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덕수궁 돌담길, 그 계절에2
2008년 첫사랑 짝사랑 멜로 연애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내부 전시실에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은석도 다른 작가의 작품을 천천히 둘러봤다.
“혹시 강은석 작가님?”
한 여성이 머뭇거리며 은석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은석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섞여 있었다.
며칠 후.
다원은 취재를 하기 위해 다시세운광장에 도착했다. 이어서 그녀는 ‘세운상가’라는 글자가 적힌 건물을 쳐다봤다.
“세운… 세상의 기운이 모인다… 여기는 다시세운상가… 다시…”
그렇게 되뇌던 다원은 세운전자박물관을 행해 걸어가 들어갔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간 다원은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옛날 라디오를 비롯해 기사에 실을 만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촬영에 몰두한 그녀는 옆에서 다가오는 사람을 의식하지 못했다.
“저기…”
자신을 부르는 말소리에 다원은 사진 촬영을 멈추고 옆을 봤다.
“나 기억 안 나? 정동미술고등학교 민서경.”
“서경이? 민서경?”
“그래. 너는 하나도 안 변했네.”
“넌 좀… 달라진 것 아냐?”
“어때 보여? 괜찮아. 나는 살이 좀 붙었지.”
“예전이랑 그대로인가 싶으면서도 뭔가 달라진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
“그랬구나. 그나저나 우리 몇 년 만이야? 고등학교 졸업하고… 참, 너 대학교는 어디 갔었지?”
“용산대. 너는?”
“나? 미국에 있는 전문대에 다니다가 졸업은 못하고… 아, 명준이랑 같은 학교에 갔지? 요즘에도 명준이 얼굴은 봐?”
“계속 같은 동네에 살아.”
“그럼 은석이는?”
다원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은석이 전시하는 것 알아?”
다원은 정신을 차렸다.
“알긴 알아.”
“가봤어? 오늘이 마지막 날이던데… 그리고 인터뷰도 했…”
“나 회사에 들어가야 해서.”
다원은 서경의 말을 급히 끊고 명함을 건넸다.
“사진기자였어? ”
“시청 근처에 있는 조그마한 잡지사야.”
“가봐야 하면 어쩔 수 없지. 내 전화번호 보내놓을게. 나중에 또 봐.”
“알겠어. 오랜만에 만났는데 먼저 가서 미안해. 넌 관람 잘하고.”
종로3가역에서 다원은 선배한테 전화를 걸어 취재가 끝나면 바로 퇴근을 하겠다고 전했다.
지하철 좌석에 앉아서도 다원은 멍하니 생각에만 잠겼다.
‘서경이를 오랜만에 만났지만 여전히 마냥 반갑지는 않았다. 그리고 은석이의 이야기까지 나왔으니 더욱 그랬다.’
다원은 시청역 1번 출구의 계단을 오르며 역사에서 나와 대한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덕수궁 매표소 앞에서 표를 끊어 전시실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하니 명준이었다. 다원은 전화를 받은 뒤에 들를 곳이 있어 늦을 수 있겠다는 말을 명준에게 남겼다.
다원과의 통화를 끝낸 명준은 학원 교무실에서 창밖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의 책상에는 은석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잡지가 있었다.
‘아주 가까운데도 다가가기 힘든 길이었다.’
전시실을 이리저리 다니며 은석의 작품을 찾은 다원이 그 앞에 섰다.
‘작품 앞에 있으니 꼭 그를 보고 서 있는 느낌과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은석이를 만난다면 눈이나 맞출 수 있을까?’
다원은 그림을 보기 전에 ‘작가의 글’에 시선을 고정했다. 작가의 글은 ‘내게 서울은 열일곱 소녀이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열일곱? 까마득한 옛날이다.’
다원은 교복을 입은 17살의 다원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에게 따지듯이 왜 이러고 살고 있는지 물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다원은 17살의 다원에게 아주 자신 있게 답해줄 수 있다.
‘그러게… 나 왜 이러고 살고 있지?’
그러면 17살의 다원은 오히려 당황을 하면서 그녀를 한심하게 여기리라. 그리고 다원은 17살의 다원에게 자신도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며 오히려 사과를 건네는 모습을 떠올리자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열일곱이라는 나이가 부럽기도 하고 그 시절이 탐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을 돌려서 그때를 한번 더 겪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열일곱이라는 나이와 그 시절은 그런대로 분명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다원은 자신이 17살이던 2008년의 풍경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Brunch Book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