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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Jul 24. 2021

칸트, 순수이성비판

전환과 구분의 철학

근대 도덕철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칸트입니다. 근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답게 보편적인 진리, 보편적인 선, 그리고 보편적인 미, 즉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던 철학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진, 선, 미의 3가지 요소로 표현하는 인문, 철학점 개념을 논했던 것입니다. 각각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그리고 판단력비판이라는 책으로 남겨져 있지요. 우리는 도덕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중 실천이성비판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겠지만, 칸트는 근대 철학을 집대성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만큼 실천이성비판 하나를 곧바로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실 그냥 칸트라고 하는 사람의 철학적인 사고가 쉽지 않습니다. 칸트에 대해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수 있는데, 아마 대부분 정말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만큼 칸트의 책에는 철학적인 관념어가 많고, 또 철학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관념어로 가득 찬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칸트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실천이성비판을 통해 칸트의 도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칸트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의 원리를 알아보려 합니다.


순수이성비판은 진리에 대한 칸트의 생각을 이야기한 책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진리를 인식하는 과정에 대한 책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진리가 있을 때, 그것은 사물 자체일 수도 있고 사물을 넘어서는 형이상학적인 진리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우리 인간이 그 진리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서양 철학에는 흐름이 있기 때문에 인식에 관한 칸트 이전의 생각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칸트 이전에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인식한다는 것을 거울과 같은 원리로 이해했습니다. 우리 마음이 물체를 인식하는 과정은 거울과 같이 물체를 그대로 비추는 과정입니다. 수동적인 과정이며 인식된 결과가 참인지 거짓인지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인식의 결과의 참, 거짓, 즉 진리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거울이 아니라 물체 자체입니다. 물체가, 혹은 거울이 비추는 대상이 참이라면 거울에 비친 결과도 참이며 그렇지 않다면 거짓이 되겠지요. 이렇듯, 칸트 이전에 인식의 주체는 대상이었습니다.


칸트를 이전의 철학과 구분 지어주는 획기전인 전환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칸트에게 인식한다는 것은 우리 마음이 대상을 그대로 비추는 과정이 아닙니다. 칸트에게 우리 마음은 거울보다는 여러 기능을 가지고 있는 카메라와 같습니다. 물론 인식의 대상이 되는 물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칸트가 물자체라고 부르는 인식의 대상은 그대로 존재하지만 그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에 우리 마음이 가진 여러 기능이 작동한다는 의미입니다. 카메라가 대상을 촬영할 때는 조리개의 열리고 닫히는 정도, 빛이 들어오는 시간, 초점을 조정하는 등 여러 기능이 작동하게 됩니다. 칸트에게는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상을 거울처럼 반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필터를 씌워 인식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칸트의 용어로 정리하게 되면 대상에 해당하는 '물자체'는 우리에게 인식되고 나면 '현상'이 됩니다. 이 현상을 다시 분리해보면 물자체에 해당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하게 되면 이전의 거울과 같지요. 칸트는 현상에 내용뿐 아니라 '형식'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우리 의식이 대상을 인식할 때 이 형식을 규정한다고 말합니다. 조금 더 비유를 통해 이해해보면 이렇습니다. 가끔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한 파일이 열리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글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작성된 파일을 다운로드하였는데, 내 컴퓨터에 한글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경우 그 파일을 열더라도 읽을 수 없다는 오류 메시지만 나오게 되지요. 칸트의 생각에 의하면 우리가 다운로드한 파일이 물자체입니다. 그리고 그 파일을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가 우리 의식에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그 소프트웨어가 파일이라는 내용에 형식을 부여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현상으로 드러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과정은 대상과 우리 마음에 있는 의식이 함께 작용하는 과정이지요. 아까 이야기했듯, 이전에는 인식 과정이 대상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주체 중심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대상이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인식 과정이 올바르게 작동하지 않는다면 인식된 현상은 진리가 아니겠지요.


칸트의 인식 구조는 이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칸트의 인식론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가 실천이성비판에서 칸트의 도덕론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중요한 관점이 되는 것이 바로 '선험적'이라는 개념입니다. 칸트는 우리 마음에 있는 기능이 작동하여 사물을 인식하게 된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이때 마음의 기능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져있다고 말합니다. 이를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다고 표현합니다. 경험을 통해서 마음의 기능이 만들어지고 사람마다 다르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우리에게는 동일한 마음의 기능이 주어진다는 뜻이지요. 아까 이야기했던 컴퓨터의 소프트웨어에 비유하면,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우리가 사용하면서 필요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고 설치하지만 칸트의 소프트웨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컴퓨터를 만들 때 인식의 기능은 이미 동일하게 설치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선험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기만 하면 우리는 동일하게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인식에 보편성을 부여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선험적인 기능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는 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그에 대해 다투는 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우선 칸트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이러한 선험적 기능이 모여 있는 공간을 칸트는 "초월론적 차원"이라 정의합니다. 소프트웨어로 치면 내 컴퓨터 내에 기초적인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는 공간이겠죠, Program files에 해당하는 폴더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아무튼 인식의 형식을 담당하는 기능이 모여 있는 초월론적 차원이 존재하며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 곳입니다. 진리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고민할 때 물자체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도 없고, 드러난 결과인 현상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곳은 바로 이 초월론적 차원이지요. 초월론적 차원에 모여 있는 우리 마음속 기능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 사용법인지 규명하는 것이 진리 탐구를 위한 기초입니다. 그리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는 이 초월론적 차원을 분석하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충 그렇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기능을 하는지 서술하고 있지요. 그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건 칸트의 구체적인 생각이 아니라 그의 사상적 구조, 그리고 함의 정도입니다.


칸트의 생각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진리 탐구의 과정, 인식의 과정을 칸트는 대상 중심에서 주체 중심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주체에서도 주체가 인식을 위해 가지고 있는 기능에 집중합니다. 이 전환이 중요한 이유는, 이전과는 다른 체계적 논의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인식의 주체가 대상일 때는 돌고 도는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어떤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철학의 주요한 문제였는데, 우리가 인식하는 과정은 거울처럼 대상을 그대로 비추는 일이라면 참과 거짓 여부는 대상이 결정하게 됩니다. 인간이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개입해서 참, 거짓 여부를 논하려 하니 순환 논증만 발생합니다. 혹은 결국 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끝에 가서는 그 대상의 진리 여부를 신이 입증해주어야 하지요. 칸트는 이렇게 불필요한 논쟁이 반복되는 곳에서 인식의 전환을 통해 실용적인 논쟁의 장을 열어주었습니다. 대상, 즉 물자체에 대한 논쟁은 이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건 우리 마음의 기능이지요. 칸트는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리한 철학자입니다. 물자체에 대한 논의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주체에 대한 논의는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의 기능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순수이성비판 본문에서 초월론적 차원, 즉 우리 마음속 기능에 대한 논의를 이어갈 때에도 중요한 과정은 각 기능을 정의하고 한계를 분명히 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마음의 기능에 이성이 있을 때 이성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할 수 없는 것을 과도하게 추구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지적합니다. 즉, 물자체와 마음을 분리하고 난 뒤에는 마음도 각 요소로 분리합니다. 분리한 각각에 대해 한계를 명확히 규정합니다. 이러한 구분과 한계에 대한 규정 없이는 그저 불필요한, 돌고 도는 이야기뿐이겠지요.


칸트는 이러한 작업을 했습니다.  어디서 싸워야 하며, 어디까지가 싸움의 영역인지 링을 정의해줬다고 볼 수 있겠네요.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이 이러한 한계 규명을 통해 이성 너머의 분석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러한 전환적 사고, 분리는 진, 선, 미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주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경계를 분명히 알 수 없어 서로 같은 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앞으로 이야기하게 될 도덕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도덕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도덕이 무엇인지, 우리는 도덕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명확히 정의하고 들어가는 것이 좋겠지요. 나는 도덕이 할 수 있는 일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도덕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이야기한다면 서로 상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칸트의 철학은 불분명했던 철학적 논의에 울타리를 치고 땅을 만들어주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작업은 분명 수많은 개념과 정의, 내용이 혼재되어있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어떤 함의를 가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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