 누워 은석이 자신을 뒤에서 안은 모습을 계속 떠올렸다. 뒤척이다가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얼굴을 감싸며 어쩔 줄을 몰라 가만히 있지 못하기도 했다. 이내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아 은석의 미니홈피에 접속했다. 은석의 미니홈피에서 가수 박기영의 노래 ‘시작’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왔다.

“배경음악 없었는데?”


 은석의 미니홈피에서 나오는 배경음악 목록을 보면 ‘시작’이 전부였다.


 “아무래도 네가 진짜 좋아진 게 아닐까~ 그냥 부르면 이렇게 멀쩡히 잘 부르는데.”


 그때 문자 수신음이 들렸다.


 [잘 들어갔어? 오늘 사진도 홈피에 올렸거든. 참, 네가 그린 그림은 내가 가지고 있을까?]


 “아! 그림. 채색도 덜 했는데.”


 다원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    


 다음날 은석이 다원에게 스케치북을 건넸다.


 “채색은 시간 날 때 마무리 해.”


 “그래야지. 내 그림만 찢어서 가져갈게.”


 “아니. 그냥 스케치북 가져.”


 “그럼 넌?”


 “또 사서 그리면 되지. 뭐가 문제야? 거기에 다른 그림도 그려봐. 그리고 싶은 것은 다 그려.”


 “알았어.”


 “청계천 야경본 적 있어?”


 “밤에는 안 가봤는데.”


 “가볼래?”


 “응.”


 교실에서 복도로 나오던 명준이 둘의 모습을 목격했다.


 


 다원과 명준이 오랜만에 도서관을 찾았다.


 “너랑 약속 잡기 힘드네.”


 “아침마다 보잖아.”


 “몇 분이나 본다고. 같은 동네에 사는 사이라고 소홀히 하는 거지?”


 명준은 시무룩해졌고 다원은 황당해서 웃었다.


 “왜 웃어?”


 “넌 좀 유치한 구석이 있네. 은근 귀여워. 넌 연애 해봤어?”


 “아니. 해보고 싶네.”


 “그러면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


 “응. 있어. 있는데…”


 “누구? 우리 학교에?”


 명준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넌 연애 해본 적 있어?”


 “아니.”


 “좋아하는 사람은 있고?”


 다원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얼굴을 보였다.


 “혹시 은석이?”


 다원은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진짜?”


 “뭐…”


 다원은 쑥스러워서 시선을 돌렸다.


 “은석이도 똑같은 마음이야?”


 “좀… 가까워지고 있는 중?”


 그 말을 듣고 명준은 생각이 많아졌다.


 “참, 둘은 어떻게 처음 만난 거야?”


 “그게…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하지? 덕수궁에서 처음 봤거든.”


 


 다원은 방에서 스케치북을 펼쳐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살펴봤다. 이어서 다음 장을 넘기니 은석이 그린 딸기 그림이 있었다. 다원은 가만히 그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갑자기 일어나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다원은 자신의 주근깨에 손을 올려보며 찬찬히 살펴봤다.


 


 회화과 1반 교실 앞쪽에서 학생들이 모여서 수군대고 있었다. 은석은 교실 뒷문으로 들어와 자기 자리로 향하다가 그런 학생들을 봤다.


 “쟤네들, 왜 저래?”


 은석은 뒷자리의 명준에게 물었다.


 “아, 김도현한테 여자 친구 생겨서.”


 “그래?”


 “넌 뭐 없어?”


 명준이 은근슬쩍 떠보며 질문을 했다.


 “나? 글쎄.”


 “뭐야? 부정은 안하네.”


 “아직은 뭐…”


 “혹시…”


 그때 서경이 공문을 들고 둘에게 다가왔다.


 “다음 달에 남산일보 사생대회 있는데 나갈 거야?”


 은석은 공문에 관심을 보였고 명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서경은 의아한 표정으로 명준에게 물었다.


 “난 2학기부터. 1학기에는 열심히 놀 생각이라.”


 “뭘 믿고?”


 “초등학교 때부터 좀 지긋지긋하잖아.”


 “난 경험 삼아서 한번 나가봐야겠다.”


 은석이 말했다.


 “이름 적어. 쟤들은 아직도 저러고 있냐?”


 서경은 교실 앞쪽의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그게 낙이잖아.”


 그렇게 말하며 명준은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다원과 명준은 청계천 수표교를 방문했다.


 “여기도 수표교? 많이 다른데.”


 다원은 실망을 한 표정이었다.


 “엄청 많이 다르지?”


 “어떻게 안 되나?”


 “쉽지는 않겠지?”


 두 사람은 다리에서 나란히 물줄기를 바라봤다.


 “야경 진짜 예쁘다.”


 “오길 잘 했지?”


 다원은 은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은석도 다원을 보는데 야경의 분위기 때문에 뭔가 달리 느껴졌다. 다원은 그런 은석의 시선을 회피했고 순간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나 미니홈피에 배경 음악 깔았는데.”


 “알고 있어.”


 “그 노래 좋더라.”


 “응, 그 노래 좋지?”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고 은석이 살며시 웃었다.


 “왜?”


 “그 노래… 고백하는 내용이잖아.”


 “아니… 그냥 내가 좋아하는 노래야. 노래 자체가 워낙 좋으니까.”


 “그래? 그럼 나한테 별 다른 이유 없이 부른 거야? 좋아하지도 않는데?”


 “어? 그럴 리가… 아니?”


 다원은 자기가 말해놓고도 무슨 말인가 싶었다.


 “좋아하는 사람 없어?”


 “좋아하는 사람?”


 다원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은석이 다원을 자기 쪽으로 바라보게 했다. 다원은 긴장을 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내가 사귀자고 하면 사귈 거야?”


 “사귄다고? 우리가?”


 다원은 뭔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응. 우리가.”


 바람이 살짝 불어 다원의 앞머리가 얼굴을 가렸다. 그 모습을 본 은석은 다원의 앞머리를 쓸었다. 어쩔 줄 몰라 당황스러운 다원은 괜히 앞머리를 귀 뒤쪽으로 넘겼다. 동시에 은석은 다원의 팔을 잡았다. 은석은 다원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고 두 사람은 입술을 맞추었다.


 


 은석은 다원을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잘 들어가.”


 “잠깐만.”


 한편, 편의점에서 나온 명준이 다원의 집 쪽으로 걸어오다 둘을 발견했다. 다원이 은석을 안는 모습이 보였다. 명준은 전봇대 뒤로 몸을 숨기고 다시 둘의 모습을 봤다. 은석이 다원의 볼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허탈감과 좌절감에 휩싸인 명준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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