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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장현 May 07. 2024

체계

능동적으로 일하기?

하루 매출이 3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한가한 카페 여러 군데에서 있으며 내게 생긴 능력 중 하나는 바로, '손님이 오지 않는 시간에 할 것 찾기'이다. '할 일'이 아닌 '할 것'이라고 적은 이유는 이 시간을 경험하는 모든 이가 일을 하진 않기 때문이다.


한가한 시간대에 할 일이라면 크고 작은 청소부터 시작하여 나중을 위한 재료 준비, 커피 세팅 점검 등이 있을 것이다. 할 일이 아닌 할 것이라고 하면 너무나도 많은데 대표적으로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 시청을 포함한 스마트폰 사용이나 이런 시간을 위해 가져온 책을 읽는다거나 이마저도 귀찮다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때리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매장이 한가할 때 누군가는 할 일을 찾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할 것을 찾을 것이다. 그렇다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능동적인 것과 수동적인 것의 차이라고 본다. 주어진 것 이외의 것들을 스스로 하는 자와 주어진 것 외적으론 크게 하지 않는 자. 당신의 눈엔 어떤 게 더 바람직한 자세로 보이는가?


대다수가 능동적인 사람을 훨씬 더 좋게 생각할 테지만, 수동적인 사람이라고 꼭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수동적인 사람은 그 나름의 장점이 있기에 잘 짜인 체계 안에서 훌륭한 사람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단단한 체계 앞에 세워보니 수동적인 게 아니라 그저 일하기 싫어한다는 걸 알게 될 때가 골치일 것이다.


아마도 능동적인 것과 수동적인 것은 다분히 개인의 기질적인 것이어서 웬만해선 변하지 않을 것이다. 카페를 운영하는데 자기 직원들이 능동적으로 일하길 원한다면,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이를 위한 업무 프로세스 구축과 일정 부분의 자유도를 주는 것 등이 곧바로 떠오르는 것들이다.


이러한 매뉴얼이 전무한데 직원들이 농땡이 부리지 않고 스스로 할 일 찾아서 하길 바라는 곳이 있다면 내 생각에 그건 운영자의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애초에 자기부터 자기 할 일을 안 해놓고 무얼 바라나.


정말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체계가 없는 곳에서 근로자가 능동적으로 일하면 이런 경우도 있다.


몇 년 전에 일하던 곳에서 커피 8잔을 포장해 가시는 고객께서 컵 캐리어가 불량이라 전부 쏟았다며 다시 매장으로 오셨다. 나는 진심 어린 사과와 커피를 다시 제조해 드리며 이 일을 마무리 짓고 잠시 뒤에 사장님께 이 상황을 전달해 드렸더니 "장현 님, 왜 이렇게 일을 마음대로 하세요?"란 대답을 들었다.


그의 입장은 먼저 자기에게 보고하고, 자신이 처리를 하길 바랐었는데 내 마음대로 처리했다는 것이었다. 아뿔싸! 오피스 상권에 있는 카페의 점심시간에 밀린 주문서를 뒤로한 뒤 사장님께 전화로 알렸어야 했다. 그 뒤로 나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일조차도 나의 사장님께 전화로 알렸다. "사장님, 손님이 커피가 너무 쓰다는데요?" 안 받으면 받을 때까지. 그동안 업무는 뒷전이다.


모든 상황을 대비할 철옹성 같은 매뉴얼은 짤 수도, 숙지할 수도 없지만 최소한 큰 틀에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큰 가지가 같은 결이라면 나머지 작은 가지도 상황에 따라 같은 결로 선택하여서 일하면 되니 굉장히 수월해진다.


누군가는 자신의 부족함을 구조 탓으로 돌리는 거 아니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테지만 능동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기질만큼 중요한 게 시스템적인 측면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큰 틀의 매뉴얼을 짜본 적 없이 짜인 매뉴얼을 이행하는 입장에서의 편협한 넋두리를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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