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덕수궁 돌담길, 그 계절에8
2008년 첫사랑 짝사랑 멜로 연애
다원과 은석은 효창공원 일대를 걷고 있었다.
은석은 삼의사 묘, 의열사, 백범 기념관, 이봉창 의사 동상 등을 사진으로 찍었다.
“그냥 공원이 아니네. 이런 곳인 줄은 몰랐어.”
“지금이라도 알면 다행이지. 사진 찍고 나면 어디 따로 보관해놓는 거야?”
“미니홈피에 올려보려고. 넌 미니홈피 있어?”
“응. 있어. 나 어제 명준이 홈피에 들어갔다가 네 거 봤어.”
“내 홈피 봤다고?”
“아무것도 없던데.”
“이제 꾸미려고. 오늘 사진부터 올려야겠다.”
다원이 전화기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은석의 전화기가 울렸다.
“누구지?”
은석은 전화번호만 뜨는 화면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 여보세요.
- 은석아!
은석은 전화기에서 들리는 다원의 목소리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전화를 끊으며 은석이 다원에게 물었다.
“명준이한테 물어봐서 알았지.”
“둘이 친해진 거야?”
“같은 동네에 살더라고.”
“그럼 매일 보는 거잖아.”
“등, 하교 같이 하고 그게 다야. 너… 명준이 앞에 앉는다며?”
“그런 것까지도 알아? 둘이 엄청 많이 가까워졌구나.”
뭔가 미묘한 감정이 두 사람 사이에 흘렀다.
“다음에는 너희 동네에 가보자. 언제 갈까?”
“토요일에 괜찮아?”
“그러자.”
두 사람은 다시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너 연애해본 적 있어?”
다원이 은석에게 물었다.
“중3 겨울방학 하기 전에 사귀었나?”
“그러면 얼마 전인데.”
“한 달 정도 만났어.”
“왜 헤어졌는데?”
“그냥 친구로 지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 넌 연애 해봤어?”
“아직.”
“언제 해볼 거야?”
“글쎄. 그게 내 마음대로 되나?”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음…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 보니 누가 있나봐?”
“아니야. 있기는 누가 있다고.”
그날 밤, 다원의 전화기에 은석의 이름이 뜨자 기분이 좋아졌다.
- 여보세요?
- 아직 안 잤어?
- 응. 그냥 있었지.
- 사진 올린다고 이제야 전화했어.
- 홈피에 사진 올렸다고?
다원은 컴퓨터 앞으로 다가가 은석의 미니홈피 사진첩에 들어갔다. 효창동 사진을 시작으로 덕수궁 돌담길 사진이 보였다.
- 잘 찍었네?
- 오늘 올린 사진들 보면 다 너랑 연관 있다.
- 나랑?
-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이 덕수궁 돌담길이잖아. 효창동은 오늘 같이 갔던 곳이고.
- 그렇네. 우리 동네 어땠어?
- 좋았지.
- 그게 다야?
- 나한테 효창동은… 네가 살고 있으니까 나한테는 의미 있는 동네?
다원은 그 말을 듣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 내 말 듣고 있어?
- 응, 듣고 있지. 나도 오늘은 특별한 하루였어. 너랑 같이 우리 동네 걸었으니까.
- 부탁 하나 해도 돼?
- 무슨 부탁?
- 노래 불러줘.
- 뜬금없이 갑자기?
- 그냥 아무거나.
- 난 노래 못하는데.
- 상관없어.
- 아니.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못 부를 걸?
- 그래도 괜찮으니까 불러줘.
- 뭘 부르지. 뭘 불러야 하나? 갑자기 노래라니.
- 짧게라도 괜찮으니까.
다원은 전화기에서 떨어져 심호흡을 한 번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 아직도 고민 중이야?
- 99년도에 나온 노래인데.
- 거의 10년 전이네. 어떤 노래인지 궁금하다.
다원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내 다원의 목소리는 점점 숨이 차올라 음정도 불안해지고 있었다. 뒤늦게 민망한 기운이 몰려오자 다원은 난감해져 책상 앞에 엎드렸다.
- 뭐야, 잘 부르잖아.
- 나 놀리는 거지?
- 진짜 잘 불러서 놀랐어.
- 중간 중간에 음정이 어긋나고 말도 아니었거든.
- 그거 무슨 노래야?
- 시작. 가수는 박기영이고. 처음 들어봐?
- 응.
- 한국 노래는 잘 모르겠네?
- 요즘 노래만 알지. 아무튼 고마워.
- 그런데 왜 노래 불러달라고 한 거야?
- 그냥 듣고 싶었어.
- 내일은 내가 불러달라고 할 거야.
- 뭐라고? 안 들려. 전화가 이상하네.
- 뭐야? 내일 두고 봐.
통화를 끝낸 은석은 다원의 노래를 녹음해놓았더라면 하는 아쉬운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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