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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Oct 09. 2024

소설 덕수궁 돌담길, 그 계절에9

2008년 첫사랑 짝사랑 멜로 연애

하굣길의 다원과 명준은 효창동 골목을 걷고 있었다.

“효창공원에서 할 게 있는가?”


 “그냥 걸어 다니면서 구경했어.”


 “진짜?”


 “응. 왜? 뭘 해야 하는데?”


 “아니… 걸어만 다니면 심심하잖아.”


 “얘기도 하고.”


 “아… 맞아. 걸으면서 얘기나 나누고 그러는 거지.”


 명준은 뭔가 더 물어보고 싶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어느새 다원의 집 앞에 다다랐다.


 “다 왔네. 우리집 도착.”


 “먼저 들어가.”


 “아니야. 네가 먼저 가.”


 “참, 토요일날 도서관에 갈래?”


 “그날 안 되는데….”


 “아… 약속 있어?”


 “장충동에…”


 “장충동이면 은석이?”


 다원은 고개만 끄덕였고 명준은 살짝 안색이 어두워졌다.


 “장충동이면 족발이 유명한 동네 아닌가?”


 “맞아. 너 족발 좋아해?”


 다원이 묻자 명준은 질색을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짜?”


 다원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생긴 건 완전 잘 먹게 생겼지?”


 명준의 대답에 다원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그 반응은?”


 명준은 덩달아 웃음이 터졌다.


 “혹시 닭발은?”


 다원의 물음에 명준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종류는 다 못 먹어?”


 “허파 이런 것도 싫고. 위장, 막창, 곱창…”


 “뭐… 그럴 수도 있지.”


 “넌 가리는 것 없어?”


 “난 웬만하면 다 잘 먹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조그마한 거야?”


 다원은 귀엽게 명준을 노려봤다.


 “넌 가리는 게 많은데 왜 그렇게 큰 거야?”


 명준은 더이상 반박하기 힘들었다.


 “얼른 들어가.”


 “뭐야? 꺼지라는 거지?”


 “에이! 내가 그럴 리가.”


 “흥~ 알았어.”


 “잠깐만! 삐친 거야?”


 “날 뭘로 보고. 너야 말로…”


 다원은 의심의 눈초리로 명준을 봤다.


 “왜 이래? 내가 그렇게 보여? 키만 크고 소심할까봐?”


 “아니면 됐고. 먼저 가.”


 “아니야. 네가 먼저 들어가.”


 “그럼 가위 바위 보로 결정하자.”


 “그래. 좋아.”


 두 사람은 주먹을 쥔 손을 내밀고 ‘가위, 바위, 보!’를 외쳤다.


 다원은 보자기, 명준은 가위를 냈다.


 “내가 이겼네. 먼저 들어가.”


 “원래 그러려고 했는데.”        


 명준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다원은 집으로 들어갔다. 다원이 사라지고 나자 명준도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명준은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다.


 


 어느 저녁, 다원은 엄마와 함께 주말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의 8화를 몰입하며 시청하고 있었다. 송재빈이 홍선희를 감싸 안고 장동화가 겉옷을 가져와 홍선희의 머리를 덮어주는 장면에서 드라마는 끝이 났다. 그리고 다원과 엄마는 어쩔 줄을 모르며 감탄을 내지르고 몸부림을 쳤다.


 “엄청 멋있다.”


 “저런 남자 어디에 없나?”


 “우리 아빠는 확실히 아니다.”


 “너희 아빠는 명함도 못 내밀지.”


 


 다원과 은석은 장충단 공원을 찾았다.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앉은 다원은 스케치북에 공원 일대를 그림으로 그리고 있었다. 은석은 사진기를 들고 수표교, 장충단비, 이준 열사 동상, 한국 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등을 둘러보며 찍었다. 시간이 지나 다원은 붓을 들고 채색을 시작했고 얼마 후에 은석이 곁으로 다가왔다.


 


 “벌써 다 그렸어.”


 “응. 그런데 노래는 언제 불러줄 거야?”


 “그게 무슨 소리지? 어제 전화기에 문제가 있어서 난 못 들었는데.”


 “치사하다.”


 “우와~ 잘 그렸네.”


 “얄미워. 말 돌리기는.”


 은석은 다원의 그림만 쳐다봤다. 다원도 은석이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하며 채색을 이어갔다.


 “그림 그리는 게 왜 좋아?”


 그 말을 듣고 다원은 생각에 잠겼다.


 “왜 좋을까? 그냥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느긋해지고 여유로워지는 그 기분이 좋아. 마음에 안정도 느껴지고. 그럼 넌 왜 사진 찍어?”


 “나? 사진을 왜 찍느냐 하면… 시간이 흘러가니까.”


 “흘러가는 시간 때문에?”


 “응. 흘러가기만 하는 찰나의 시간을 내가 붙잡는다는 그런 느낌. 뭐 그거 말고 나도 너처럼 사진 찍을 때 거기에만 집중하면서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도 있어.”


 “사진으로 간직하면 두고두고 볼 수도 있잖아.”


 “사진으로 남기면 뭔가 특별하다는 의미가 들어. 한번씩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 때 사진 보면서 어떤 기억을 떠올리면 기분 전환도 할 수 있고.”


 “난 시시한 기분이 들 때 그림 그리는데. 그림 그리면서 뭔가 새로운 기운이 솟아나거든.”


 “사진 찍는 거나 그림 그리는 거나 비슷하네.”


 “그럼 넌 사진 찍을 때 항상 마음에 들어?”


 “아닐 때가 더 많지.”


 “미니홈피에 보면 다 잘 찍은 사진밖에 없잖아?”


 “마음에 들 때까지 찍어야지. 마음에 들 때까지 그리는 것처럼. 그리고 특별한 것보다 매번 마주치는 대상을 사진으로 찍어서 연습해. 바로 내 눈앞에 보이는 걸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그러면 뭔가 새롭게 보여. 그럼 잘 찍게 되더라고. 무심하게 보던 것도 세심하게 보인다니까.”  


 “네 말 듣고 나니까 내가 그린 그림이 더 별로라는 생각이 드네.”


 은석은 다원의 얼굴을 샅샅이 살피고 있다.


 “왜? 뭐 묻었어?”


 “나 너 처음 봤을 때 그거 생각났다.”


 “뭐?”


 “딸기.”


 다원은 은석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이 갔다.


 “난 그 말이 제일 싫어. 나 놀리는 거지?”


 “아니야. 인간 딸기 같았다니까.”


 “난 졸업만 하면 주근깨부터 없앨 거야.”


 “왜? 그게 네 매력이잖아.”


 “매력이라고?”


 자신의 단점이자 약점을 두고 은석이 그렇게 말하자 다원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주근깨가 사라지면 네가 아닌 거잖아.”


 “넌 좋은 피부라 이런 고통을 몰라서 그런 소리나 하는 거지.”


 “그건 너만의 특징이야.”


 “특징은 무슨. 난 싫어.”


 “얘기 하나 해줄까?”


 “뭔데?”


 “사람은 평생 자기 얼굴을 볼 수 없대.”


 그 말을 들은 다원은 은석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가 싶었다.


 “매일 보잖아. 자기 얼굴을 안 보는 사람이 어디 있어?”


 “거울에서 보는 얼굴은 좌우대칭이야. 잘 생각해봐. 실물의 네 얼굴을 볼 수 있는지.”


 은석의 말을 듣고 다원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아직도 모르겠어?”


 “불가능이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기 얼굴을 볼 수가 없잖아.”


 “넌 네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지? 주근깨도 본 적 없고. 그래서 그게 얼마나 매력적인지 넌 알 수가 없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다원은 은석을 살짝 노려봤다.


 “고단수네. 아주 고차원으로 놀리는 거지?”


 “넌 너를 잘 모른다는 그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야.”


 “자기가 무슨 소크라테스인 줄 아나봐.”


 그렇게 말하고 다원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배 안 고파?”


 그동안 심각한 얘기만 하던 은석의 말에 다원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좋아하는 음식은 뭐야?”


 “정말 뜬금없기는. 아니다. 소크라테스도 배는 고플 수 있지.”


 “배고플 때가 됐잖아.”


 다원은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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