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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Oct 07. 2024

소설 덕수궁 돌담길, 그 계절에7

2008년 첫사랑 짝사랑 멜로 연애

 

명준은 17년 인생의 최대 기로에 있었다.


 “내가 내일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알아. 있을 거야.”


 다원이 은석의 전화번호를 직접 물어보는 편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알려줄 수 있어?”


 명준은 전화번호부에 은석의 이름을 찾았지만 여전히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그냥 운명에 맡기기로 결심을 했다.


 


 다원은 책상 앞에 앉아 전화기를 붙들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안녕. 은석아, 나는 다원이야]


문자를 입력하던 다원은 뭔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더니 내용을 지웠다.


 “아니야. 전화를 걸자. 전화를 걸면 더 이상하지 않을까?”


 그때 명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 명준아.


 - 안 자고 있었어?


 - 응. 너는 왜 안자고 있었는데?


 - 나는 너 생각한다고.


 - 응?


 - 오후에 같이 도서관에 갔던 일 생각하고 있었어.


 - 그랬구나. 넌 원래 늦게 자?


 - 그건 아닌데. 너는 몇 시쯤에 자?


 - 나는 보통 11시 넘기 전에 자는데…


 - 이제 잘 시간이네. 참 은석이한테 전화 해봤어?


 명준은 복잡 미묘한 얼굴로 통화중이었다.


 - 문자를 할까, 전화를 할까 고민하다가 못 했어…


 그 말을 듣고 명준은 뭔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 혹시 미니홈피 있어?


 명준이 다원에게 물었다.


 - 응. 있지.


 - 아이디가 뭐야?


 명준은 자리를 옮겨 컴퓨터 앞에 앉아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접속을 했다.


 다원도 전화를 받으며 컴퓨터 앞으로 다가갔다.


 - 찾았다. 일촌 신청 해놓을게.


 - 나는 지금 들어가고 있어.


 로그인을 하고 미니홈피에 들어간 다원이 명준의 일촌 신청을 수락했다. 명준의 미니홈피에서 배경음악으로 에픽하이의 ‘love love love’가 흘러나왔다.


 


 다원은 한동안 음악에 심취해버렸다. 미니홈피 대문에는 교복을 입은 명준의 얼굴이 있고 ‘TODAY IS’의 상태는 ‘설렘’이었다. 그 밑에는 ‘아무도 내 맘을 모르죠/ 사실은 당신만 모르죠’라는 글귀가 보였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다원은 명준의 미니홈피를 둘러보다 일촌 파도타기 기능을 통해 은석의 미니홈피에 방문을 했다.


 은석의 미니홈피는 이제 만들었는지 휑한 분위기였다. 다이어리, 게시판, 사진첩, 방명록 등을 눌러보다가 다원은 방명록에서 글을 하나 발견했다. 며칠 전, 서경이 남긴 글의 흔적으로 ‘내가 처음으로 글 남겨. 잘했지?’라는 내용과 그림도 섞여 있었다. 다원은 방명록의 글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오늘 따라 사람이 왜 이렇게 많지?”


 “그러게 말이야. 오늘이 무슨 날인가?”


 다원과 명준이 버스에서 내리며 말했다.


 명준은 갑자기 다원의 머리 위에 손을 대고 자신의 목덜미쯤에 온다고 손짓을 했다.


 “너 진짜 조그맣다.”


 “뭐라고?”


 이번에는 다원이 자신의 머리 위에 손을 펴서 올리고 키를 재는데 명준의 얼굴 가운데 코 부근을 가리켰다.


 “아니잖아. 여기까지 닿거든.”


 “아니지. 수평이 아니잖아. 턱 근처에 오네.”


 “아닌데. 나 그렇게 안 작거든. 네가 지나치게 큰 거야.”


 그렇게 말하던 다원의 눈에 명준의 다부진 어깨가 새삼스레 눈에 들어왔다. 다원은 그동안 오밀조밀하고 귀여운 명준의 얼굴에 가려져 그 사실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학교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상처받았어. 난 엄청 크다는 소리 싫어하거든.”


 “왜? 좋은 거 아니야? 작은 것보다는 낫잖아.”


 “매번 뒷자리에 앉으니까 여자애랑 짝꿍을 한 적이 없어.”


 “진짜?”


 “응.”


 “좀 슬프네.”


 “난 내가 크니까 작은 여자가 좋아.”


명준은 그렇게 말해놓고 쑥스러움을 느꼈다.


 “우리 서둘러야겠다. 늦겠어.”


 민망해진 명준이 다급하게 말했다.


 “몇 시야? 벌써 그렇게 됐어?”


 다원도 덩달아 긴박해져서 먼저 뛰기 시작했고 명준도 뒤따랐다.


 ‘난 내가 크니까 작은 여자가 좋아. 너처럼.’


 두 사람은 교문으로 급하게 뛰어 들어와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다가 서로를 쳐다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다원과 은석이 복도에서 만났다.


 “혹시 오늘 오후에 시간 돼?”


 “별다른 일정은 없는데.”


 “그러면 효창동 구경시켜 줄 수 있어?”


 “응. 얼마든지.”


 “6교시 끝나고 교문 앞에서 만나자.”


 “알겠어.”


 


 모범생인 명준은 수업시간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원의 머리 위에 손을 대고 자신의 목덜미쯤에 온다고 손짓을 하던 모습을 계속 떠올렸다. 그리고 다원이 자신의 머리 위에 손을 펴서 올리고 키를 재던 모습도 생각났다. 명준의 얼굴에서는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다원과 명준은 회화과 전용 화실에 있었다.


 “이따가 은석이가 우리 동네에 가고 싶다고 했어.”


 “오늘?”


 “응.”


 “나는 오늘 약속 있는데.”


 “무슨 약속?”


 “그냥… 갈 데가 생겼어.”


 명준은 그렇게 말을 하며 다원의 시선을 회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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