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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종말

[나의 글/삶과 문화/한국일보 2012.6.14.]

해마다 이맘때면 모국을 방문하곤 한다. 비행기에 올라보면 승객의 절반쯤은 예외 없이 한국인 신혼부부들이다. 두 손을 꼭 잡고 밀어를 속삭이며 신혼여행을 만끽하는 그들을 보면서, 필자가 신혼이었을적 모습을 흐뭇하게 회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삼십대 부부의 삼분의 일 이상이 이혼한다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그들이 꼭 잡고 있는 손이 곧 시들어져버릴 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신혼부부 앞에 두고 참으로 경망스런 생각을 한다고 자책해보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삼사십대 총각과 처녀가 전례 없이 많다는 언론보도를 생각해보면 신혼의 단꿈에 빠진 그들이 마치 '승리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자발적으로 싱글의 삶을 선택하신 분들께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지만.

오늘 말하고 싶은 주제는 관계의 단절내지는 붕괴다. 앞서 말한 혼인관계의 붕괴 못지않게 사제관계의 흔들림도 문제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교단에 서는 친구를 만났었다. 그는 사제관계가 예전과 달리 삭막한 계약관계처럼 변해간다면서 씁슬해했다. 만약 사제관계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동급생에 대한 왕따나 학생의 선생님 폭행 같은 일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스승과 친구를 얕잡아보는 학생의 뒤에는 오직 대학가기 위한 도구로서 학교를 바라보는 불온한 사고방식을 가진 부모가 있기 마련이다. '스펙'만을 강요하는 부모로부터 과연 선생에 대한 존경심이나 동료애를 배울 수 있겠는가. 사제관계, 급우관계, 학부모와 학생의 관계는 이렇게 서로 맞물려있다.


관계의 '부재'도 심각하다. 이제 한 사람이 한 가구를 이루는 이른바 1인가구의 비중이 전체 가구의 절반에 육박한다고 한다. 대도시일수록 심하다. 변하는 시대를 거스를 수는 없겠으나, 아파서 쓰러져도 옆에서 토닥여줄 사람 하나 없는 가구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은 외롭고 고독한 자아의 범람을 의미하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그런 외로운 영혼이 모인 도시가 따뜻할 수 있을까. 그런 도시가 모인 국가가 평온할 수 있을까. 물론 자발적이거나 불가피한 1인가구도 많다는 것을 알지만, 창공의 한마리 새가 되어 내려다보는 사회의 전체적인 그림이 그렇다는 얘기다.


뒤틀려진 관계는 쓸데없는 갈등을 부르기도 한다. 정치판을 보자. 당내 부정선거의혹에서 시작된 싸움이 국가관과 이념문제로 옮겨 붙었다. 밖에서는 유로존의 위기로 야단법석이고, 미뤄뒀던 민생법안은 산적해있는데 여야는 소통에 의한 해결보다 어떻게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볼까 주판알만 튕기는 것 같다. 군사독재 시대에도 논쟁에는 금도가 있었고 여야간에는 언제나 '이면 창구'가 열려있었다. 때로는 뒷거래로 변질되기도 했지만, 그런 '이면 창구'는 교착상태인 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해주는 일종의 숨구멍역할을 하기도 했다. 요즘 정치는 그런 것도 별로 없는 듯하다.

큰 안목에서 볼 때, 우리 사회의 위기는 예전에는 건강하게 작동했던 '관계'들이 시들어가는데 기인한다.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한 경제를 바라보며 탄성을 지르는 사이에 우리가 잃고 있는 수많은 관계들을 생각해볼 때가 됐다. 가족관계, 사제관계, 이웃 공동체, 직장에서의 동료 관계 등 '관계의 복원'이야 말로 경제와 정치와 복지의 복원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 된다. 물질주의 세태는 '정직', '성실'과 같은 공동체 윤리에 기반한 이타적 관계를 실종시켰고, 오직 연봉과 돈만이 남았다. 근시안적 개발 정책은 많은 이들의 이웃 공동체를 붕괴시켰고 잘 팔리지도 않는 회색빛 아파트들만 남겼다. 


종신고용이라는 관계가 무너진 일터에는 적절한 정도의 경쟁과 투명성이 자리잡으리라 생각했으나 계약제 사원의 생존을 위한 삭막한 투쟁만 남은 것 같다. 상처받은 젊은 영혼들은 온라인세계에 탐닉해보지만, 가상공간에서 얻을 수 있는 충족감은 이웃이나 죽마고우를 대체하기에는 무리다. 


이렇게 보면, 금융위기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사회적 자본의 위기다. 작게는 가족에서 크게는 일터에 이르기까지, 건강한 관계의 복원에 초점을 맞춘 자발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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