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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Oct 04. 2024

소설 덕수궁 돌담길, 그 계절에4

2008년 첫사랑 짝사랑 멜로 연애

덕수궁에서 돌아온 다원은 집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귀가를 하던 언니 다민은 이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원은 살금살금 움직이다가 다민과 부딪치고 깜짝 놀랐다.

“여기서 뭐하는데?”


 “그럴 일이 좀 있었다.”


 “무슨 일?”


 “학교를…”


 “뭔지 딱 알겠다.”


 “안에 들어가서 분위기 좀 살펴봐라.”


 “언제까지 그럴래? 기다려봐라.”


 다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한참이 지나도 언니가 나오지 않자 다원은 더욱 목을 빼서 동태를 살폈다.


 한편, 동네를 지나던 명준이 그런 다원의 뒷모습을 목격했다. 명준은 자신과 부딪혔던 다원의 모습을 떠올렸다.


 드디어 집에서 문이 열렸고 다민이 다원에게 손짓을 했다. 다원은 다민을 향해 다가갔고 자매는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에 다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매는 집으로 들어갔다. 자매가 사라지고 나자 명준은 가던 길을 걸었다.


 


 엄마는 팔짱을 끼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다원은 그 옆에 앉으며 엄마의 팔을 잡았고 다민은 두 사람을 지켜보기만 했다.


 “엄마, 다시는 안 그럴게.”


 “누구세요? 누군데 나를 보고 엄마라고 합니까?”


 “아~ 엄마. 왜 그래?”


 “한두번도 아니고 왜 이래야 하는데? 말 안 듣고 속 썩이는 건 너희 아빠 하나만 해도 버겁다.”


 “내가 잘못했다니까.”


 “너희 아빠 닮은 짓은 좀 하지 마라. 제발!”


 분위기 반전이 이루어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엄마, 내가 많이 혼냈다.”


 다민의 말에 엄마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선생님은 여전히 칠판에 띄운 파워포인트 자료를 보며 설명을 하고 있었다.


 “CI는 기업의 이미지를 시각적인 특징으로 통일화하여 여러…”


 다원은 책을 보며 무언가에 집중을 하고 있었다. 디자인개론 교과서의 모퉁이에 사진기를 든 남학생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


 ‘얼굴은 자세히 기억이 안 나네.’


 다원은 은석의 느낌만은 어떻게 살려보려고 애를 썼다.


 


 다원은 하굣길에 학교 정문에 있는 사진기 매장 앞에서 사진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녀는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사진기를 살펴봤다.


 “그래도 들어가서 물어보는 게 정확하겠지?”


 다원이 매장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동시에 은석은 매장 안에서 나왔다. 둘은 그렇게 마주보고 있었다.


 “어?”


 은석이 먼저 다원의 얼굴을 알아차렸다.


 다원도 잠시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어제 덕수궁?”


 “같은 학교였네.”


 “같은 색깔이면 같은 학년?”


 그제야 은석은 다원의 명찰을 봤다.


 “나는 디자인과 1반. 너는?”


 “회화과 1반.”


 “회화과?”


 “왜? 아는 애 있어?”


 “아니. 회화과에 가고 싶었거든. 나는 그림 그리는 것 좋아해. 부럽다.”


 “우리 과 별로인데.”


 “난 디자인과 엄청 별로야.”


 두 사람은 서로 웃기 시작했다.


 “참, 매장에 볼 일 있던 것 아니야?”


 “아니. 그냥 구경했어. 넌 사진기 잘 알아?”


 “뭐… 잘 아는 건 아니고. 그냥 취미삼아 찍는 거지. 너도 관심 있어?”


 “관심보다는 그냥… 아니다. 그게 관심인가?”


 “시간 괜찮으면 얘기 좀 더 할래?”


 두 사람은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가 자리를 발견하고 앉았다.


 “이틀 연속으로 여기에 오다니…”


 “어제는 혼자 온 거야?”


 은석의 질문에 다원은 머뭇거렸다.


 “응. 바람 좀 쐴 겸. 넌?”


 “나는 취미 삼아 사진 찍으려고. 학교 다니면서 이쪽 동네 처음 알았거든.”


 “이 동네를 몰랐다고?”


 “나 작년에 처음으로 서울에 왔어.”


 “원래는 어디 살았는데?”


 “독일.”


 “독일?”


 “엄마, 아빠가 대학원 공부를 독일에서 하셨거든. 거기서 두 분이 만나 결혼하고 그러다보니. 너는 서울에서 태어났어?”


 “응. 내 고향이야. 용문동이라고 있거든. 거기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바로 옆 동네인 효창동에 살아.”


 “언제 한번 그 동네도 가봐야겠다. 처음 듣는 동네 이름이거든.”


 “우리 동네는 그렇게 볼 것 없는데?”


 “아니야. 동네마다 특색은 있어. 너는 익숙해져서 그렇게 느끼는 거지.”


 “네가 지금 사는 동네는 어딘데?”


 “장충동.”


 “족발이 유명한 동네?”


 “응. 너한테 서울은 어떤 의미야?”


 “의미? 그냥 공기처럼 너무나도 당연해서 아무런 느낌이 없어. 사실. 답변이 실망스럽지?”


 “아니야. 나도 독일에서 왔다고 하면 사람들이 되게 신기해하면서 부러워 하는데… 나도 그 느낌 잘 알아.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사진 한번 찍어줄까? 싫으면…”


 “아니야. 좋아. 찍어줘.”


 다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돌담길의 어느 구간에 섰다.


 “뒤에 잘 나오게 찍어줘.”


 은석은 구도를 잡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날 저녁.


 은석은 책상 앞에 앉아 오늘 찍은 다원의 사진과 어제 우연히 찍힌 다원의 사진을 번갈아봤다. 이어 책상에 놓인 스케치북을 펼쳐 4B연필을 들고 사진을 보며 다원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의 그림에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를 보이고 그림그리기를 멈췄다. 이내 은석은 다시 연필을 잡더니 딸기 그림을 하나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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