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아들러 심리학을 통해 바라보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

by 장혁

미움받을 용기는 아들러의 심리학인 '개인심리학'에 정통한 기시미 이치로, 그리고 프리랜서 작가인 고가 후미타케가 그 내용을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형식을 빌려와 지은 책입니다. 어려운 용어를 쓰지 않고, 이해하기 쉬운 문답법을 사용해 아들러 심리학을 쓴 책이면서도 아들러 자신의 책 보다 더 유명한 책이기도 하죠. 미움받을 용기의 내용을 통해서 조금은 복잡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는 아들러의 심리학을 다시 이해해보려 합니다. 미움받을 용기가 인기를 얻은 이유는 아들러의 심리학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이야기를 심리 자체에서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사람의 심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궁금한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게 사람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알게 되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까 해서가 아닐까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실마리를 얻고 싶어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들러 심리학은 그 인생에 가장 가까이 맏닿아 있는 심리학입니다.

미움받을 용기에는 한 명의 철학자와 청년이 등장합니다. 아들러 심리학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철학자, 그리고 인생을 어려워하고 방황하고 또 고민하고 있는 청년입니다. 청년은 철학자를 찾아가 자신의 어려움과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도움을 구합니다. 이때 철학자가 아들러 심리학을 통해 이야기하고, 청년의 반박과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렵고 행복하지 않다는 청년에게 첫 번째로 철학자가 건네는 말을 이렇습니다.


'삶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오히려 단순하고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청년에게는 인생이 복잡합니다. 어렵습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철학자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철학자는 아들러의 말에 빗대어 이야기합니다. 인생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인생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느끼는 나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행복해지는 것 또한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 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아들러의 목적론이 등장합니다. 누군가 인생이 어렵고,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건 삶이 정말 그러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느끼고 싶은 것이라는 말이죠. 사람의 행동에는 기저에 숨겨진 목적이 있다. 개인 심리학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습니다. 삶을 어렵게 느끼는 것도 결국은 그렇게 해서 삶의 과제로부터 도망치고, 나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목적이 숨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아들러의 이론은 어떻게 보면 개인에게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미움받을 용기에 등장하는 청년도 이러한 점을 지적합니다. 청년에게 삶은 실제적인 어려움으로 느껴지는데 그 어려움마저 내가 자초한 일이라니, 더욱 가혹하게만 느껴지겠죠. 철학자는 청년이 느끼는 가혹함에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다만 인생의 고통을 마치 청년의 책임인 것처럼 가혹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책임이라기보다는 그에게 달려 있다고 이야기하는 게 더 옳겠죠. 인생이 힘들다고 느끼는 누군가에게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게 어린 시절의 기억일 수도 있고, 자신이 가진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 때문이거나 눈에 띄는 결함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이러한 차이를 고통의 원인으로 보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우리 삶에서 주어진 환경이나 상황은 우리의 성격, 나아가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요소가 되지 못합니다. 요소가 되었다면 내가 그것을 요소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책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은 현실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프다거나 남들보다 평균적으로 부족해 보이는 단점이 있거나, 혹은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었거나 하는 것들은 내 인생에 실제로 닥쳐 있는 어려움입니다. 그리고 절대적인 관점에서 남들보다 이러한 어려움이 더 많은 사람이 분명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이 인생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될 수는 없다고 할지언정,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큰 사람들이 인생을 어렵다고 느끼고 고통을 받는 경향이 많은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지속적으로 부정하듯 인생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식의 인과론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상관성이 있다고 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봤을 때 아주 큰 차이입니다. 전자는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하지만 후자는 가능성을 남겨둡니다. 그리고 누구나 이상적인 환경을 가질 수는 없기 때문에 각자의 문제나 혹은 과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돈이 아주 많은 집에서 자랐다고 하더라도 부담스러운 시선과 같이 그에 따른 과제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모든 사람은 각자의 과제를 안고 살아가게 되는데 이때 인생이 인과론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주어진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냐 와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을 바꿔 나갈 수 있냐에 차이로 이어지게 되겠지요. 아들러, 그리고 미움받을 용기에서 철학자가 이야기하는 바는 후자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의 골키퍼는 결국 내가 된다는 뜻이지요.


그러면 인생이 어렵다고 느끼는 많은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왜 그렇게 느끼게 되는지 궁금해집니다. 여기서는 아들러가 이야기했던 모든 인간의 자연스러운 목표가 등장합니다. 바로 우월성에 대한 욕구입니다. 권력관계에 대한 욕구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풀어서 이야기하면 누구나 타인에게 나의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타인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죠. 우월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타인을 의식하게 되니 타인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바람을 내가 만족시켜 줘야 그들이 나를 인정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정작 나 자신은 사라지게 됩니다. 인생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환경이나 조건이 주어졌더라도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지막 수용자는 나 자신인데 나는 타인의 시선에 맞춰 행동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에 맞춰 행동하고 살아갈 수 있는 자유가 없는 것이죠.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아가는 것은 결국 나의 자유를 잃는 일입니다. 자유를 잃게 되면 행복은 더 먼 일이 되는 것이죠. 그렇다고 자유를 포기하면서도 타인의 바람에 맞춰 살아간다면 타인의 인정을 받아 나의 목표였던 우월성은 추구할 수 있을까요. 결국 그마저도 성취하지 못하게 됩니다. 나는 한 명이지만 타인은 수많은 사람들입니다. 누군가를 만족시킬 수 있는 행동은 또 다른 누군가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여러 사람의 요구를 만족시키며 행동하더라도 결국 또 다른 사람이 등장합니다. 타인을 만족시켜 우월성을 추구하려는 나의 목표는 절대 이뤄질 수 없는 목표입니다. 그렇게 해서 인생이 복잡해지고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죠. 결국 아들러, 그리고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모든 인생의 문제가 인간관계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나라는 사람은 일생에 거쳐 우월성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추구하게 되는데 그 목표는 타인을 의식하고 행동한다면 절대 이룰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 벽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죠. 벽에 부딪힌다는 것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이른 시기에 발생할 수도 있고 어쩌면 학교에서, 또 사회생활을 하며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우월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타인에게 맞춰 행동한다는 전제가 붙는다면 이르든 늦든 인간관계의 문제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것을 끊어내야 합니다. 자연스러운 귀결이지요. 여기서 아들러의 '과제의 분리'라는 개념이 이어집니다. 내 인생은 나의 인생이고, 타인의 인생은 그의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서로 얽혀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필연적으로 나의 행동은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그는 나로 인해 기쁠 수도 있고,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나의 과제이지만, 그가 나로 인해 느끼는 감정이나 또다시 이어지는 행동은 그의 과제라는 것입니다. 분리해야 한다는 뜻이죠. 내 행동을 보고 누군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세상에는 수많은 타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누군가는 분명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만족시켜 줘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들이 나의 행동에 화를 내는 것은 그들 나름대로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이죠. 아들러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나에 대해 어떤 목적을 가진 것입니다. 나에게 화를 내 그들의 우월성을 추구하려는 것일 수도 있지요. 어떤 목적인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의 인생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죠. 과제의 분리는 결국 각자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분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타인의 인생을 살아줄 수 없듯, 그의 생각과 감정까지 고려하며 살아갈 필요는 없다는 뜻이죠. 과제의 분리 또한 처음 아들러 심리학이 삶의 고통을 개인의 책임으로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듯 어떻게 보면 매정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인데 타인과 나를 완전히 분리해서 살아가라는 말처럼 들리죠. 물론 미움받을 용기에서도 청년이 이러한 점을 지적합니다. 하지만 아들러 심리학에서 말하는 과제의 분리는 타인을 지우고 살아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뒤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 즉 공동체의식을 아주 중요하게 다루게 됩니다. 다만, 마구잡이로 얽혀 있는 것과 분명히 연결되어 있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아들러는 이 지점을 지적합니다.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하지 않는 것은 그와 나의 삶이 마구잡이로 얽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는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서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알기도 어렵죠, 나의 문제인데 남의 핑계를 댈 수도 있습니다. 내 인생인데 타인을 가져와 핑계를 대는 것과 같죠. 하지만 일단 나와 타인의 문제를 분리하고 나면 각자의 일은 명확해집니다. 각자 명확하게 분리되었지만 나는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이게 아들러가 말하는 과제의 분리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를 위해 살아가면서도 자연스럽게 타인을 배려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불필요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지요.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결국, 아들러 심리학은 공동체 의식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제 나의 인생이 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나의 행복은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내 인생의 목표를 주체적으로 추구해야 하겠죠. 이때에도 인간이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목표가 우월성 추구라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충돌하는 느낌이 듭니다. 우월성이라는 것은 누군가와 비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느낌이라고 생각되는데, 각자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우월성 추구라는 목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우월성을 추구해야 할까요. 우월성이라는 단어가 일상생활에서 사용될 때 비교 대상을 외부에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용되기 때문에 이러한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우월성을 추구한다는 것, 혹은 권력을 추구한다는 것은 더 나아지기를 원하는 감정입니다. 타인과 함께 생각하더라도 타인을 굳이 지배하려는 목적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타인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죠. 그 영향력이 수직적으로 누군가를 지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미움받을 용기에서도 이 점을 지적해 타인과의 관계를 수직에서 수평으로 전환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권력 추구라는 목적이 수직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수평적인 관계에서야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수평적인 관계에서 추구되는 권력은 지배가 아니라 공헌이지요. 타인에게 내가 무엇인가를 준다는 느낌, 공헌감이 바로 내 삶의 주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권력 추구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핵심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타인에게 공헌감을 느낄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자유를 누리면서도 타인에게 주는 공헌감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공헌감은 어떻게 느낄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타인에게 어떤 행동을 해서 직접적인 이익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공헌감이라고 한다면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타인에게 무엇인가를 해 줄 수 없는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하지만 아들러 심리학에서 말하는 공헌감은 타인에게 행동으로 주는 공헌감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주는 공헌감입니다.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줘서 내가 기쁜 것이 아닙니다. 존재 자체만으로, 내 곁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기쁜 감정을 주는 것이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이렇게 존재 자체만으로도 공헌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행복의 시작입니다.


아들러, 그리고 미움받을 용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내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에는 어떤 현실적인 조건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이 어떻게 느껴지는지는 타인이 아닌 내 주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그리고 나는 타인, 즉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 나의 존재만으로 공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행복의 조건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간결해집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 됩니다.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에게 맞출 필요 없이, 그가 나를 미워하더라도 내 인생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죠. 바로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미움받을 용기는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 중 하나겠지요.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야 나는 내 인생을 마음껏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목에 드러나 있지 않은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개념, 나는 공동체 속에서 소중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인식하는 '공동체 의식'이 있습니다. 아들러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너의 인생을 마음껏 살아라, 타인의 시선으로 너를 바라볼 필요는 없다. 자신의 인생을 마음껏 살고 당신의 눈으로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면 충분하다"


세상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점을 이야기한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고대의 성인들, 경전 그리고 철학자들이 서로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세상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들러도 심리학, 인간에 대한 이해라는 이론을 통해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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