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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장현 May 14. 2024

유대(紐帶)

멀지만 가까운 사이

시작부터 미안하지만, 오늘은 자랑부터 해야겠다.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손님들께 선물을 받은 적이 꽤 된다. 한두 번이면 그냥 운이 좋았던 거라고 하겠지만 꽤 여러 번이니 이건 실력인 것 같다. 뭐 전부 간단한 먹거리였지만 이게 어딘가!


오늘의 주제는 절대로 선물 받아서 기분 좋아진 바람에 얘기를 꺼내는 게 아닌 평소에 늘 염두에 두고 있던 유대(紐帶)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금 내가 있는 카페의 단골들은 특정 시간대에 방문하여 특정 메뉴를 주문한 뒤 특정 시간만큼 머물다가 떠난다. 방문 시간대가 변칙적인 단골도 있고, 시즌 메뉴처럼 새로 나온 메뉴에 대한 정복 심리가 왕성한 단골도 있지만 이건 전체의 1할 정도뿐이라고 본다.


나는 늘 친절한 바리스타는 절대 아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단골에게는 그 누구보다 친절한 바리스타이다. 지금부턴 아직 실패 사례가 없었던 내 경험을 이야기해 볼까 한다.


늘 그렇듯 내 경험이 정답이거나 훌륭한 방법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긴 어렵지만, 조금 더 나은 접객을 위한 참고서로 읽으며 각자 자신만의 호스피탈리티를 갖추길 바란다.


내가 작년부터 속해 있는 커피 커뮤니티 <커피 프렌즈 레이블 Coffee Friends Label>의 슬로건 중 하나인 '느슨한 관계'는 단골을 대하기에 있어 최고의 마음가짐이다.


그들이 카페를 방문하는 모습을 서너 번 정도만 본다면 별 생각이 안 들 테지만 십수 번도 넘게 본다면 가끔 피어나는 호기심이 있다. 무슨 일을 하시는지, 카페에 계시면서 뭘 하시는지와 같은 사적인 영역에 대한 호기심이다.


자주 보니 친숙해지고 친숙하니 더 알고 싶어지는 마음이야 당연히 들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단골 유치의 관건은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사적인 대화를 많이 하며 거리감이 좁혀져야만 유대가 쌓이는 것은 아니다. 커피 한 잔을 주고받으며 가벼운 인사를 건네는 것 여러 번이 켜켜이 쌓이면 자연스레 유대도 쌓인다.


다만 손님이 먼저 다가온다면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다."는 말처럼 열린 마음으로 받을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단골이 먼저 약간은 사적인 영역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이때는 거리감을 좁히는 것이 오히려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바리스타와 단골 사이 일종의 핑퐁. 너무 강하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아야 할 것이다.


온라인상에서 20대 남자 단골의 경우 아는 척을 하는 다음부터 절대 재방문하지 않는다는 밈이 있는데 이 이야기는 재미를 위해 약간은 부풀려진 감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저 밈을 조금만 수정하면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아주 완벽한 말이 된다.


무던하게 조금이라도 더 챙겨준다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단골이어서 조금 더 챙겨주는 것 대신에 단골이니 알게 모르게 조금은 홀대하는 상황이 종종 생기기도 한다. 대다수가 이 상황을 겪으면 자주 가던 곳도 발길을 끊는다.


비단 카페뿐만이 아닌 음식점에서도 순간적으로 주문량이 많을 때 "지금 좀 바빠서 저 손님 것 먼저 만들고 만들어 드릴게요."라는 식으로 일 처리를 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가까운 관계라고 생각하여 일어나는 실수일 것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단골은 우리의 고객이지, 친구는 아니라는 점이다.


가깝고도 먼 사이가 가족이나 친구, 연인 관계라면 바리스타와 단골 간의 관계는 멀지만 가까운 사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를 온전히 다 아는 줄 알았던 가족이 알고 보니 세상 그 누구보다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순간이 있기도 하고, 나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는 먼 관계인 줄로만 알았던 나의 단골은 나에 대해 제법 많이 알고 있는 가까운 존재로 다가오는 순간도 있다.


멀지만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단골 유치의 핵심이다. 너무 가까운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실수로 생긴 섭섭함은 생각보다 골이 깊다.


자주 보다 보니 고객이란 사실을 망각하는 것은 아마도 소중한 것을 매일 보다가 그 가치를 잊어버리곤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것은 직원과 고객 사이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든 대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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