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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Oct 03. 2024

소설 덕수궁 돌담길, 그 계절에3

2008년 첫사랑 짝사랑 멜로 연애

다원은 예나 지금이나 주근깨가 돋보였다. 그녀의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언니 다민과 엄마는 심각하게 의논을 하고 있었다.

“다원이는 나처럼 살면 안 된다. 예체능을 하면서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면 얼마나 서러운지 아느냐고? 예체능을 한다는 이유로 반 평균 깎아내리지는 않을까 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똑같은 상위권 대학교에 진학을 해도 오로지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한 아이들만 대단하다고 치켜세우지. 예체능도 밤을 새고 땀을 흘리는데 그런 건 다 무시한다.”


 다민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의 얼굴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엄마, 앨빈 토플러라고 들어봤나?”


 다원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뭔 플러? 머플러?”


 “미국의 유명한 미래학자인데.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을 한다고 그 사람이 얘기 했다.”


 엄마는 다원을 신기하게 쳐다봤고 그녀는 눈치만 살폈다.


 “이름만 자율인 야간강제학습은 정말 하기 싫다.”


 다원이 본색을 드러냈다.


 그리고 고심을 하던 엄마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림을 그리면 앞날은 불투명하니까 디자인은 어떻겠노? 디자인을 전공으로 삼으면 미술고등학교에 보내줄게.”


 “엄마, 디자인이랑 회화는 전혀 다른 분야다.”


 “내가 양보할 수 있는 선은 여기까지다. 더 이상은 불가능이다. 그림 그리고 싶으면 일반고등학교에 가야지. 별 수 없다.”


 “그러면 엄마가 서울말을 쓰면 내가 일반고등학교에 갈게.”


 “네가 고등학교에 가는 일하고 내가 서울말을 쓰는 일하고 무슨 상관이고? 말같지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아주 그냥. 집에서 나가던가. 말 안 듣는 딸내미는 나도 필요 없다.”


 다원은 정동미술고등학교 디자인과에 입학을 하였다.


 


 “합목적성은 일정한 목적에 도달하는데 적합한 대상 또는 행위의…”


 선생님이 칠판에 디자인의 조건을 주제로 파워포인트 자료를 띄우며 설명을 하고 있었지만 다원은 집중을 전혀 하지 못하고 지루한 얼굴을 한 표정으로 창밖만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다원의 숨통이 틔었다.


 쉬는 시간이 되어 다원은 회화과 1반 교실의 뒷문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때 명준은 칠판지우개를 들고 교실 앞문으로 나와 복도 창가에서 털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다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원은 교실 게시판에 붙은 그림들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고 뒷문으로 한 학생이 나오자 그녀는 마치 지나가던 길을 걷던 것처럼 디자인과 1반 교실로 향했다. 명준은 그런 다원의 모습을 계속 지켜봤다.


 하굣길의 다원은 학교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효창동으로 가는 버스가 들어오면 다원은 버스에 올라탔고 뒤이어 명준도 정류장에 도착하여 버스에 몸을 실었다.


 효창동 버스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추자 다원이 내리고 뒤늦게 명준도 나왔다. 다원이 앞장을 서서 가고 있었는데 명준은 오전에 봤던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와 긴가민가하게 여겼다.


 


 일요일 오후. 다민이 단장을 하며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원은 그런 언니를 유심히 봤다.


 “어디 가는데?”


 “영화 보러.”


 “무슨 영화?”


 “추격자.”


 “추격자? 어떤 영화인데?”


 “미성년자는 볼 수 없는 영화.”


 “그래. 나이 많아서 좋~겠다!”


 다원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켜고 드라마 ‘이산’의 재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때 엄마가 안방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다민이는 나갔나?”


 “영화 보러 갔다.”


 “따라가지.”


 다원은 대답 대신에 한숨을 쉬었다.


 “송연이가 대장금에서도 나왔는데 알고 있나?”


 “진짜? 어? 난 왜 모르지?”


 “신비라고 있었잖아. 장금이 친구.”


 “가물가물하다.”


 “이름이 무슨 지민이던데…”


 “한지민.”


 “그래, 맞다. 한지민! 이름도 예쁘네.”


 엄마는 이내 드라마에 몰입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나 학교 그만 둘까?”


 다원은 스리슬쩍 말을 꺼냈고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던 엄마는 다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라했노?”


 “학교 그만 둘까? 디자인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또 그 소리가? 정 싫으면 일반고등학교에 가야지.”


 “엄마가 서울말을 쓰면 내가 학교 다닐게. 나보다 더 서울에 더 오래 살았으면서…”


 “서울에 산다고 꼭 서울말 써야 하나? 그리고 그게 네가 학교 다니는 일이랑 무슨 상관이고?”


 “학교… 꼭 다녀야 할까?”


 “안 되겠다. 맞아야 정신을 차리재? 야구 방망이가 어디 갔노?”


 엄마는 거실을 돌아다니며 야구 방망이를 찾기 시작했고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다원은 몸을 일으켜 현관을 향하더니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소파 밑에서 야구 방망이를 찾은 엄마는 부리나케 다원을 뒤따랐다.


 집에서 나온 다원은 효창동 동네골목을 달리기 시작하다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명준과 부딪혔다.


 “죄송합니다.”


 다원은 명준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에서 급히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명준은 무슨 일인가 싶어 달리는 다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손다원? 거기 안 서나? 이 놈의 가시나.”


 동네가 떠나가라 외치는 소리에 명준은 뒤를 돌아봤다.


 야구방망이를 손에 쥐고 달리다가 숨이 차자 멈춰 서 있는 다원의 엄마가 보였다.


 “손다원. 집에 들어오기만 해봐라. 네 제삿날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다원은 효창동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보니 천 원짜리 한 장이 나왔다.


 “진짜 야구방망이를 들고 쫒아올 줄이야. 일단 아무 버스나 타고 피신하자.”


 때마침 버스 한 대가 들어왔지만 다원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아침마다 타는 버스가 올 게 뭐야.”


 하지만 그녀는 급하게 그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일요일에 탑승한 버스에서는 평일과 달리 여유롭게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다음 정류장은 서울시립미술관입니다.’


 “서울시립미술관? 학교네.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야지.”


 다원은 시청역 정류장에서 내렸다. 처음에는 갈 길을 잃은 막막한 얼굴을 하더니 뭔가 결정을 내리고 어딘가를 향했다. 어느덧 다원은 햇살을 받으며 봄날의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봄기운에 마음이 느긋해지고 편안해졌다. 다원은 아무런 생각 없이 느낌 따라 돌담길을 계속 걸었다.


 “학교에서 그렇게 안 멀었네.”


 한편, 맞은편에서는 은석이 사진기를 들고 돌담길 주변을 촬영하고 있었다. 구도를 잡고 사진기를 누름과 동시에 다원의 모습이 찍혀버렸다. 다원은 자신이 사진에 찍혔는지 모르고 돌담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은석은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구도에 없던 다원이 찍혀버리자 사진을 지울지 말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다원은 점점 은석의 근처로 다가오고 있었다. 은석은 사진을 지우지 않기로 결심하고 새로운 사진을 찍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그 순간, 둘은 처음으로 눈을 맞췄다. 다원은 은석의 손에 있는 사진기를 발견하고 자신이 사진촬영에 방해가 될까봐 살짝 옆으로 피해 걷기 시작했다. 다원이 지나가자 은석은 한번 고개를 돌려봤다. 그리고 다원의 뒷모습을 구도에 담아보는데 동시에 그녀가 뒤를 돌아보려고 했다. 그러자 은석은 깜짝 놀라며 자세를 돌렸다. 이번에는 다원이 돌담길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있는 은석을 멍하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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