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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Oct 05. 2024

소설 덕수궁 돌담길, 그 계절에5

2008년 첫사랑 짝사랑 멜로 연애

“일요일날 뛰쳐나가서 어디에 갔는데?”

다원은 엄마와 단 둘이 거실에 있었다.


 “어? 그날… 덕수궁에.”


 “덕수궁? 멀리도 갔다.”


 “학교 근처인데 처음 가봤어.”


 “원래 코앞에 두고 잘 못 가지.”


 “엄마는 덕수궁에 가본 적 있어?”


 “처녀 때 갔지.”


 “아빠랑?”


 갑자기 엄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맞아? 아빠랑 걸었어? 그런 거야?”


 “몰라. 누구랑 갔는지는.”


 “뭐야? 그럼 다른 남자랑? 아빠랑 처음 연애해봤다며.”


 “아! 몰라!”


 엄마는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아~ 궁금해. 아빠랑 갔어? 안 갔어? 다른 남자랑 걸었는데 헤어진 거야? 연인이 같이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고 하잖아.”


 “누가 그딴 말을 지어냈는지…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고.”


  그렇게 말하며 엄마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빠랑 걸었구나?”


 “그거 아는 게 뭐 중요하노?”


 “신기하다. 엄마랑 아빠는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는데도 결혼했잖아.”


 “신기할 것도 없다.”


 “그런 속설을 이겨낼 만큼 서로 사랑한 거잖아.”


 “쓸데없는 소리 집어 치워라.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말 그거 다 엉터리다.”


 “오~ 엄마, 아빠가 그런 사연의 주인공이라니.”


 “어휴! 끔찍하다.”


 


 다민의 방에서는 원더걸스의 ‘Tell me’ 노래가 흘러나왔다. 모꼬지 장기자랑에서 하필이면 소희 역할을 맡은 다민이 ‘어머나’를 외치며 깜찍한 표정을 짓는다고 생각을 하니 다원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다민의 뻣뻣한 몸짓에 우스꽝스런 율동을 생각하자니 개그 안무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다원은 효창동 버스정류장에서 학교를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명준도 뒤늦게 버스정류장에 나타났다. 다원의 몸은 물에 담겼다 나온 솜 인형처럼 축 처져 있었다. 고개가 꺾여 생각에 골똘히 잠긴 다원은 옆에 명준이 있는지 몰랐다.


 명준은 다원의 교복에 있는 명찰을 바라봤다. 일요일에 다원의 엄마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생각을 하자 명준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이내 자기도 모르게 터져나온 웃음소리를 다원이 들었을까봐 조마조마해졌다. 다행히도 버스는 금방 도착하였다. 다원이 버스에 먼저 올라탔고 명준은 승객들이 모두 오른 뒤에 몸을 실었다.


 버스가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 다원이 먼저 내렸고 명준도 뒤를 따랐다. 둘은 거리를 두고 걷기 시작했다.


 한편, 다른 길에서 등교를 하고 있던 은석은 다원과 마주쳤다.


 “또 만나네.”


 “그러게.”


 뒤에서 명준은 의아한 눈빛으로 이 모습을 지켜봤다.


 “같이 들어가도 되지?”


 “안 될 게 뭐 있어?”


 “은석아!”


 명준이 은석의 이름을 부르자 두 사람은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명준야!”


 은석이 명준을 반갑게 맞이했고 다원의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명준을 봤다.


 “여기는 나랑 같은 반…”


 “하명준이야.”


 은석이 다원에게 자신을 소개하려고 하자 명준은 은석의 말을 잘랐다.


 “나는 디자인과 1반 손다원.”


 “반가워.”


 “나도.”


 은석을 중심으로 양옆에 다원, 명준이 교문까지 걸어갔다. 셋이 되자 조금 서먹한 느낌이 감돌았다. 어느덧 세 사람은 회화과 교실과 디자인과 교실이 나뉘는 갈림길의 복도까지 당도했다.


 “여기서 헤어져야겠네.”


 다원이 먼저 말을 꺼냈다.


 “잘 들어가.”


 “이따가 또 봐.”


 은석이 다원에게 답변을 하자 명준도 서둘러 말을 건넸다.


 은석과 명준은 회화과 1반 교실의 뒷문으로 들어와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명준의 바로 앞자리는 은석의 자리였다.


 “어떻게 아는 애야?”


 가방을 내려놓으며 명준이 은석에게 물었다.


 “우연히 알게 됐어.”


 “우연히?”


 “일요일에 처음 보고 월요일에는 학교 앞 사진기 매장에서 또 만났고. 그게 좀 설명이 안 되네. 아무튼 그래.”


 “이번 주?”


 “응.”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며 두 사람의 대화는 끊겼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다원은 회화과 1반 교실 앞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다. 그때 명준이 뒷문으로 나왔다.


 “나 알지?”


 다원을 다시 만나자 명준은 반가움이 앞섰다.


 “아침에…”


 “맞아.”


 “몇 시간 전인데 그걸 잊었을까봐?”


 “은석이 보러 왔어?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러면?”


 “난… 그림 보는 것 좋아하거든.”


 “그림?”


 “너희 교실 뒤쪽에 그림 걸려 있잖아.”


 “아…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어?”


 “그냥 보는 게 좋아서. 아무 그림이든.”


 “그럼. 화실에 같이 가볼래?”


 회화과 전용 화실에는 역대 졸업생의 그림이 한쪽 벽에 걸려 있었다. 다원은 눈을 떼지 못하고 명준은 조금 떨어져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쉬는 시간이 짧아서 다 못 보겠다.”


 “여기 점심시간에도 개방하는데.”


 “진짜?”


 “점심시간에 여기서 만날래?”


 “응. 그러자.”


 화실에서 나온 다원과 명준이 복도를 지나고 있었고 반대편에서는 은석과 서경이 걸어왔다.


 “둘이 어디 갔다 와?”


 은석의 물음에 다원이 말을 꺼내려는데 명준이 끼어들었다.


 “우연히 만났어.”


 “넌 어디 갔다 와?”


 다원이 은석에게 물었다.


 “주번이라서. 같이 교무실에 갔다 오는 길. 내 짝꿍이기도 하고.”


 은석이 서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안녕.”


 서경이 다원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인사를 했다. 활기차고 당찬 느낌이 들었다.


 “안녕. 난 디자인과 1반 손다원.”


 “디자인과? 나는. 여기 보이지?”


 서경은 자신의 명찰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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