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당신은 차별하지 않습니까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참 잘 지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목만 봤을 때는 알기 어렵지만 프롤로그를 읽고 나면 바로 알게 됩니다. 왜 선량한 차별주의자인지. 그 이후의 내용은 제목을 지지할 뿐입니다. 우리는 ‘차별’이라는 단어에 민감합니다. 인종, 지역, 성, 학력 그 외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기준에 의해 이루어지는 차별의 문제점을 지켜봐 왔고 또 배워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에 대해 우리는 본능적으로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별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나 같은, 혹은 우리 같은 선량한 사람에게 ‘차별’은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라는 뜻이겠죠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그 개념을 부숩니다. 나도, 당신도, 심지어 차별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 저자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차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차별이 나쁘다는 것은 알지만 차별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됩니다. 요즘에는 눈에 보이는 뻔한 차별은 많지 않습니다. 모두의 자유가 보장되고 평등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시대에 차별은 그 모습을 달리합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차별 중 하나는 ‘평범해 보이는 특권’에서 나타납니다. 평범함과 특권이라는 단어는 서로 상충합니다. 그래서 평범해 보이는 특권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문장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그 의미를 더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에게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구조물이나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되는 바로 그때, 우리는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발견할 수 있다.'
결혼을 할 수 없는 동성 커플이 나타나면서 결혼은 특권이 되고, 한국에서 사는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 외국인이 나타나면서 한국에서 사는 것은 특권이 됩니다.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특권이라고 하냐’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당연한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너무나 소중한 특권이라고 볼 수 있겠죠. 우리 대부분은 많은 영역에서 평범하기 때문에 이러한 특권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만이 특권의 존재를 깨닫고, 반대로 차별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대부분 평범하다고 하더라도 삶의 한 부분에서는 평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가 평범함에 도달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우리를 차별하는 사회를 마주하게 된다면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 그때는 ‘뭐 그리 대단하게’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3장 ‘새는 새장을 보지 못한다’에서도 보이지 않는 차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구조적 차별’입니다. 차별이 사회적으로 만연하고 오랫동안 지속되어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경우, 누군가 의도하지 않아도 각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차별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책은 성별에 따른 임금 차이를 예로 듭니다. 임금 격차를 설명하는 것 중 한 가지는 여자가 남자보다 보수는 적지만 더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이 때문에 성별 임금 격차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타당한 분석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임신과 이에 따른 경력 단절에 대한 부담 때문에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고려한다면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문제가 됩니다. 결과 이전에 그 결과를 만든 원인, 즉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결과에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적 차별은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구조적 차별의 특징 중 하나는 책에서 이야기하듯 ‘차별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불이익을 얻는 사람 역시 질서 정연하게 행동함으로써 스스로 불평등한 구조의 일부가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구조적 차별은 차별을 당하는 사람에게 그 책임까지도 지게 합니다.
한 가지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5장 ‘어떤 차별은 공정하다는 생각’에서는 ‘능력주의’와 이에 따른 차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경쟁이 일상이 된 현대 사회에서 능력에 따른 보상은 공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그 과정에서 편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정당한 경쟁에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야 한다.’ 이 말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이 공식은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에게 부여되는 차별을 정당화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특정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갔고, 그만큼 노력했기 때문에 그들이 받는 결과는 ‘당연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들의 결과가 당연하다는 것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받는 차별과 모멸감 또한 능력이 없으니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만듭니다. 능력주의 사고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능력에 따라 보상을 받는 것이 어떤 문제인지 잘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점은 그 차이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옳은가 하는 질문입니다.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마이클 샌델이 이야기했던 것과 같습니다. 구조적 차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또한 ‘결과적으로’는 옳습니다. 더 능력 있고, 더 노력을 했다면 그만큼 보상받아야 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공정이고 정의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전에 발생합니다. 그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일방적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주어진 환경의 차이는 고려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교육은 경쟁을 가르치고 성적에 대한 보상을 통해 은연중에 기준과 과정을 생략한 ‘결과의 능력주의’를 우리에게 주입합니다. 과연 능력에 따른 공정한 차별은 옳은 것일까요. 물론 능력과 노력에 대한 성과는 주어져야 합니다. 다만,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완전할 수 없다면 그 차별이 공정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지 않을까요. 그 결과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완전히 공정할 수 없었던 과정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보완하려는 노력을 할 수 없습니다.
책에는 공정함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책의 내용은 이 정도로 줄이겠습니다.
공정하다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개념입니다. 어떤 공정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열심히 살아서 성공한 누군가에게는 내가 얻은 결과를 내가 모두 가져가는 것도 공정한 세상이 아니라는 말에 분노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결과를 평등하게 만들려는 생각 같아서 들을 필요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자유로운 사회도 그려보고, 공정한 사회도 그려 보다 보면 결국 세상은 참 어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은 우리 생각보다 더 복잡합니다. 심지어 더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하면 저것이 된다’는 식의 인과론적 접근은 낡은 사고방식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하더라도 저것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한 가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원인이 필요하며 혼자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데 세상을 사는 우리의 사고방식은 점점 더 단순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너무나 많은 정보가 쏟아지다 보니 오히려 한 가지도 제대로 사고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결과에 목을 맵니다. 그렇게 판단하면 머리도 아프지 않고 마음은 편합니다. 결과가 좋으면 ‘잘’ 하고 열심히 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못’ 했고 노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사고는 세상과는 반대로 인과론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조도 보이지 않고, 평범한 특권도 보이지 않고, 기준도, 과정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마치 우리는 빛이 쏟아지는 세상이 눈부셔서 눈을 감은 것 같습니다. 눈을 감는 순간 편했지만, 당연하게도 그 대가가 따릅니다. 세상은 당신이 보지 않는 곳에서 차별을 만들고 있으며, 이를 정당화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과거보다 나아졌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물론 맞습니다. 신분제가 명시적으로 존재했고, 여성에 대한 차별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과거와는 다릅니다. 하지만 어느 철학자가 이야기했듯, 공평한 사회일수록 차별에 의한 아픔은 깊습니다. 공평한 사회를 믿게 된 요즘이기에 우리는 더 아픈 시기를 겪고 있고, 그러니 더 공평해지기 위해 눈을 떠야 합니다.
저자의 말을 빌려 글을 마무리합니다.
차별은 생각보다 흔하고 일상적이다. 그래서 의심이 필요하다.
세상이 정말 평등한가? 내 삶은 정말 차별과 상관없는가?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