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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Oct 06. 2024

소설 덕수궁 돌담길, 그 계절에6

2008년 첫사랑 짝사랑 멜로 연애

 다원은 조금 전 복도에서 만난 서경을 떠올렸다.

‘딱 봐도 인기 많게 생겼어. 남자 애들이라면 다 좋아 할 거야.’


 다원은 교과서 구석에 사진기를 들고 있는 은석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뭐랄까… 깊숙하고 아늑한 느낌.’


 다원은 은석의 눈을 그리다가 갑자기 그림 그리기를 멈췄다.


 ‘짝꿍이라고 그랬어. 엄청 친해 보이기도 하던데.’


 또 다시 서경이 생각나자 다원은 시무룩해졌다.


 


 은석도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조금 전 복도에서 명준이 다원과 우연히 만났다고 했던 말에 신경이 쓰였다.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끝낸 뒤에 교실로 돌아온 은석은 명준의 자리를 봤다. 이어 교실을 살폈지만 명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은석은 뭔가 직감을 하고 교실을 나섰다. 복도에서 디자인과 1반 교실 안을 두리번거렸지만 다원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다원과 명준은 오전에 이어 회화과 전용 화실에 있었다. 명준은 엄지, 검지 두 손가락으로 네모를 만들어 그림을 찬찬히 둘러보는 다원의 모습을 구도에 담았다. 그 시선을 느끼고 다원은 명준을 쳐다봤다.


 “구도 연습. 그림을 그릴 때 구도가 중요하잖아. 그리고 이렇게 하면 다 의미가 있어 보여.”


 “의미가 있어 보인다고?”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야.”


 “아! 그 영화. 제목은 들어봤어.”


 “안 봤으면 언제 한번 같이 보자.”


 그 말을 듣던 다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엄지, 검지 양손가락을 이용해 네모난 구도를 만들어 봤다.


 “나도 이거 연습해봐야겠다.”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다원이 말했다.


 “왜?”


 “난 사진 배워보고 싶거든.”


 “사진?”


 “그냥 취미 삼아서 해보고 싶어.”


 “배우면 나한테도 가르쳐줘.”


 “생각해볼게.”


 “약속.”


 명준은 다원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순간 다원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몰라서 멀뚱히 있기만 했다.


 “얼른”


 명준은 다원의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다원은 명준의 재촉에 못 이겨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도장도 찍어야지.”


 “뭐야. 유치하게.”


 다원은 어이가 없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건 상태에서 각자의 엄지손가락을 맞닿았다.


 “찍었다. 약속 지켜야 해.”


 다원은 헛웃음을 지었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손가락 걸고 약속하는 것 정말 오랜만이다.”


 “그러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좋지?”


 “옛날 생각?”


 “어릴 때 이러고 놀았을 것 아니야?”


 “그러고 많이 놀았지. 이제 교실로 돌아가야겠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명준의 얼굴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교문에서 나온 다원, 은석, 명준이 갈림길에 서 있었다.


 “참, 난 서경이랑 약속 있어.”


 “서경이?”


 “아까 전 복도에서 만났는데… 내 옆에 있었던.”


 “아.”


 “학원 알아보려고?”


 명준이 은석에게 물었다.


 “응. 서경이가 같이 가주겠대.”


  다원은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난 먼저 가볼 테니까 너희도 잘 들어가.”


 은석은 둘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자기 갈 길을 갔다. 다원과 명준은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너도 버스 타고 집에 가?”


 다원이 명준에게 물었다.


 “응.”


 “어느 동네에 살아?”


 “효창동.”


 “뭐? 진짜야?”


 다원은 걸음을 멈추고 반색을 하였다.


 “우리 같은 동네에 사는 거잖아.”


 그 말에 명준은 다른 곳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같은 동네에 살면 버스도 같은 것 타겠다.”


 “그렇지.”


 “우리 이제 등교도 같이 하면 되겠네?”


 “하교도 같이 하고.”


 “우리 동네에서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애를 만나다니.”


 어느덧 두 사람은 효창동 골목에 다다랐다.


 “아, 은석이랑은 앞뒤로 앉는다고?”


 “응. 그렇게 앉다보니 친해졌지. 너희 집은 어디야?”


 “거의 다 왔어. 저기.”


 “진짜 코앞이네. 아쉽다.”


 명준은 들릴 듯 말 듯 얘기를 했다.


 “아~ 여기. 지나다니며 봤어.”


 “너는 더 올라가야 해?”


 “한 3분 걸으면 나와.”


 “그렇게 가까워?”


 “빨리 걸으면.”


 “왜 한번도 못 마주쳤지? 넌 이 동네에 언제부터 살기 시작했어?”


 “이번 겨울에 왔어. 고등학교 들어오기 전이지.”


 “그랬구나. 어쩐지. 너희 집은 내가 바래다줘?”


 “아니야. 혼자 갈게. 세탁소 알지?”


 “아, 거기 관상 봐주는 아저씨가 하는 세탁소 집?”


 “거기 바로 뒤에 빌라 1층이 우리 집이야.”


 “그렇구나.”


 “집에 들어가면 뭐할 거야?”


 “글쎄. 넌?”


 “숙제해야지.”


 “아! 수행평가 생각난다.”


 “같이 할래?”


 두 사람은 도서관을 찾아 숙제를 끝내고 나왔다.


 “넌 형제는 없는 거야?”


 “응, 외동. 너는?”


 “언니 있어.”


 명준은 집 앞에서 봤던 자매의 모습을 떠올렸다.  


 “언니 있으면 좋지?”


 “그럴 리가. 못 볼 꼴도 많이 보고.”


 명준은 자신의 전화기를 꺼냈다.


 “전화번호 물어봐도 돼?”


 “응. 줘봐.”


 명준이 전화기를 건네면 다원이 자신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기.”


 다원은 명준에게 전화기를 돌려주었다. 명준은 다원에게 전화를 걸고 다원이 전화기를 확인했다.


 “혹시 은석이 번호 알아?”


 다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순간 명준은 멈칫하며 당혹스러워졌다.


 “몰라?”


 명준은 여전히 고민에 휩싸이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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