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중요성
오늘은 이전의 글들과는 달리 문체에 조금은 변화를 주고 싶군요.
커피 프렌즈 레이블의 화요일 에디터를 맡게 된 지 석 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단 한 주를 제외하곤 빠뜨린 적 없이 매주 화요일마다 바리스타로서 제 직업적 생각에 대한 글을 투고했는데요. 이미 느끼신 분들도 계실 테지만 매주 서로 다른 주제를 말하면서도 결국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건 없었고 대부분 정신 수양에 대한 내용이었죠. 쓸 때는 미처 몰랐으나 바리스타란 직업에 대한 제 명료한 태도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바에서 일하는 바리스타에게 중요한 건 기술적인 역량보다 정신적인 역량이라고 믿고 있거든요.
커피에 대해 많이 안다거나 사람을 대하는 능력이 좋다거나 하는 것들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능력이 뛰어난 것과 그 능력을 일하는 동안 지속하여 발휘하는 건 또 다른 능력이라고 봅니다. 커피에 대한 앎이 많아 지금 추출한 커피가 잘못된 것을 인지하여도 바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제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식은 부족하지만, 잘못됐다는 것을 안 순간 한 번 견디고 다시 제조하여 제공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거든요.
기술적인 부분의 발전은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을 점층적으로 쌓아감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향상한다고 믿습니다. 정신적인 부분도 긴 시간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어쩌면 더 나아지지 않을 수도 있기에 더 어렵고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 <좋은 기분>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에게서 일을 빼놓고 삶을 설명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리고 자기 일을 깊이 생각해 본 사람만이 튼튼한 일상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 직업이나 일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제게 직업이란 가장 나답지 않은, 굉장히 다른 내 모습을 보여주는 아주 특별한 역할놀이라고 봅니다. 저는 일할 때 꽤 주도면밀하게 분석하고 생각하는데, 일상을 살아가는 제 모습은 아주 대충 물 흐르듯 지내곤 합니다. 집에 컵이 몇 개 있는지는 모르면서 일하는 곳에 몇 개의 컵이 있는지는 알고 있고, 가계부는 써본 적도 없으면서 일터의 매출은 누가 시킨 게 아님에도 혼자 정리하곤 했거든요. 출근하기 전에 오늘 업무를 계획한 뒤 빠뜨린 적은 손에 꼽을 정도이지만, 쉬는 날의 휴일 계획은 한 게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이렇다 보니 요즘엔 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공부하고 있답니다.
커피 프렌즈 레이블에 들어온 뒤에 알게 된 분들을 보면, 모두 굉장히 열정적이고 저마다의 대단함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요.
하지만 제가 일하는 곳에서 알게 된 분 중엔 종종 일을 대체 왜 이런 식으로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역시 누군가에겐 그런 존재일 수도 있고요.
프렌즈 중에 직장 동료로 만난다면 별로일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직장에서 별로였던 사람도 프렌즈로 만난 거라면 아주 멋진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어쩌면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만큼 중요한 것이 그 사람을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느냐가 아닐까요.
저의 <바리스타 에세이>는 잠시 쉬어가려고 합니다.
석 달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히 연재하였단 사실에 스스로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석 달 만에 소재가 고갈되었다는 제 밑천을 느끼게 됐습니다.
제가 메뉴 개발에 대한 경험이 많다거나, 직원 관리를 해본 경험이 있다거나, 지금보다 뛰어났다면 말할 수 있는 게 더 많았을 테지만 우선 지금의 저로서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여기까지인 것 같군요.
커피 추출을 담당하는 에스프레소 머신엔 유휴 상태가 존재합니다. 이때의 머신은 고장 난 것은 아니지만 장시간 사용하지 않아 일반적인 경우와는 약간은 다른 상태가 되곤 하지요.
화요일의 에디터를 제안하여 제 오랜 기간의 유휴 상태를 깨게 만든 커피 프렌즈 레이블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너무 오래 쉬지 않고 조만간 다른 모습으로 찾아뵐 수 있게 할 테니 안녕이란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들 조만간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