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힘

by 장혁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6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쓰고 나서 유발 하라리는 이런 질문을 남겼습니다. ‘사피엔스’는 역사책입니다. 인류가 수많은 종 가운데 어떻게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는지, 농업혁명, 화폐, 제국, 종교를 만들고 과학혁명을 이루면서 어떤 변화를 겪었고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역사의 과정을 살펴보며 저자는 몇 가지 의문점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해 하나하나 답을 하며 오늘날에 도착한 그는 우리 인류의 미래에 대해 경고를 하게 됩니다. 사피엔스를 읽는다는 것은 저자를 따라 그가 서술하는 인류 역사를 상상하면서 그가 느낀 의문점을 함께 느끼고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고민과 함께 그의 경고를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호모 사피엔스가 먹이사슬을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입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 상에 등장한 시기에는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와 같은 인간 종이 더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는 대부분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만이 남아 있지요. 저자는 사피엔스가 이들을 학살했을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학살이라는 용어가 가져오는 충격에 시선이 갈 수 있겠지만 사피엔스에게는 그들이 다른 종으로 생각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들 종은 사피엔스보다 근력이 강하기도 했고 더 유리한 조건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음에도 사피엔스에게 밀려났습니다. 범위를 넓혀 보면 인간보다 월등히 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종을 모두 제치고 사피엔스는 먹이사슬의 정상에 오른 것이죠. 어떻게 중간 정도의 신체 능력을 가진 사피엔스가 정점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저자가 제시하는 답은 ‘인지혁명’입니다. 사피엔스는 다른 모든 종과 다른 특이점을 한 가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다른 종의 언어가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한 울음소리, 신호 체계인 것과 달리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죠.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대화, 뒷담화는 수많은 사피엔스가 함께 행동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개개인의 사피엔스는 약하지만 이렇게 뭉친 사피엔스는 누구보다 강했습니다. 언어가 가져다준 능력이지만 결과적으로 사피엔스의 ‘인지혁명’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힘, 즉 ‘상상력’의 혁명인 것이죠. 우리는 보이지 않는 국가의 존재를 믿고, 주식회사의 존재를 믿고, 화폐, 종교, 법, 그 외의 수많은 상상 속의 존재, ‘신화’를 믿고 살아갑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하나의 집단으로 만들게 됩니다. 일상적인 관계에서 유지될 수 있는 집단은 기껏해야 150명 남짓이지만 하나의 신화는 서로 알지도 못하는 수 만, 수억 명의 사람을 공통의 신념을 향해 행동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수많은 신화를 믿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그 신화는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변화합니다. 과거의 자유와 평등의 개념은 오늘날 달라졌으며, 남자와 여자의 관계도 달라졌습니다. 물론 지금도 달라지고 있죠. 사회 제도는 여러 과정을 거쳐 민주주의라는 형태로 유지되고 있으며 삶이 변화함에 따라 법은 수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수정해가며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인간을 다른 모든 종과 구분 지어주는 가장 큰 특징은 우리가 가진 ‘상상력’입니다. 상상력은 인간을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들었으며, 이후의 이야기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농업 혁명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이미 역사 시간에 농업 혁명에 대해 배웠습니다. 기원전 1만년경 수렵채집인의 삶을 살던 인류는 농업을 시작하게 되지요. 그 결과 떠돌이 삶을 살던 인류는 정착하게 되었고, 식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해 인구는 급격하게 성장했습니다. 그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농업은 인류에게 ‘혁명’으로 다가왔으며 우리 삶을 한 단계 비약적으로 상승하게 만든 일이었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의문을 제기합니다. ‘농업 혁명은 인류의 삶을 나아지게 만든 것이 맞는가?’ 바로 이 질문입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의 관점에서 본다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자도 분명히 밝혔듯 농업을 시작하기 전의 인류와 그 얼마 후의 인류에 대한 비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안락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서 과거 우리 조상이던 농부가 행복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농업을 시작하며 인류는 기후 변화에 따른 급격한 기근을 걱정해야 했으며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지 못하고 곡물 위주의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등골이 휘었고 전염병이 발생했습니다. 노동 시간도 전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납니다. 부족 간의 폭력은 곡물의 저장이 시작되면서 더 악랄해지고 늘어나게 되었죠. 이와 같은 많은 단점이 농업의 시작과 함께 발생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관점을 바꿔 농업 혁명은 전 세계에 DNA를 널리 퍼뜨린 밀과 보리가 인류에게 행한 사기극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느 의문점과 마찬가지로 누구도 알 수 없으며 반박의 여지도 있겠죠. 오늘날 우리 입장에서 바라보면 공감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깐요. 다만, 그 모든 것을 떠나 곱씹어볼 필요가 있는 것은 농업 혁명이라는 역사가, 인류가 행한 변화가 인류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의 역학은 인간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더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바꾸고, 주변 환경을 바꾸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있죠. 그 과정에서 우리 인류가 자랑하는 ‘상상력’이 작동합니다. 인간은 미래를 상상하고 현실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미래가 우리가 상상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농업 혁명이 아니더라도 정치, 경제, 과학 등 수많은 분야에서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은 우리가 상상한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견했을 때 핵폭탄으로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한순간에 죽을 것을 상상하지는 않았겠죠.


세 번째는 인류가 통합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분열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단적으로 저자는 인류가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인류를 통합으로 이끌어 낸 것들은 화폐, 제국 그리고 종교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와 함께 작게 혹은 크게 인류의 통합을 이끌어냈던 수많은 요소들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사피엔스가 가진 상상력의 힘에서 기원한 것이죠. 달러가 가진 힘을 믿는 것, 제국이라는 존재를 믿고 그것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일, 종교와 절대자의 존재를 믿으며 그를 위해 헌신하는 모든 일은 결국 상상력에서 기원합니다.


세 가지 이야기는 모두 사피엔스가 가진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힘, 상상력으로 귀결됩니다. 기술이 발달하고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우리 인류가 살아가는 환경은 변하겠지만 사피엔스라는 종이 변하지 않는 한 상상력이 갖는 힘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피엔스, 그 이후 저자의 저작에서 이어지는 모든 경고 또한 여기서 비롯됩니다. 첫 번째 의문점에서 우리는 사피엔스가 가진 상상력의 힘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의문점에서 사피엔스가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낸 변화는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확인했지요. 농업혁명을 만든 것은 사피엔스지만 그 결과는 그들의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의문점에서 사피엔스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통합을 향해 달려왔던 상상력의 힘은 언제까지 사피엔스를 하나로 만들 수 있을까요. 서로가 믿는 것이 다양해지면서 통합은 일정 수준에서 멈춰버리고 갈등이 지속되지는 않을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이 생깁니다.


사피엔스는 역사책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에 그런 방식으로 일어났던 일들이 사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피엔스는 수많은 역사의 과정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현재의 위치에 올라섰지만 그 과정은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역사는 지금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수 있으며, 어떤 역사 속에서는 인류는 핵전쟁을 막지 못하고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역사란 그럴 수도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가 진행되는 순간에 서있습니다. 상상력은 더 이상 인류를 통합의 방향으로만 나아가게 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민족에 대한 믿음, 종교에 대한 믿음, 정치나 경제 체계에 대한 서로 다른 믿음은 사피엔스를 여러 진영으로 나눠 싸우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상상력의 힘은 지금껏 사피엔스를 이끌어왔지만 이제는 그동안 쌓아 온 상상의 산물을 스스로 이해하기도 버거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상상력은 사피엔스의 위협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놓인 역사를 헤쳐가기 위해서 필요한 능력은 상상력입니다. 그게 우리가 가진 고유의 능력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기 때문이지요.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고민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낸 가상의 믿음인 국가, 경제, 정치, 종교 그 외 수많은 체계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길 원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 것이고 좋지 않은 것인지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정한 '좋은 것'을 향해 우리 상상력의 결과가 나아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의 상상력이 가지는 크기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기술이 앞으로의 우리에게 어떤 역할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지 결정해야 합니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저자는 다시 한번 질문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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